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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이민교회의 현실과 전망
한성수(뉴욕한인교회 담임목사)
돌아보며
"강변에 앉아 울었노라!" 이 가슴아픈 구절은 필자가 봉직하고 있는 뉴욕한인교회가 1991년 12월에 발간한 70년 역사책의 이름이다. 1960년대 미국이 이민의 문호를 열기 전까지는 뉴욕 지역에 있었던 교회는〈뉴욕한인교회〉하나뿐이었기에, 그 서러움의 실타래를 허드슨 강물에 풀며 '강변에 앉아 울었던' 한인 기독교인들의 정서를 잘 나타낸 말이다. 시편 137편 1절,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는 현재 프린스톤 신학교의 이상현 교수가 1970년대 한인 이민의 신학을 말하면서 인용한 구절이기도하다.
한국 이민의 패러다임은 출애굽이 아니라 바빌론 포로의 경험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들에 설득력이 더 실린 이유도 고난의 경험 때문이다. 이민 초기 1903년 1월 13일 겔릭(Gaelic)호를 타고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102명의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든 혹은 사진결혼을 한 신부들이든, 점보제트기를 타고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 요즈음 이민자들이든, 일단 뼈아픈 눈물을 흘리는 상당한 세월의 세례를 받아야 비로소 스스로 이민자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못할 짓 하고 돈 싸들고 미국으로 도망쳐와 몸을 숨긴 채 골프장 신세나 지는 사람들일지라도, 눈물을 흘린 세월의 감회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경험을 하지 않은 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인 이민자로 보아줄 수 없다.
이민교회의 존재 근거는 바로 이 '강변에 앉아 우는' 가슴을 안고 찾아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많은 세월을 이역에서 살아온 지혜로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그래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여전히 뒤돌아볼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찾아드는 교회, 거기에 이민교회의 위상이 있다. 단순히 견디기 힘든 괴로움의 눈물만이 아니라 뼈 속 깊이 사무치는 외로움이 자아내는 존재 위기의 눈물이기도 하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뉴욕 지역에서도 한 복판인 만하탄에 자리 잡은 까닭에, 비교적 이민 온지 오래된 사람들, 안정된 삶에 이른 사람들, 그리고 상당한 지식인들이면서도 무언가 상실감을 안고 사는 사람들, 그러기에 유난히 조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강변에 앉아 우는 마음은 조국을 그리는 마음과 통한다.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서 돌아갈 수 없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 애잔한 소망들이 합쳐진 복합심리를 띠고 있다.
뉴욕은 전 미국에서도 가장 인종 편견이 적고 이른바 '세계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국제 감각이 앞선 도시여서 우리 한국인들이 살아가기에 상대적으로 편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내 나라, 내 조국이 아니라는 느낌이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에 혼동을 더하는 것은 세월과는 관계없는 이민자들의 가슴에 스며 새겨진 한(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종 편견은 미국에서 살아온 300년의 역사를 등에 지고도 여전히 성난 항거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변함없는 거센 음조에 실려 있는데, 이제 겨우 한 세기도 채 안 되는 이민 역사에서 한국인들이 겪어야 하는 인종차별이 어찌 없겠는가? 교묘하게 위장된, 그래서 정확히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아픔은 배운 사람들일수록 견디기 힘든 자존심의 상처로 깊이 박힌다. 조국을 등지고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의 마음은 죄의식, 뻔뻔함, 원망, 오기, 희망에 부푼 기대 등 별의별 요소들이 뒤섞여 있겠지만, 이역에서 한을 안고 살아가는 이민 일세들이 그 모든 상이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의 목표로 지향하는 것, 그래서 가장 힘을 써서 삶의 중심으로 헌신하는 것은 아마도 자녀교육일 것이다. 그 바닥엔 자기가 받은 인종 편견에 대한 오기어린 복수심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른바 명문대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이 곧 바로 그들의 인생의 성공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부모로서 어떤 고생이나 모욕도 참으면서 마침내 자녀들을 백인 중산층 혹은 상류층도 함부로 못 들어가는 미국 동부의 명문이라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내는 것은 그것으로 맺힌 한의 일부가 풀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입시철만 되면 교회 앞에 '대학입시를 위한 백일기도'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야단스럽게 극성을 떨지만, 미국에서도 새벽기도의 주요 제목은 자녀들의 명문대학 입학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집 자녀가 명문 대학에 입학하면 한국어 신문에서는 다투어 보도하지만, 교회에서는 일체 이런 일을 함부로 알리지도 못한다. 다른 부모들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시샘의 정도를 넘어 이민자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척도처럼 여겨지는 현상이며, 사실 자신의 과거 모습에 대한 한풀이의 변형이기도 하다. 교회의 새벽기도가 사업의 성공, 식구들의 건강, 자녀들의 학업에 집중되는 것을 보면 한국 교회의 신앙 행태가 여기서도 여전히 성행하는 현실이다. 실로 나와 내 가정 만에 몰두하는, 마치 여호수아가 여리고 침공하듯 하는 정신만 강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열린 가족, 예수 안에서 확대된 가족으로서의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의 능력을 독점해서라도 나와 내 가족의 이익을 보증 받으려는 사유화의 욕망으로 내닫기 쉬운 현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사람됨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의 성공을 통하여 신앙의 수준이나 질적 내용이 검증 받는, 그리하여 실용주의적 가치의 기반으로 신앙이 전락한 것은 사실 한국에서부터 배우고 지녀온 유산이다. 아니, 미국에서 건너가 한국에서 증폭되어 다시 미국으로 넘어온 '수단으로서의 종교'이다. 거기에 오늘의 한국인들이 지닌 천박한 기독교 신앙의 특성이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을 식별하기란 어렵지 않다. 나는 이런 점을 비교적 오래된 이민자들, 1970년대 이전에 미국에 온 사람들과 1970년대 이후에 이민 온 사람들의 신앙 행태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 한국에서 온 사람들일수록 교회에 열심을 내는 정도에 비하여 그 신앙은 주로 물질적, 가시적, 효용적 측면에 대한 확인에 조급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가난과 질병과 고난의 현장에서 익숙해진 하느님에 대한 의존적 태도야 굳이 나무랄 일이 아니라 해도, 사랑보다는 믿음의 힘을 강조하는 몰가치적 현실 종교, 아니, 미래의 영생까지도 현실에서 확인하고 안심하는 그런 조급한 욕망 성취가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교회가 고난을 몸으로 입증한 역사는 극히 일부의 '기현상'일 뿐이고, 대부분은 세속적 욕망 성취를 쟁취하는 원동력을, 혹은 이미 누리는 자의 불안을 달래며 평안케 마사지(massage)하는 메시지(message)에 우리는 반세기 동안 젖어온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한국식 신앙의 격렬한에너지를 자랑삼아 이민 생활의 성공을 쟁취하려는 것이다.
1920∼30년대 미국 이민교회는 단순한 실향민이 아니라, 나라 잃은 설움이 자아 모멸에 이르도록 따돌림 당한 경험에서 치솟아 나라의 독립을 위한 헌금에 온 교인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한 눈물겨운 기록들이 생생히 남아 있다.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 사진결혼 신부들이 모두 조국 광복과 독립의 투사들이요, 광복어머니회원들이 된 숙연한 역사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에 비하여 1970∼80년대의 한인 이민교회들 가운데 조국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반독재 투쟁이나 사회정의의 깃발을 내건 곳은 전 미주를 통 털어도 가물에 콩 나듯 극소수였다. 눈앞에 굴러다니는 동전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정작 저 언덕 너머 동터오는 새벽의 기운에는 눈을 감았던 것이다. 극히 소수의 기독인들이 〈목요기도회〉나 항의 데모에 나서면, 언제나 돌아온 것은 빨갱이 무리, 혹은 반정부 인사들, 아니면 누군가에 등을 기댄 정치꾼 정도로 폄하되기 예사였다. 지금은 북한 드나들기를 건넛방 가듯 하는 목사들도, 옛날엔 입을 모아 반공 구호에 핏대 세우며 선구자들을 온갖 험구로 비난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북미기독학자회〉가 해마다 북한의 조선기독교연맹 인사들을 초청했던 일도 이제는 옛말이 되고 말았지만, 그때는 상당한 용기와 선견지명이 필요한 처사였기에 거기 참여했던 사람들은 돌아가 자기 교회에서 따돌림 당하거나 빨갱이 무리라는 엉뚱한 누명을 쓰는 난감한 입장에 처한 적이 많았다.
일반 교인들도 적어도 1990년대 이전에는 생존이 급해서라기보다는, 물질적 풍요의 땅에서 현실적 욕망을 잠재울 수 없는 다급함으로 삶을 꾸려나갔다. 교회도 고통당하는 이민자들을 위로한답시고 예수의 정신과는 동떨어진 위로와 격려에만 급급하다가 정작 버릇없는 교인들을 양산하고 말았다. 나라보다는 나의 문제가 급선무요, 동족들이 당할 멸시보다는 나의 은행구좌가 선결문제였기에, 어찌하든 돈만 벌면 되는 물신숭배의 정신이 기독교 복음의 내용으로 둔갑된 지난 40년을 되돌아보면 탄식을 금할 수 없다. 고생하는 이민자들에게 복음이라는 명분으로 어설픈 위로를 퍼붓고는, 그들의 땀의 결정인 막대한 헌금을 거두어들여 자체의 몸 불리기에 급급해 온 교회가 아닌지 이민교회들은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어찌 이민자들을 위로하시고 복을 주시는 예수님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우리는 이민교회라는 게토를 이루고 그 안에서 상처를 서로 핥는 퇴행적 위안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았던가?
한인 이민교회들은 먼저 자리 잡은 자들의 텃세에 눌려 이른바 미국 주류 사회의 현장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난 여백 지대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니 '변두리 신드롬'이라고 할 보상 심리가 교회 내에서 신자들로 하여금 '계급제도'에 유난히 민감하게 만들었다. 장로니 권사니 집사니 하는 일종의 종교계급이 횡포를 부리고, 미국 사회에서는 누릴 수 없는 특권과 명예를 교회에서 사고 파는 보상제도가 지배하다 보니 교회마다 이 장로 제도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는 교회가 없을 정도다. 온갖 천대를 감내하는 이민살이의 설움이 교회만 오면 졸지에 명예와 존경으로 둔갑하는 자리, 그것이 장로라는 자리다. 그러나 장로는 여전히 목사 아래라, 사는 형편이 좀 펴고 나면 그 흔한 이민 신학교 야간반이라도 졸업하고 어느 사이에 어제의 장로가 내일의 목사로 둔갑하는 일이 종종 생겨난다. 목사란 자리는 교회 내 신분 상승의 정점이 되었다.
예수의 혁명적 메시지는 다 어느 바위틈에 스며들어 지하수로 잠적했고, 바울의 십자가 신학이 고단한 영혼을 위로하는 면죄부로, 험로를 뚫고 복을 받는 축복의 징표로 홍수처럼 흐르는 현실이 이민교회 신학의 주류가 되었다. 십자가 보혈이 축복의 복덕방망이로 둔갑한 이런 교회가 과연 무슨 재주로 미국의 역사 속에 역동적인 정의의 목소리로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합류하는 날을 볼 수 있겠는가? 이민교회는 탈역사, 탈정치, 탈문화, 탈사회적 보루에 나약한 이민자들을 폐쇄시키는 반동세력이 되고 말았다. 동포 사회에서 무슨 연합운동을 하려 해도 자기 교인 어떻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목사들의 밴댕이 소갈머리에 가려서, 목사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게 단속하는 통에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다. 여성들은 여전히 순종하고 조력하고 뒤에서 희생하고 그러면서도 목소리를 죽여야 하는 억압과 유교적 가치관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장소가 교회다. 남녀평등이 절대로 안 되는 교회가 한국 이민교회다. 도전적인 여성신학은 말할 것도 없고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도 이단으로 정죄받고 매도당하여, 뭔지도 모르면서 마귀의 신학으로 타도 대상이 된 것은 한국이나 이민교회나 마찬가지다. 목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학은 일체 이단이고 마귀고 죄악의 자식들이다. 여성은 교회를 돕는 존재들이지 교회가 도와야 할 존재들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 이민 물결의 물길을 터놓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은 국제 결혼한 여성들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주한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여성들은 줄잡아 20만으로 추정되며 아직도 그 숫자는 늘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신음할 때 못난 나라의 고난을 어깨에 지고 역사의 칼을 맞아 온몸에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그들이다. 가난한 가정을 푼돈이라도 돕자고 고난의 행군을 한 사람들 가운데 국제 결혼한 여성들보다 더 신산한 과거를 지닌 사람들은 없다. 그들은 미국에 정착하기가 바쁘게 친정 식구들을 가족 초청으로 줄줄이 이민 대열에 올린 사람들이었다. 초기에는 유학생들에게 한국음식, 취직알선 등으로 극성스럽게 도움을 주었지만, 그들이 학위를 따고 나면 철저히 관계를 외면당하였고, 교회를 개척한 후에 영주권을 따고 나면 어김없이 떠나간 철새들이 또한 목사들이었다. 국제결혼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목회자들은 열등한 목사라는 생각에 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그녀들을 떠나는 것이 소망인 목사들에 의하여 버림 받았던 것이다. 가족들조차도 살 만큼 안정을 얻으면 놀랍게도 그녀들에게 출입금지령을 내리기가 일쑤라, 국제결혼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족들로부터도 조국으로부터도 미국으로부터도 버림을 받는다. 그들은 억척스러울 정도로 교회에 헌신하는 열성적인 기독교인들이 되어 지난 날의 상처와 한 맺힌 사연들을 접고 예수의 해방의 메시지에 의해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려는 사람들이다. 미국 이민교회들 가운데 국제결혼한 여성들의 신세를 지지 않은 교회가 과연 몇이나 되리요만, 그들은 교회 안에서도 차별을 받은 일이 부지기수며, 특별히 목회자들에게 경제적 착취, 성적인 유혹과 학대를 받거나 악용된 예도 미국 전역에 널려 있을 정도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인교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소위 지도급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수 근본주의로 중무장하고, 예수의 빛나는 혁명적 메시지와 자유를 퇴행시켜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는 야곱의 믿음을 강조하는 구약 중심의 신앙, 유대교적 율법주의로 변질시키고도 어찌 예수를 믿거나 따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민교회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사회 속에서 출세와 성공 지향의 욕망을 부추기는 반시대적, 반신앙적 메시지의 소굴이다. 다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많은 수의 교회가 그런 고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거대한 한인 이민교회들이 속속 그 위용을 자랑하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우리는 그런 교회당 안에만 들어가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 없다. 이역만리에 세운 우리들의 헌신과 노력에 감격해서이고, 동시에 그런 교회당 벽돌 한 장, 유리창 한 장마다에 스며든 이민자들의 한 맺힌 땀방울 눈물방울을 눈물어린 시선이 아니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의 베드로 성당의 위용과 화려함에 눌려서 감탄만 하고 있는 사람은 역사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이 먼 사람이다. 이민교회가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외로운 영혼들에게 가슴을 여는 대화의 장을 제공한 긍정적 측면을 어찌 무시할 수야 있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긍정적 측면을 이용하여 타락의 길로 치닫는 부정적 측면이 압도적이라는 데에 있다.
살펴보며
1960년대 이후 이민 문호 개방과 함께 밀려온 한인 이민자들의 폭발적인 수적 급증으로 이제는 미주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은 수에 이르렀다. 미국 연방정부에서 정기적으로 행하는 인구조사에 유감스럽게도 많은 한인 동포들이 고의로 참여하지 않아서-아마 귀찮기도 하고, 혹은 법적으로 신분노출이 가져올 어떤 두려움도 있을 테고-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알지는 못하지만, 요즘 흔히 전 미주 2백만 한인 동포를 거론하고, 뉴욕 지역만도 무슨 단체장 선거철이 되면 그 숫자를 부풀려서 대표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40만 동포를 공언한다. 이는 물론 이른바 불법 체류자들까지 추정하여 포함한 것이라 상당히 과장된 수치일 것이다. 미주 크리스챤 신문사에서 발간한 2002년도 해외한인교회 주소록에 수록된 교회 이름 및 교역자 수를 간단한 산수로 추정해 본 바에 의하면, 해외에 있는 한인 교역자 총수는 대략 4,400명, 교회수도 그 정도 4,400여 교회가 있는데, 그 가운데 미국에 있는 교회는 약 2,000 여 개 정도가 등록되어 있다. 실제는 이보다 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미국에서는 미주 한인교회 수를 약 3,000개로 말하는 이도 있는데, 이는 새로 개척된 영세 교회나 목사들은 통계에 잡혀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뉴저지 주를 포함한 대 뉴욕 지구 한인교회 수는〈2003년도 대 뉴욕지구 한인교회 주소록〉에 따르면, 교회 수 560여개, 교역자 수는 은퇴교역자를 포함 764명의 목사 이름이 등록되어 있다. 한국에서 전 인구의 30퍼센트 정도가 기독교인이라고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흔히 이민 동포사회에서는 전 인구의 75퍼센트 정도가 교회 또는 성당에 다닌다고 주장들을 한다. 그렇다면 40만 동포 사회에 560여개 교회면, 천주교 성당까지 고려한다 해도, 한 교회당 줄잡아 평균 500여 명씩 출석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가 3,000여명 출석하고, 1,000여명 넘는 교회도 여럿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동포 인구 밀집 지역이라고 할 훌러싱 지역의 수많은 한인 교회들 가운데는 주일 예배 평균 출석이 100명 미만인 교회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세한 교회들이 난립하고 있어서 자립을 위해 몸부림치듯 서로 애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새로 생겨나는 교회가 있고, 한 동안 지나고 나면, 얼마 전까지 있던 교회가 없어지는가 하면 없던 교회가 생겨나기도 하는 참으로 유동적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미주 내에서도 여러 개의 한인 신학교가 있어서 신학교 난립 상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런 신학교에서도 버젓이 신학석사(M.Div.) 학위를 수여한다고 하니, 어디까지가 합법적인지 모를 일이다. 배출되는 졸업생들은 교회를 개척하여야만 목회자의 자리가 생겨나는지라 그야말로 교회 개척은 어디든 틈만 있으면 교회 간판을 내거는 실정이다. 전 동포의 복음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로 40만 동포의 75%인 30만 명만 교회에 나온다 해도, 한 교회당 100명을 잡는다면 앞으로도 뉴욕 지역에만도 3,000개 교회가 될 때까지 교회 개척이 지속되어야하는 것이니 아득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목표 달성까지 멀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지경이 되면 온갖 종류의 교회가 어지럽게 설 테니, 도대체 미국 땅에서 한국식 영성이나 새벽기도의 '끝발'이 과연 우리를 건강하게 세워나갈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게다가 한국에서 신학교를 나오고도 갈 곳이 없게 된 많은 수의 신학교 졸업생들이 미국의 각 신학교마다 유학을 와서 어디에고 한국 학생이 넘쳐난다. 공부를 더 하겠다는 갸륵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또한 상당수는 어디 교회 빈 자리가 날 때를 기다리는 중간 정거장 정도로 여기는 태도 또한 없지 않다. 이제는 해외 선교사도 만원이고, 미국의 이민교회도 만원이다. 그다지 뼈 빠지게 일하지 않고 입만 잘 놀리면 좋은 대접받고 여러 사람 앞에 서서 회중을 내려다보면서 하느님을 빙자하여 큰 소리 치며 설교하는 재미가 어디 보통 재미인가?
그런 가운데서도 이민 교회가 '봉사'하는 일도 다양하여 한국에서는 예상도 못하는 분야까지 뻗어 있으니, 목회자들은 우선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좋게 말하면 진짜 섬기는 목회요, 나쁘게 말하면 목회자가 교인들 눈치 보기에 급급하여 이민 정착 과정에 만능 조력자의 역할을 감내해야 한다: 1) 도착하는 공항 영접, 2) 아파트 및 주택 안내, 3) 직업 소개 및 교육 훈련, 4) 영사관, 이민국, 학교, 국세청, 각종 정부기관 안내 및 돕기, 5) 영주권, 시민권 신청 알선, 대행, 6) 영어 통역 및 각종 서류작성 돕기, 7) 가정불화 중재, 8) 한국어 및 한국문화 교육, 9) 각종 문화행사 주최, 10) 대학진학 안내 및 지도, 11) 경로회, 경로대학, 12) 싱글(독신자)들 돕기 및 소개, 13) 병원, 법원, 행정기관 안내 및 심방, 14) 불우한 사람들 돕기, 15) 결혼식, 장례식 집례, 16) 야유회, 체육대회, 건강검진 봉사, 17) 친교 및 취미그룹 봉사, 18) 성경 교육, 19) 예배 및 기도회, 20) 가정, 직장, 병원 등 심방. 한국에서 보다 훨씬 더 많은 분야에 목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심지어는 수도꼭지도 고치고 소소한 전기공사를 비롯한 잡일도 해 줄 수 있는 '핸디 맨'이기도 하다. 이렇게 신세를 톡톡히 지고선 그렇게 도움을 준 목사가 있는 교회에 몸이 매이게 되겠지만, 세월이 가서 살만하게 되고 교외의 좋은 지역으로 이사 가고 나서는 마음이 바뀌게 마련이라, "이제 그만큼 나가 주었으면 됐지 뭐." 하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다반사다. 정착 과정의 초라했던 과거 모습을 잘도 기억하고 있는 목사와는 멀어지고 싶은 '과거 청산'이 자연스러운 순서로 찾아온다. 이민교회에 흔한 이른바 철새 교인들도 이런 면에서 늘 발생하는 현상의 하나다.
언론매체를 통해 중개되는 설교자들의 메시지도 메스꺼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목사만 아니라면 그런 한심스러운 말들은 뻔뻔하고 낯 두껍지 않고는 감히 할 수 없는 말도 예사로 하느님 말씀을 빙자하여 전파를 타고 퍼져나간다. 영적인 지도자는 그만두고 기본 상식도 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목사라고 앞에 나서는 한심스런 현상에 요즈음 차라리 불교로 전향하겠다고 내게 덤벼든 사람도 몇 명 만났다. 놀랍게도 그런 목사가 있는 교회일수록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니 집단 자학증에 걸리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가 있냐고 어떤 사람이 핏대를 세우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소위 정통 보수주의를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일수록, 이단 사냥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일수록, 기독교 도그마의 그늘에서 시대의 녹 쓴 칼을 휘두르며 신학교에서 배웠다는 권위만으로 평신도들이 잘 모르는, 알면 복종의 사슬을 차게 되고 마는, 그런 어려운 이론으로 억압의 도구를 삼아 윽박질러대는 일이 어찌 이다지도 잘도 받아들여진단 말인가? 교회는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일보다도 오히려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일이 많다고 회개하여야 한다. 동포 사회의 언론매체라는 것들도 돈만 주면 뭐든 다 광고해 주니 절대로 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일 수가 없다. 이민 사회에서는 교회가 가장 큰 광고주들의 하나라는 것이 통설이라 교회의 비위를 감히 거스를 언론매체는 없다.
내다보며
지난 9·11 사태로 미국은 새로운 세기에 돌입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 새로운 세기란 미국이 안고 있는 불안을 집약한 말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 불안을 극복해 갈 방안에 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위기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역사상 미증유의 대 제국을 건설하는 꿈이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제국이 안고 있는 취약점을 이미 역사 속에서 배웠기에 진실로 겸손히 더불어 사는 선한 이웃 나라로 새로 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내부에서 솟아나는 양심의 소리와 외부에서 몰려오는 압박을 받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위세를 더해 가는 군부와 재계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기에 지금 스스로 당혹한 지경에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비둘기파와 매파의 싸움이 아니라 전 세계 양심의 소리와의 싸움을 감내할 무모함을 이겨낼지의 문제다. 세계는 좁아지고 사람들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참여하며 또 그 영향을 직접 간접으로 훨씬 더 심각하게 받게 되었다. 지난번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생각 있는 사람들이 과연 기독교를 어떻게 반성할지 좀 두고 볼 일이다. 2,000년 역사 속에 함양되어 온 기독교 정신이 고작 사람들을 집단학살하는 데 기도해주고 응원해야 하는 배후 세력이나 된다면, 도대체 신앙이 왜 필요한 것인지 다시 물어보자고 대들어도 할 말이 마땅치 않다. 미국에서 기독교가 쇠퇴하여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인기 있는 종교로 번창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신학교에 유학 와서 비싼 돈 내고 공부하여 학위를 받아야 좋은 교회 담임목사, 좋은 신학교 교수로 취직되는 현상이 끝장나고도 여전히 교회가 살아 움직이기 전에는 감히 한국적 교회 타령은 그만두어야 한다.
이런 땅, 이런 시대를 살아가야 할 미주 이민교회의 설 자리는 어디며 또 무엇을 위해서 서야 하는가? 역사상 어느 제국도 단 한 가지의 이데올로기로는 오래 버티지 못하였듯이, 다민족 다문화에 노출되고 모든 면에서 다원주의가 그 타당성을 인정받는 시대를 헤쳐 나가면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종교나 교회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한인 이민교회들은 서너 가지 심각한 위험을 전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첫째는 미국이 언제까지 이민의 문호를 개방할 것이냐? 둘째는 기독교가 언제까지 그 보수 근본주의의 고집을 견지할 것이냐? 셋째는 생태계가 언제까지 안전한 품으로 여겨질 것이냐? 넷째는 조국이 언제까지 자랑스러운 나라로 여겨질 것이냐? 등등이다.
지금 미국은 내부에서 반 이민의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는 현실이다. 심지어는 이민의 혜택으로 이 땅에 온 한국인들의 입에서도 이민은 이제 그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지경이니, 어느 한계를 넘으면 이 집단 이기심이 먼저 자리 잡은 사람들의 권리처럼 발동할 것은 자명하다. 오래 전에 떴다 가라앉은 황화론(黃禍論)은 미국의 동서를 꿰는 대륙횡단 철로 공사에 실컷 부려먹고 남은 중국인 쿠리(苦力)들이 대거 미국에 몰고 올 아시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면, 최근 실업률이 높아지자 대뜸 아시안들이 자기네 일자리를 다 점령해 들어온다고 엉뚱한 희생양을 찾는 소리도 새로운 황화론으로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의 '좋았던 옛 시절'(good old days)은 1950년대였다고 아쉬운 듯 회상한다. 세계 제 2차 대전에서 원자폭탄과 노르망디 상륙 작전 등 막강한 외교 및 군사력을 확인하고 세계를 제패한 승리의 도취감, 전장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이 가정에 안주하며 아이를 낳고 열심히 평화를 갈구하던 전후의 안도감, 아직 이민의 물결이 덮치기 전이라 백인 우월주의가 늠연히 맹위를 떨치던 시절의 자족감, 풍부한 자원과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자동차, 전화, 텔레비전, 냉난방시설이 널리 보급된 편안함과 안락감, 그리고 승전국의 자부와 권한을 타고 세계 어디를 가나 대접받던 미국인의 자존감, 이런 모든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도전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때가 아닌 21세기로 들어섰다. '잘 사는 나라' 미국의 이미지가 온 세계에서 기회를 잡고 싶은 사람들, 꿈을 이루려는 희망을 안고 오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할 때는 언제까지일까? 중국의 경제적 비약을 내다보며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에 조급해질 미래의 미국이, 이민으로 국력을 신장해 온 지난날의 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면, 이민의 문을 언제고 급히 닫고 말 것이다. 한국 이민교회의 존망은 여기에 고리가 걸려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 이민 제 2세들로 이어갈 미래의 한인교회는 어떤가? 필자가 봉직하는 뉴욕한인교회는 뉴욕 지역에서 제일 먼저 영어회중목회(English language ministry)를 1985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데, 생물학적 한국인의 후예들이라는 점만 빼놓으면 사실상 그들은 한국적이기보다는 철저히 미국화된 문화와 가치 아래 살기에 이민교회의 미래와는 관계없는 전혀 독자적인 교회로 드러난다. 조국통일이니 뭐니 하는 역사의식이나 전통 한국문화니 하는 것들이 더 이상 관심의 중심에 있지 않다. 그들은 영어로 일상을 살고, 미국의 주류 속에서 인종적 차별 이외에는 삶을 영위하는 모습이 이민 1세들과는 판이하다. 종교적 심성도 마찬가지로 그 동기나 행태에 있어서 더 이상 조상들의 것을 계승할 이유도 욕망도 없다. 게다가 솔직히 '한국적'이라고 자랑스럽게 세계만방에 휘두를 깃발도 없다고 보는 것이 그들의 견해다. 도대체 한국적이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그들과 긴 토론을 해 본 결과, 오히려 2세들로서는 한국적인 것은 버려야 할 것이지 계승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는 주장 앞에 나는 별로 설득력 있게 반론을 할 것이 없었다. 최근에는 이곳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다분히 미국의 싸구려 문화를 모방한 한국 연예인들이나 돈 잘 버는 운동선수들에 대한 흠모와 추종이지 인간문화재나 전통음악, 전통예술 등 전통이란 이름의 그 무엇도 아니다.
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민교회에 출석하는 중·고등부 학생들의 80∼90퍼센트는 일단 대학만 가면 다들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정확한 조사가 아니고 젊은 학생들 몇 명에게 물어본 것이라서, 객관적 타당성은 없고 수치도 믿을 수는 없지만 감각적으로 여기에 옮긴다.) 어릴 때는 부모님들 등쌀에 억지로 교회에 나오지만, 일단 스스로 행동을 택할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한국식 교회의 신앙을 물려받기를 거부한다. 따라서 2세들 가운데 신학교에 가서 장차 목회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일단 이른바 성공한 1세 목회자들의 직계 자손들이거나,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어버이들의 행태에서 본받은 세상물정 모르는 '정신 나간' 행동이거나, 1세들이 곱게 세뇌시킨 얌전이들뿐이라고 비아냥대는 말도 들었다. 기성의 1세 중심 교회들은 지금이 어느 때라고 1970년대식 신앙을 읊조리며 외형만 부풀리는 거품 신앙에 놀아나 미국 사회를 뚫고 건강하게 세워갈 미래의 의지와는 관계없다고 비판받고 있다. 한인 이민교회는 한국에서 밀려오는 새로운 이민으로 보급되지 않는 한 점차로 쇠약해지고 기울어서 지금 저토록 힘들여 지어놓은 교회 건물들이 얼마 후 맥없이 팔려나갈 것을 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보수 근본주의가 여전히 성행하려면, 머리로는 한쪽을 생각하고 가슴으로는 다른 쪽을 껴안는 이상한 정신분열증 환자들이나 집단 자학증에 걸린 자들이라면 모를까, 참으로 암담한 미래다. 기독교 자체가 대 변혁을 각오하지 않으면 불원 미국도 유럽처럼 유령들이나 출몰하는 거대한 교회당만 남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생태계의 황폐는 미국에 관한 한 한국보다는 월등하게 좋은 환경이지만, 인간중심의 발전이란 그것이 과학이든 종교든 결국 생명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불가역적 진행을 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터라, 이 또한 초미의 관심사다. 이는 범종교적 연합운동이 아니고는 어느 한 종교의 힘만으로는 되지도 않을뿐더러 이에 무관심한 종교는 당연히 도태되어야할 미래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그 탁월한 창조신앙에도 불구하고, 눈먼 과학자들이 한심한 창조과학이나 읊어대는 정도로는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성서가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동성애자 차별이든 안락사 반대이든 낙태운동 반대이든 모두 획기적 재해석을 허락하지 않는 한 미래의 이민교회만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가 문제시될 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민교회는 그런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완고한 그리고 가장 천박한 신학에 눈이 먼 한국의 보수 근본주의를 모태로 하고 있는 한 가장 배타적인 교회이다. 종교 다원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자체의 정화 작용을 상실한 교조주의에 빠져 곧 각종 귀신들이 날뛰는 음산한 묘지로 화할 날을 예상해도 좋다. 생태신학이 이미 교회 시장에 나온 지 오래지만 교회는, 특히 미국 교회들은 아직 편안한 상태에서 엉덩이에 불이 붙어 있는 것도 모르고 따뜻한 기온만 대견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주에 있는 한인 이민교회치고 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없을 것이다. IMF 사태가 터진 조국을 향하여 눈물의 통성기도를 한 이민교회가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수 천 교회요, 총구에 목숨을 내걸고 푼푼이 번 돈을 고국으로 송금한 대열이 동포 은행 창구 앞에 줄을 이었던 감동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오죽하면 로스앤젤레스는 서울시 나성구, 뉴욕은 서울시 뉴욕구라고 까지 말하랴. 제1세대 이민교회는 정직하게 말하여 한국에 있는 교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미국이란 개척지대에서 힘차게 살아갈 영성보다는 오히려 한국에서 한물 간 메시지를 뒤늦게 미국 사회에 와서 뿌려대는 이른바 부흥사들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미국 현실에 맞지 않는 부정적인 효과를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교회들보다 미주 이민교회들이 대체로 한 10년쯤 뒤떨어졌다고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신학생들이 소감을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970년대에 조국을 떠난 사람들의 정신은 거기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해외에 있으면 아침부터 인터넷 신문을 비롯하여 고국의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살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연민을 금할 수 없지만,〈뉴욕 타임스〉를 밀쳐놓고 한국계 동포 신문을 먼저 샅샅이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인 동포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은 아주 크게 바뀌어야 할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솔직히 미국에 오래 살면서 건너다보는 조국의 모습은 되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으로 눈물 글썽일 때도 많지만, 어찌하든 조국이 어려운 현실을 넘어가서 새 역사의 빛으로 떠오르기를 기도하며 마음 졸이는 대상이기도 하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민족의 정기와 한국인의 영적 각성을 위해서 어디 희망을 둘 데가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언론이니, 교육이니, 어디에도 새로운 개혁을 위한 희망을 둘 데가 없어도, 그래도 교회만은 최후의 희망으로 살아 있기를 바란 소망조차 배신당하는 작금의 기분을 위로 받을 데가 없다. 나 자신이 이 시대의 목사인 것이 부끄럽다. 그러나 아직은 기독교인인 것이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이 글을 끝맺는다. 내 불길한 예상들이 적어도 앞으로 20년만 맞지 않아서, 내 눈으로 내 예상이 틀린 것을 보고 죽을 수만 있다면 진실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떠나고 싶다. 아니, 그런 예상이 틀리게 만들 일에 죽을 때까지 작은 힘이라도 쓰다가 떠날 수 있기를.
미주 한인 이민교회의 현실과 전망
한성수(뉴욕한인교회 담임목사)
돌아보며
"강변에 앉아 울었노라!" 이 가슴아픈 구절은 필자가 봉직하고 있는 뉴욕한인교회가 1991년 12월에 발간한 70년 역사책의 이름이다. 1960년대 미국이 이민의 문호를 열기 전까지는 뉴욕 지역에 있었던 교회는〈뉴욕한인교회〉하나뿐이었기에, 그 서러움의 실타래를 허드슨 강물에 풀며 '강변에 앉아 울었던' 한인 기독교인들의 정서를 잘 나타낸 말이다. 시편 137편 1절,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는 현재 프린스톤 신학교의 이상현 교수가 1970년대 한인 이민의 신학을 말하면서 인용한 구절이기도하다.
한국 이민의 패러다임은 출애굽이 아니라 바빌론 포로의 경험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들에 설득력이 더 실린 이유도 고난의 경험 때문이다. 이민 초기 1903년 1월 13일 겔릭(Gaelic)호를 타고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102명의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든 혹은 사진결혼을 한 신부들이든, 점보제트기를 타고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 요즈음 이민자들이든, 일단 뼈아픈 눈물을 흘리는 상당한 세월의 세례를 받아야 비로소 스스로 이민자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못할 짓 하고 돈 싸들고 미국으로 도망쳐와 몸을 숨긴 채 골프장 신세나 지는 사람들일지라도, 눈물을 흘린 세월의 감회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경험을 하지 않은 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인 이민자로 보아줄 수 없다.
이민교회의 존재 근거는 바로 이 '강변에 앉아 우는' 가슴을 안고 찾아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많은 세월을 이역에서 살아온 지혜로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그래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여전히 뒤돌아볼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찾아드는 교회, 거기에 이민교회의 위상이 있다. 단순히 견디기 힘든 괴로움의 눈물만이 아니라 뼈 속 깊이 사무치는 외로움이 자아내는 존재 위기의 눈물이기도 하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뉴욕 지역에서도 한 복판인 만하탄에 자리 잡은 까닭에, 비교적 이민 온지 오래된 사람들, 안정된 삶에 이른 사람들, 그리고 상당한 지식인들이면서도 무언가 상실감을 안고 사는 사람들, 그러기에 유난히 조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강변에 앉아 우는 마음은 조국을 그리는 마음과 통한다.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서 돌아갈 수 없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 애잔한 소망들이 합쳐진 복합심리를 띠고 있다.
뉴욕은 전 미국에서도 가장 인종 편견이 적고 이른바 '세계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국제 감각이 앞선 도시여서 우리 한국인들이 살아가기에 상대적으로 편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내 나라, 내 조국이 아니라는 느낌이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에 혼동을 더하는 것은 세월과는 관계없는 이민자들의 가슴에 스며 새겨진 한(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종 편견은 미국에서 살아온 300년의 역사를 등에 지고도 여전히 성난 항거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변함없는 거센 음조에 실려 있는데, 이제 겨우 한 세기도 채 안 되는 이민 역사에서 한국인들이 겪어야 하는 인종차별이 어찌 없겠는가? 교묘하게 위장된, 그래서 정확히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아픔은 배운 사람들일수록 견디기 힘든 자존심의 상처로 깊이 박힌다. 조국을 등지고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의 마음은 죄의식, 뻔뻔함, 원망, 오기, 희망에 부푼 기대 등 별의별 요소들이 뒤섞여 있겠지만, 이역에서 한을 안고 살아가는 이민 일세들이 그 모든 상이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의 목표로 지향하는 것, 그래서 가장 힘을 써서 삶의 중심으로 헌신하는 것은 아마도 자녀교육일 것이다. 그 바닥엔 자기가 받은 인종 편견에 대한 오기어린 복수심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른바 명문대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이 곧 바로 그들의 인생의 성공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부모로서 어떤 고생이나 모욕도 참으면서 마침내 자녀들을 백인 중산층 혹은 상류층도 함부로 못 들어가는 미국 동부의 명문이라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내는 것은 그것으로 맺힌 한의 일부가 풀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입시철만 되면 교회 앞에 '대학입시를 위한 백일기도'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야단스럽게 극성을 떨지만, 미국에서도 새벽기도의 주요 제목은 자녀들의 명문대학 입학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집 자녀가 명문 대학에 입학하면 한국어 신문에서는 다투어 보도하지만, 교회에서는 일체 이런 일을 함부로 알리지도 못한다. 다른 부모들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시샘의 정도를 넘어 이민자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척도처럼 여겨지는 현상이며, 사실 자신의 과거 모습에 대한 한풀이의 변형이기도 하다. 교회의 새벽기도가 사업의 성공, 식구들의 건강, 자녀들의 학업에 집중되는 것을 보면 한국 교회의 신앙 행태가 여기서도 여전히 성행하는 현실이다. 실로 나와 내 가정 만에 몰두하는, 마치 여호수아가 여리고 침공하듯 하는 정신만 강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열린 가족, 예수 안에서 확대된 가족으로서의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의 능력을 독점해서라도 나와 내 가족의 이익을 보증 받으려는 사유화의 욕망으로 내닫기 쉬운 현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사람됨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의 성공을 통하여 신앙의 수준이나 질적 내용이 검증 받는, 그리하여 실용주의적 가치의 기반으로 신앙이 전락한 것은 사실 한국에서부터 배우고 지녀온 유산이다. 아니, 미국에서 건너가 한국에서 증폭되어 다시 미국으로 넘어온 '수단으로서의 종교'이다. 거기에 오늘의 한국인들이 지닌 천박한 기독교 신앙의 특성이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을 식별하기란 어렵지 않다. 나는 이런 점을 비교적 오래된 이민자들, 1970년대 이전에 미국에 온 사람들과 1970년대 이후에 이민 온 사람들의 신앙 행태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 한국에서 온 사람들일수록 교회에 열심을 내는 정도에 비하여 그 신앙은 주로 물질적, 가시적, 효용적 측면에 대한 확인에 조급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가난과 질병과 고난의 현장에서 익숙해진 하느님에 대한 의존적 태도야 굳이 나무랄 일이 아니라 해도, 사랑보다는 믿음의 힘을 강조하는 몰가치적 현실 종교, 아니, 미래의 영생까지도 현실에서 확인하고 안심하는 그런 조급한 욕망 성취가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교회가 고난을 몸으로 입증한 역사는 극히 일부의 '기현상'일 뿐이고, 대부분은 세속적 욕망 성취를 쟁취하는 원동력을, 혹은 이미 누리는 자의 불안을 달래며 평안케 마사지(massage)하는 메시지(message)에 우리는 반세기 동안 젖어온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한국식 신앙의 격렬한에너지를 자랑삼아 이민 생활의 성공을 쟁취하려는 것이다.
1920∼30년대 미국 이민교회는 단순한 실향민이 아니라, 나라 잃은 설움이 자아 모멸에 이르도록 따돌림 당한 경험에서 치솟아 나라의 독립을 위한 헌금에 온 교인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한 눈물겨운 기록들이 생생히 남아 있다.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 사진결혼 신부들이 모두 조국 광복과 독립의 투사들이요, 광복어머니회원들이 된 숙연한 역사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에 비하여 1970∼80년대의 한인 이민교회들 가운데 조국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반독재 투쟁이나 사회정의의 깃발을 내건 곳은 전 미주를 통 털어도 가물에 콩 나듯 극소수였다. 눈앞에 굴러다니는 동전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정작 저 언덕 너머 동터오는 새벽의 기운에는 눈을 감았던 것이다. 극히 소수의 기독인들이 〈목요기도회〉나 항의 데모에 나서면, 언제나 돌아온 것은 빨갱이 무리, 혹은 반정부 인사들, 아니면 누군가에 등을 기댄 정치꾼 정도로 폄하되기 예사였다. 지금은 북한 드나들기를 건넛방 가듯 하는 목사들도, 옛날엔 입을 모아 반공 구호에 핏대 세우며 선구자들을 온갖 험구로 비난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북미기독학자회〉가 해마다 북한의 조선기독교연맹 인사들을 초청했던 일도 이제는 옛말이 되고 말았지만, 그때는 상당한 용기와 선견지명이 필요한 처사였기에 거기 참여했던 사람들은 돌아가 자기 교회에서 따돌림 당하거나 빨갱이 무리라는 엉뚱한 누명을 쓰는 난감한 입장에 처한 적이 많았다.
일반 교인들도 적어도 1990년대 이전에는 생존이 급해서라기보다는, 물질적 풍요의 땅에서 현실적 욕망을 잠재울 수 없는 다급함으로 삶을 꾸려나갔다. 교회도 고통당하는 이민자들을 위로한답시고 예수의 정신과는 동떨어진 위로와 격려에만 급급하다가 정작 버릇없는 교인들을 양산하고 말았다. 나라보다는 나의 문제가 급선무요, 동족들이 당할 멸시보다는 나의 은행구좌가 선결문제였기에, 어찌하든 돈만 벌면 되는 물신숭배의 정신이 기독교 복음의 내용으로 둔갑된 지난 40년을 되돌아보면 탄식을 금할 수 없다. 고생하는 이민자들에게 복음이라는 명분으로 어설픈 위로를 퍼붓고는, 그들의 땀의 결정인 막대한 헌금을 거두어들여 자체의 몸 불리기에 급급해 온 교회가 아닌지 이민교회들은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어찌 이민자들을 위로하시고 복을 주시는 예수님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우리는 이민교회라는 게토를 이루고 그 안에서 상처를 서로 핥는 퇴행적 위안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았던가?
한인 이민교회들은 먼저 자리 잡은 자들의 텃세에 눌려 이른바 미국 주류 사회의 현장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난 여백 지대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니 '변두리 신드롬'이라고 할 보상 심리가 교회 내에서 신자들로 하여금 '계급제도'에 유난히 민감하게 만들었다. 장로니 권사니 집사니 하는 일종의 종교계급이 횡포를 부리고, 미국 사회에서는 누릴 수 없는 특권과 명예를 교회에서 사고 파는 보상제도가 지배하다 보니 교회마다 이 장로 제도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는 교회가 없을 정도다. 온갖 천대를 감내하는 이민살이의 설움이 교회만 오면 졸지에 명예와 존경으로 둔갑하는 자리, 그것이 장로라는 자리다. 그러나 장로는 여전히 목사 아래라, 사는 형편이 좀 펴고 나면 그 흔한 이민 신학교 야간반이라도 졸업하고 어느 사이에 어제의 장로가 내일의 목사로 둔갑하는 일이 종종 생겨난다. 목사란 자리는 교회 내 신분 상승의 정점이 되었다.
예수의 혁명적 메시지는 다 어느 바위틈에 스며들어 지하수로 잠적했고, 바울의 십자가 신학이 고단한 영혼을 위로하는 면죄부로, 험로를 뚫고 복을 받는 축복의 징표로 홍수처럼 흐르는 현실이 이민교회 신학의 주류가 되었다. 십자가 보혈이 축복의 복덕방망이로 둔갑한 이런 교회가 과연 무슨 재주로 미국의 역사 속에 역동적인 정의의 목소리로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합류하는 날을 볼 수 있겠는가? 이민교회는 탈역사, 탈정치, 탈문화, 탈사회적 보루에 나약한 이민자들을 폐쇄시키는 반동세력이 되고 말았다. 동포 사회에서 무슨 연합운동을 하려 해도 자기 교인 어떻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목사들의 밴댕이 소갈머리에 가려서, 목사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게 단속하는 통에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다. 여성들은 여전히 순종하고 조력하고 뒤에서 희생하고 그러면서도 목소리를 죽여야 하는 억압과 유교적 가치관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장소가 교회다. 남녀평등이 절대로 안 되는 교회가 한국 이민교회다. 도전적인 여성신학은 말할 것도 없고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도 이단으로 정죄받고 매도당하여, 뭔지도 모르면서 마귀의 신학으로 타도 대상이 된 것은 한국이나 이민교회나 마찬가지다. 목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학은 일체 이단이고 마귀고 죄악의 자식들이다. 여성은 교회를 돕는 존재들이지 교회가 도와야 할 존재들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 이민 물결의 물길을 터놓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은 국제 결혼한 여성들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주한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여성들은 줄잡아 20만으로 추정되며 아직도 그 숫자는 늘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신음할 때 못난 나라의 고난을 어깨에 지고 역사의 칼을 맞아 온몸에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그들이다. 가난한 가정을 푼돈이라도 돕자고 고난의 행군을 한 사람들 가운데 국제 결혼한 여성들보다 더 신산한 과거를 지닌 사람들은 없다. 그들은 미국에 정착하기가 바쁘게 친정 식구들을 가족 초청으로 줄줄이 이민 대열에 올린 사람들이었다. 초기에는 유학생들에게 한국음식, 취직알선 등으로 극성스럽게 도움을 주었지만, 그들이 학위를 따고 나면 철저히 관계를 외면당하였고, 교회를 개척한 후에 영주권을 따고 나면 어김없이 떠나간 철새들이 또한 목사들이었다. 국제결혼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목회자들은 열등한 목사라는 생각에 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그녀들을 떠나는 것이 소망인 목사들에 의하여 버림 받았던 것이다. 가족들조차도 살 만큼 안정을 얻으면 놀랍게도 그녀들에게 출입금지령을 내리기가 일쑤라, 국제결혼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족들로부터도 조국으로부터도 미국으로부터도 버림을 받는다. 그들은 억척스러울 정도로 교회에 헌신하는 열성적인 기독교인들이 되어 지난 날의 상처와 한 맺힌 사연들을 접고 예수의 해방의 메시지에 의해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려는 사람들이다. 미국 이민교회들 가운데 국제결혼한 여성들의 신세를 지지 않은 교회가 과연 몇이나 되리요만, 그들은 교회 안에서도 차별을 받은 일이 부지기수며, 특별히 목회자들에게 경제적 착취, 성적인 유혹과 학대를 받거나 악용된 예도 미국 전역에 널려 있을 정도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인교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소위 지도급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수 근본주의로 중무장하고, 예수의 빛나는 혁명적 메시지와 자유를 퇴행시켜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는 야곱의 믿음을 강조하는 구약 중심의 신앙, 유대교적 율법주의로 변질시키고도 어찌 예수를 믿거나 따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민교회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사회 속에서 출세와 성공 지향의 욕망을 부추기는 반시대적, 반신앙적 메시지의 소굴이다. 다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많은 수의 교회가 그런 고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거대한 한인 이민교회들이 속속 그 위용을 자랑하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우리는 그런 교회당 안에만 들어가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 없다. 이역만리에 세운 우리들의 헌신과 노력에 감격해서이고, 동시에 그런 교회당 벽돌 한 장, 유리창 한 장마다에 스며든 이민자들의 한 맺힌 땀방울 눈물방울을 눈물어린 시선이 아니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의 베드로 성당의 위용과 화려함에 눌려서 감탄만 하고 있는 사람은 역사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이 먼 사람이다. 이민교회가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외로운 영혼들에게 가슴을 여는 대화의 장을 제공한 긍정적 측면을 어찌 무시할 수야 있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긍정적 측면을 이용하여 타락의 길로 치닫는 부정적 측면이 압도적이라는 데에 있다.
살펴보며
1960년대 이후 이민 문호 개방과 함께 밀려온 한인 이민자들의 폭발적인 수적 급증으로 이제는 미주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은 수에 이르렀다. 미국 연방정부에서 정기적으로 행하는 인구조사에 유감스럽게도 많은 한인 동포들이 고의로 참여하지 않아서-아마 귀찮기도 하고, 혹은 법적으로 신분노출이 가져올 어떤 두려움도 있을 테고-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알지는 못하지만, 요즘 흔히 전 미주 2백만 한인 동포를 거론하고, 뉴욕 지역만도 무슨 단체장 선거철이 되면 그 숫자를 부풀려서 대표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40만 동포를 공언한다. 이는 물론 이른바 불법 체류자들까지 추정하여 포함한 것이라 상당히 과장된 수치일 것이다. 미주 크리스챤 신문사에서 발간한 2002년도 해외한인교회 주소록에 수록된 교회 이름 및 교역자 수를 간단한 산수로 추정해 본 바에 의하면, 해외에 있는 한인 교역자 총수는 대략 4,400명, 교회수도 그 정도 4,400여 교회가 있는데, 그 가운데 미국에 있는 교회는 약 2,000 여 개 정도가 등록되어 있다. 실제는 이보다 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미국에서는 미주 한인교회 수를 약 3,000개로 말하는 이도 있는데, 이는 새로 개척된 영세 교회나 목사들은 통계에 잡혀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뉴저지 주를 포함한 대 뉴욕 지구 한인교회 수는〈2003년도 대 뉴욕지구 한인교회 주소록〉에 따르면, 교회 수 560여개, 교역자 수는 은퇴교역자를 포함 764명의 목사 이름이 등록되어 있다. 한국에서 전 인구의 30퍼센트 정도가 기독교인이라고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흔히 이민 동포사회에서는 전 인구의 75퍼센트 정도가 교회 또는 성당에 다닌다고 주장들을 한다. 그렇다면 40만 동포 사회에 560여개 교회면, 천주교 성당까지 고려한다 해도, 한 교회당 줄잡아 평균 500여 명씩 출석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가 3,000여명 출석하고, 1,000여명 넘는 교회도 여럿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동포 인구 밀집 지역이라고 할 훌러싱 지역의 수많은 한인 교회들 가운데는 주일 예배 평균 출석이 100명 미만인 교회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세한 교회들이 난립하고 있어서 자립을 위해 몸부림치듯 서로 애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새로 생겨나는 교회가 있고, 한 동안 지나고 나면, 얼마 전까지 있던 교회가 없어지는가 하면 없던 교회가 생겨나기도 하는 참으로 유동적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미주 내에서도 여러 개의 한인 신학교가 있어서 신학교 난립 상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런 신학교에서도 버젓이 신학석사(M.Div.) 학위를 수여한다고 하니, 어디까지가 합법적인지 모를 일이다. 배출되는 졸업생들은 교회를 개척하여야만 목회자의 자리가 생겨나는지라 그야말로 교회 개척은 어디든 틈만 있으면 교회 간판을 내거는 실정이다. 전 동포의 복음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로 40만 동포의 75%인 30만 명만 교회에 나온다 해도, 한 교회당 100명을 잡는다면 앞으로도 뉴욕 지역에만도 3,000개 교회가 될 때까지 교회 개척이 지속되어야하는 것이니 아득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목표 달성까지 멀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지경이 되면 온갖 종류의 교회가 어지럽게 설 테니, 도대체 미국 땅에서 한국식 영성이나 새벽기도의 '끝발'이 과연 우리를 건강하게 세워나갈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게다가 한국에서 신학교를 나오고도 갈 곳이 없게 된 많은 수의 신학교 졸업생들이 미국의 각 신학교마다 유학을 와서 어디에고 한국 학생이 넘쳐난다. 공부를 더 하겠다는 갸륵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또한 상당수는 어디 교회 빈 자리가 날 때를 기다리는 중간 정거장 정도로 여기는 태도 또한 없지 않다. 이제는 해외 선교사도 만원이고, 미국의 이민교회도 만원이다. 그다지 뼈 빠지게 일하지 않고 입만 잘 놀리면 좋은 대접받고 여러 사람 앞에 서서 회중을 내려다보면서 하느님을 빙자하여 큰 소리 치며 설교하는 재미가 어디 보통 재미인가?
그런 가운데서도 이민 교회가 '봉사'하는 일도 다양하여 한국에서는 예상도 못하는 분야까지 뻗어 있으니, 목회자들은 우선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좋게 말하면 진짜 섬기는 목회요, 나쁘게 말하면 목회자가 교인들 눈치 보기에 급급하여 이민 정착 과정에 만능 조력자의 역할을 감내해야 한다: 1) 도착하는 공항 영접, 2) 아파트 및 주택 안내, 3) 직업 소개 및 교육 훈련, 4) 영사관, 이민국, 학교, 국세청, 각종 정부기관 안내 및 돕기, 5) 영주권, 시민권 신청 알선, 대행, 6) 영어 통역 및 각종 서류작성 돕기, 7) 가정불화 중재, 8) 한국어 및 한국문화 교육, 9) 각종 문화행사 주최, 10) 대학진학 안내 및 지도, 11) 경로회, 경로대학, 12) 싱글(독신자)들 돕기 및 소개, 13) 병원, 법원, 행정기관 안내 및 심방, 14) 불우한 사람들 돕기, 15) 결혼식, 장례식 집례, 16) 야유회, 체육대회, 건강검진 봉사, 17) 친교 및 취미그룹 봉사, 18) 성경 교육, 19) 예배 및 기도회, 20) 가정, 직장, 병원 등 심방. 한국에서 보다 훨씬 더 많은 분야에 목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심지어는 수도꼭지도 고치고 소소한 전기공사를 비롯한 잡일도 해 줄 수 있는 '핸디 맨'이기도 하다. 이렇게 신세를 톡톡히 지고선 그렇게 도움을 준 목사가 있는 교회에 몸이 매이게 되겠지만, 세월이 가서 살만하게 되고 교외의 좋은 지역으로 이사 가고 나서는 마음이 바뀌게 마련이라, "이제 그만큼 나가 주었으면 됐지 뭐." 하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다반사다. 정착 과정의 초라했던 과거 모습을 잘도 기억하고 있는 목사와는 멀어지고 싶은 '과거 청산'이 자연스러운 순서로 찾아온다. 이민교회에 흔한 이른바 철새 교인들도 이런 면에서 늘 발생하는 현상의 하나다.
언론매체를 통해 중개되는 설교자들의 메시지도 메스꺼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목사만 아니라면 그런 한심스러운 말들은 뻔뻔하고 낯 두껍지 않고는 감히 할 수 없는 말도 예사로 하느님 말씀을 빙자하여 전파를 타고 퍼져나간다. 영적인 지도자는 그만두고 기본 상식도 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목사라고 앞에 나서는 한심스런 현상에 요즈음 차라리 불교로 전향하겠다고 내게 덤벼든 사람도 몇 명 만났다. 놀랍게도 그런 목사가 있는 교회일수록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니 집단 자학증에 걸리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가 있냐고 어떤 사람이 핏대를 세우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소위 정통 보수주의를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일수록, 이단 사냥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일수록, 기독교 도그마의 그늘에서 시대의 녹 쓴 칼을 휘두르며 신학교에서 배웠다는 권위만으로 평신도들이 잘 모르는, 알면 복종의 사슬을 차게 되고 마는, 그런 어려운 이론으로 억압의 도구를 삼아 윽박질러대는 일이 어찌 이다지도 잘도 받아들여진단 말인가? 교회는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일보다도 오히려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일이 많다고 회개하여야 한다. 동포 사회의 언론매체라는 것들도 돈만 주면 뭐든 다 광고해 주니 절대로 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일 수가 없다. 이민 사회에서는 교회가 가장 큰 광고주들의 하나라는 것이 통설이라 교회의 비위를 감히 거스를 언론매체는 없다.
내다보며
지난 9·11 사태로 미국은 새로운 세기에 돌입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 새로운 세기란 미국이 안고 있는 불안을 집약한 말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 불안을 극복해 갈 방안에 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위기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역사상 미증유의 대 제국을 건설하는 꿈이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제국이 안고 있는 취약점을 이미 역사 속에서 배웠기에 진실로 겸손히 더불어 사는 선한 이웃 나라로 새로 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내부에서 솟아나는 양심의 소리와 외부에서 몰려오는 압박을 받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위세를 더해 가는 군부와 재계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기에 지금 스스로 당혹한 지경에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비둘기파와 매파의 싸움이 아니라 전 세계 양심의 소리와의 싸움을 감내할 무모함을 이겨낼지의 문제다. 세계는 좁아지고 사람들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참여하며 또 그 영향을 직접 간접으로 훨씬 더 심각하게 받게 되었다. 지난번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생각 있는 사람들이 과연 기독교를 어떻게 반성할지 좀 두고 볼 일이다. 2,000년 역사 속에 함양되어 온 기독교 정신이 고작 사람들을 집단학살하는 데 기도해주고 응원해야 하는 배후 세력이나 된다면, 도대체 신앙이 왜 필요한 것인지 다시 물어보자고 대들어도 할 말이 마땅치 않다. 미국에서 기독교가 쇠퇴하여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인기 있는 종교로 번창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신학교에 유학 와서 비싼 돈 내고 공부하여 학위를 받아야 좋은 교회 담임목사, 좋은 신학교 교수로 취직되는 현상이 끝장나고도 여전히 교회가 살아 움직이기 전에는 감히 한국적 교회 타령은 그만두어야 한다.
이런 땅, 이런 시대를 살아가야 할 미주 이민교회의 설 자리는 어디며 또 무엇을 위해서 서야 하는가? 역사상 어느 제국도 단 한 가지의 이데올로기로는 오래 버티지 못하였듯이, 다민족 다문화에 노출되고 모든 면에서 다원주의가 그 타당성을 인정받는 시대를 헤쳐 나가면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종교나 교회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한인 이민교회들은 서너 가지 심각한 위험을 전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첫째는 미국이 언제까지 이민의 문호를 개방할 것이냐? 둘째는 기독교가 언제까지 그 보수 근본주의의 고집을 견지할 것이냐? 셋째는 생태계가 언제까지 안전한 품으로 여겨질 것이냐? 넷째는 조국이 언제까지 자랑스러운 나라로 여겨질 것이냐? 등등이다.
지금 미국은 내부에서 반 이민의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는 현실이다. 심지어는 이민의 혜택으로 이 땅에 온 한국인들의 입에서도 이민은 이제 그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지경이니, 어느 한계를 넘으면 이 집단 이기심이 먼저 자리 잡은 사람들의 권리처럼 발동할 것은 자명하다. 오래 전에 떴다 가라앉은 황화론(黃禍論)은 미국의 동서를 꿰는 대륙횡단 철로 공사에 실컷 부려먹고 남은 중국인 쿠리(苦力)들이 대거 미국에 몰고 올 아시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면, 최근 실업률이 높아지자 대뜸 아시안들이 자기네 일자리를 다 점령해 들어온다고 엉뚱한 희생양을 찾는 소리도 새로운 황화론으로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의 '좋았던 옛 시절'(good old days)은 1950년대였다고 아쉬운 듯 회상한다. 세계 제 2차 대전에서 원자폭탄과 노르망디 상륙 작전 등 막강한 외교 및 군사력을 확인하고 세계를 제패한 승리의 도취감, 전장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이 가정에 안주하며 아이를 낳고 열심히 평화를 갈구하던 전후의 안도감, 아직 이민의 물결이 덮치기 전이라 백인 우월주의가 늠연히 맹위를 떨치던 시절의 자족감, 풍부한 자원과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자동차, 전화, 텔레비전, 냉난방시설이 널리 보급된 편안함과 안락감, 그리고 승전국의 자부와 권한을 타고 세계 어디를 가나 대접받던 미국인의 자존감, 이런 모든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도전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때가 아닌 21세기로 들어섰다. '잘 사는 나라' 미국의 이미지가 온 세계에서 기회를 잡고 싶은 사람들, 꿈을 이루려는 희망을 안고 오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할 때는 언제까지일까? 중국의 경제적 비약을 내다보며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에 조급해질 미래의 미국이, 이민으로 국력을 신장해 온 지난날의 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면, 이민의 문을 언제고 급히 닫고 말 것이다. 한국 이민교회의 존망은 여기에 고리가 걸려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 이민 제 2세들로 이어갈 미래의 한인교회는 어떤가? 필자가 봉직하는 뉴욕한인교회는 뉴욕 지역에서 제일 먼저 영어회중목회(English language ministry)를 1985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데, 생물학적 한국인의 후예들이라는 점만 빼놓으면 사실상 그들은 한국적이기보다는 철저히 미국화된 문화와 가치 아래 살기에 이민교회의 미래와는 관계없는 전혀 독자적인 교회로 드러난다. 조국통일이니 뭐니 하는 역사의식이나 전통 한국문화니 하는 것들이 더 이상 관심의 중심에 있지 않다. 그들은 영어로 일상을 살고, 미국의 주류 속에서 인종적 차별 이외에는 삶을 영위하는 모습이 이민 1세들과는 판이하다. 종교적 심성도 마찬가지로 그 동기나 행태에 있어서 더 이상 조상들의 것을 계승할 이유도 욕망도 없다. 게다가 솔직히 '한국적'이라고 자랑스럽게 세계만방에 휘두를 깃발도 없다고 보는 것이 그들의 견해다. 도대체 한국적이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그들과 긴 토론을 해 본 결과, 오히려 2세들로서는 한국적인 것은 버려야 할 것이지 계승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는 주장 앞에 나는 별로 설득력 있게 반론을 할 것이 없었다. 최근에는 이곳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다분히 미국의 싸구려 문화를 모방한 한국 연예인들이나 돈 잘 버는 운동선수들에 대한 흠모와 추종이지 인간문화재나 전통음악, 전통예술 등 전통이란 이름의 그 무엇도 아니다.
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민교회에 출석하는 중·고등부 학생들의 80∼90퍼센트는 일단 대학만 가면 다들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정확한 조사가 아니고 젊은 학생들 몇 명에게 물어본 것이라서, 객관적 타당성은 없고 수치도 믿을 수는 없지만 감각적으로 여기에 옮긴다.) 어릴 때는 부모님들 등쌀에 억지로 교회에 나오지만, 일단 스스로 행동을 택할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한국식 교회의 신앙을 물려받기를 거부한다. 따라서 2세들 가운데 신학교에 가서 장차 목회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일단 이른바 성공한 1세 목회자들의 직계 자손들이거나,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어버이들의 행태에서 본받은 세상물정 모르는 '정신 나간' 행동이거나, 1세들이 곱게 세뇌시킨 얌전이들뿐이라고 비아냥대는 말도 들었다. 기성의 1세 중심 교회들은 지금이 어느 때라고 1970년대식 신앙을 읊조리며 외형만 부풀리는 거품 신앙에 놀아나 미국 사회를 뚫고 건강하게 세워갈 미래의 의지와는 관계없다고 비판받고 있다. 한인 이민교회는 한국에서 밀려오는 새로운 이민으로 보급되지 않는 한 점차로 쇠약해지고 기울어서 지금 저토록 힘들여 지어놓은 교회 건물들이 얼마 후 맥없이 팔려나갈 것을 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보수 근본주의가 여전히 성행하려면, 머리로는 한쪽을 생각하고 가슴으로는 다른 쪽을 껴안는 이상한 정신분열증 환자들이나 집단 자학증에 걸린 자들이라면 모를까, 참으로 암담한 미래다. 기독교 자체가 대 변혁을 각오하지 않으면 불원 미국도 유럽처럼 유령들이나 출몰하는 거대한 교회당만 남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생태계의 황폐는 미국에 관한 한 한국보다는 월등하게 좋은 환경이지만, 인간중심의 발전이란 그것이 과학이든 종교든 결국 생명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불가역적 진행을 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터라, 이 또한 초미의 관심사다. 이는 범종교적 연합운동이 아니고는 어느 한 종교의 힘만으로는 되지도 않을뿐더러 이에 무관심한 종교는 당연히 도태되어야할 미래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그 탁월한 창조신앙에도 불구하고, 눈먼 과학자들이 한심한 창조과학이나 읊어대는 정도로는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성서가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동성애자 차별이든 안락사 반대이든 낙태운동 반대이든 모두 획기적 재해석을 허락하지 않는 한 미래의 이민교회만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가 문제시될 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민교회는 그런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완고한 그리고 가장 천박한 신학에 눈이 먼 한국의 보수 근본주의를 모태로 하고 있는 한 가장 배타적인 교회이다. 종교 다원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자체의 정화 작용을 상실한 교조주의에 빠져 곧 각종 귀신들이 날뛰는 음산한 묘지로 화할 날을 예상해도 좋다. 생태신학이 이미 교회 시장에 나온 지 오래지만 교회는, 특히 미국 교회들은 아직 편안한 상태에서 엉덩이에 불이 붙어 있는 것도 모르고 따뜻한 기온만 대견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주에 있는 한인 이민교회치고 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없을 것이다. IMF 사태가 터진 조국을 향하여 눈물의 통성기도를 한 이민교회가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수 천 교회요, 총구에 목숨을 내걸고 푼푼이 번 돈을 고국으로 송금한 대열이 동포 은행 창구 앞에 줄을 이었던 감동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오죽하면 로스앤젤레스는 서울시 나성구, 뉴욕은 서울시 뉴욕구라고 까지 말하랴. 제1세대 이민교회는 정직하게 말하여 한국에 있는 교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미국이란 개척지대에서 힘차게 살아갈 영성보다는 오히려 한국에서 한물 간 메시지를 뒤늦게 미국 사회에 와서 뿌려대는 이른바 부흥사들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미국 현실에 맞지 않는 부정적인 효과를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교회들보다 미주 이민교회들이 대체로 한 10년쯤 뒤떨어졌다고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신학생들이 소감을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970년대에 조국을 떠난 사람들의 정신은 거기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해외에 있으면 아침부터 인터넷 신문을 비롯하여 고국의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살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연민을 금할 수 없지만,〈뉴욕 타임스〉를 밀쳐놓고 한국계 동포 신문을 먼저 샅샅이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인 동포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은 아주 크게 바뀌어야 할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솔직히 미국에 오래 살면서 건너다보는 조국의 모습은 되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으로 눈물 글썽일 때도 많지만, 어찌하든 조국이 어려운 현실을 넘어가서 새 역사의 빛으로 떠오르기를 기도하며 마음 졸이는 대상이기도 하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민족의 정기와 한국인의 영적 각성을 위해서 어디 희망을 둘 데가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언론이니, 교육이니, 어디에도 새로운 개혁을 위한 희망을 둘 데가 없어도, 그래도 교회만은 최후의 희망으로 살아 있기를 바란 소망조차 배신당하는 작금의 기분을 위로 받을 데가 없다. 나 자신이 이 시대의 목사인 것이 부끄럽다. 그러나 아직은 기독교인인 것이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이 글을 끝맺는다. 내 불길한 예상들이 적어도 앞으로 20년만 맞지 않아서, 내 눈으로 내 예상이 틀린 것을 보고 죽을 수만 있다면 진실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떠나고 싶다. 아니, 그런 예상이 틀리게 만들 일에 죽을 때까지 작은 힘이라도 쓰다가 떠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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