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 받기 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 덜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불리할 땐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 합니다.
군주는 능숙한 거짓말쟁이여야만 합니다.
자유에 익숙한 자들을 지배하기 위해선 내분을 조장하거나 주민을 분산시키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자유의 기억을 망각할 것입니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저술한 근대 정치학 수립에 크게 기여한 저서로 내용은 메디치에 드리는 헌사와 본문26장으로 되어 있으며 국가․군주․군사 등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다.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각 장에서는 군주, 군대, 국민의 관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역사적인 예를 들면서 서술되어진다. 또한 중세의 도덕률이나 종교관에서 벗어난 개인만이 강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으며, 예리한 시대 감각을 보이고 있다. 분열되어 있는 이탈리아를 구출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가의 출현을 바라는 애국적인 저서이며, 위기의 정치학설인데, 그의 전제 군주 찬미는 후세에 커다란 비판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부터 역사 순환론을 이끌어 낸 최초의 인물이었으며 인간에 대한 인식을 정치학의 토대로 정립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사상가였고 따라서 위대한 작가 일 수 있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참상을 이탈리아 자체의 내부분열과 거기에 따른 무력화가 자동적으로 외세 침입을 초래한 데에 있다고 하여, <군주론>에서 피력한 그의 이탈리아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상을 제시했다. 마키아벨리는 사회불안의 해결책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통치자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단지 자기의 권력과 세력을 팽창,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말고 도의 정신, 종교심, 논리성을 져버리며,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사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군주론>은 15세기 이탈리아의 시대적 상황을 함축하고 있으며 분명 통치자의 정치 행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군주론>이 지니고 있는 솔직하고 가식 없는 정열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오늘날에 이르렀고, 그의 조국통일의 꿈은 한낱 유토피아가 아니라 실제로 19세기 말에 이르러 그대로 실현되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년 5월 3일 ~ 1527년 6월 21일)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사상가,정치철학자이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르네상스인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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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아버지인 베르나르도 디 니콜로 마케아벨리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494년에 메디치 가가 몰락할 무렵 공직에 입신하여 피렌체의 공화국 10인 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었으며, 외교 사절로서 신성 로마 제국 등 여러 외국 군주들에게 사절로 파견되면서 독자적인 정치적 견해를 구축하였다. 1498년부터 1512년까지는 공화국 제2재무성의 장관도 역임하였다.
외교와 군사 방면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나, 1512년 스페인의 침공에 의해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가 피렌체의 지배권을 회복하면서 공직에서 추방되어 독서와 글을 쓰며 지냈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군주에게 바치는 〈군주론〉을 저술한 것으로 여겨진다. 1513년 발표한 이 <군주론>에서 위대한 군주와 강한 군대, 풍부한 재정이 국가를 번영하게 하는 것이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군주는 어떠한 수단을 취하더라도 허용되어야 하며, 국가의 행동에는 종교 및 도덕의 요소를 첨가할 것이 아니라는 마키아벨리즘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그의 정치 사상은 일찍부터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513년에는 메디치 군주정에 대한 반란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같은 해 교황 레오 10세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코시모 루첼라이라는 공화주의파의 주도하에 이뤄진 '오리첼라리 정원의 모임'으로 알려진 피렌체 공화주의자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그의 로마사 논고는 바로 코시모 루첼라이에게 헌정되었다. 이 저작은 피렌체 공화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저작이며 로마 공화정을 비롯한 공화국들의 긍정적 역량을 최대한 조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527년 사망하였다.그러다 부활하고 1일을 살다 죽었다는 믿지못할 전설이 전해진다
저서에 <로마 사론> <전술론> 등이 있으며, 또 희곡 <만드라 골라>는 이탈리아 연극 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걸작이다.
마키아벨리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ㅡ 마키아벨리즘을 대표하는 이 유명한 격문은 흔히,'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로 곡해되고 정치적으로 수없이 악용되어왔다.그러나 한 위대한 사상가가 이렇게 천박한 의미의 명제를 남겼을 리 만무하다.마치 소크라테스가 한번도 말한적이 없는 악법도 법이다처럼, 한국에서 독재자와 수구세력에에 의해 오랫동안 왜곡되고 진실이 은폐돼왔다.
- 이 명제는 모든 목적이 아닌 정치적으로 좋은 목적을 절대적으로 전제하는 말이다.공동체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만 권모술수의 정치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것은 좋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좋은 수단만으로 충분하지 않기때문이다.좋은 수단만으로는 결코 좋은 목적을 달성할 수없다는 냉혹하고 정직한 현실 인식은 현실에 적용해도 틀린것이 아니다.민중의 뜻을 배반하고 헌법에 새겨진 주권재민의 원칙을 위반하면서까지 힘센당이 악법들을 일방적으로 그것도 악한 방법으로 통과시키려할때 좋은 방법으로 민의라는 좋은 목적을 지킬 수없다.때론 폭력으로라도 악법 통과를 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역사적으로도 평화적이고 좋은 방법으로 좋은 세상(목적)을 만들 수 있었다면 수많은 전쟁과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이 말은 정치에 있어서만큼은 결과가 무척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철학에서 책임윤리라는 말이 있듯이 정치는 책임을 지는 것이고 책임은 결과로 판가름난다.백가지를 잘해도 한가지를 잘못하면 잘못될 수 있다.일제기에 독립운동으로 생을 일관했으나 말년에 변절한 사람이 많았는데,여지없이 친일분자로 분류된다.정치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것이기에 냉엄한 것이고 목적이 중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이 격언이 문제가 있다면 좋은 목적,즉 공공의 이익을 누가,어떻게 결정할 수 있냐는 것이다.오늘날 좋다,나쁘다 부터가 철학적으로도 쉽게 판단할 수없을만큼 복잡하고 더군다나 최고선이 무엇인지는 오리무중이다.절대윤리와 상대윤리가 혼재하고,수단과 목적도 명쾌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수단은 목적이 되고 목적은 그대로 수단이 될때가 있는 것이다.공(共)적 이익이 무엇인가를 놓고도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의 싸움이 아직도 계속중인 이유다.하지만 당대에는 비교적 단순한 사회여서 선,악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으므로 마키아벨리는 선각자가 아니할 수 없겠다.
한편,앤터리 패럴은 " 만일 마키아벨리즘에 비판과 의문이 제기된다면, 인간, 근대성 자체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한가지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를 공격한다 해도 근대성의 문제로부터 이 세계를 구할 수 없다." 고 함으로써 마키아벨리를 옹호했다.
저작
메디치가의 군주에게 바친 《군주론(Il Principe)》과 《정략론》《로마사 논고》등이 유명하다. 이 주저를 모두 가로지르는 그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바로 주권자의 자율성이다.로마사논고와 군주론은 공화주의와 군주주의의 양 극단이 드러나는 저서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그 실체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 논란이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
- 군주론 다수의 번역 존재
- 정략론
- 피렌체의 역사를 정리한 피렌체사
- 로마사 논고(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읽고 쓴 논문집), 강정인/안선재 옮김, 2003, 한길사(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에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