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하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이 적적함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였다.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서 이웃님들로부터 배운 점도 많았다. 블로그의 세계는 지구 전체를 품는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웃들과 대화가 가능해졌다. 뉴욕에도, 캘리포니아에도. 도교에도, 독일에도, 모스크바에도 나를 잦아주는 이웃들이 있다. 모두 우리 교포들이다. 이런 교류가 있기 때문에 고적감을 메우고 지금까지 사는지도 모른다. 서로 얼굴을 모르며 이름도 모르지만, 이런 교류가 나의 삶의 일부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런 교류가 없었다면 고독사를 했을지 모른다. 인터넷의 소중함을 늘 깨닫고 지낸다.
그런데 블로그를 하면서 마음 아팠던 경우도 있었다. 평소에 친했던 시인이 세상을 뜨면서 남겨두고 간 블로그가 그것이다. 황금찬 선생의 아들 황도제 시인. 그와 나는 같은 <凝視> 동인으로 가깝게 지냈다. 이따금 그 블로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가 남기고 간 시와 수필과 사진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는 명문 고교를 그만두고 수입이 더 좋다는 학원 강사로 직을 옮겨 몸을 돌보지 않고 혹사했다. 주야로 근무해 몸을 망쳐 떠났다. 또 어떤 블로그의 주인은 비록 무명 시인이지만, 그의 시가 어느 기성 시인보다도 감동을 주어 자주 찾았다. 여성인 그와 나는 많은 글을 주고 받았다. 항우울제를 복용한다는 그가 마지막으로 요양원으로 간다는 글을 남긴 채 방을 비운 경우이다. 그 적적한 방을 더러 찾아가지만 글을 남겨도 아무 소식이 없다. 그의 후일담을 알 길이 없다. 이런 경우가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마음 아픈 경우다.
지난봄에 뉴욕에 사는 모 여류 동시인이 귀국해 며칠 다녀간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꼭 저를 만나 점심을 같이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 무렵에 나는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상면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 동시인은 모처럼 고국에 와서 만나지 못하고 가서 아쉽다고 했다. 이런 경우가 매우 난처하다. 블로그가 인생살이에 좋은 점도 있지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선 오래 블로그에 빠지다 보니 시력이 나빠진다. 또 이웃님들께 일일이 답을 주지 못할 때 죄송한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블로그를 막내 아들이 만들어 주어 17년이 되었다. 블로그는 시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짧은 글을 이웃님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비우고 떠나는 이웃들을 보면서 나도 언제까지 이 방을 지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