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信(1)
李 箱
어제 東琳이 편지로 비로소 네가 就職되었다는 消息 듣고 어찌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이곳에 와서 나는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이 집안 걱정을
하여 왔다. 울화가 치미는 때는 너에게 不快한 편지도 썼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을 놓겠다. 不潣한 兄이다. 人子의 道理를 못 밟는
이 兄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家庭보다도 하여야 할 일이 있다.
아무쪼록 늙으신 어머님 아버님을 너의 정성으로 慰勞하여 드려라. 내
자세한 글, 너에게만은 들려주고 싶은 자세한 말은 二 三日 內로 다시 쓰겠다.
一九三七年二月八日 아우(金雲卿)에게 보낸 葉書.
(타국에서 아우에게 보낸 마지막 엽서)
<정직하게 살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생활이 비겁한 회피의 생활이었나 봅니다.>
이상이 일본으로 간 것은 생활의 굴욕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색을 위한 것이었고 문학의
새로운 자세를 확립해 보자는 야망도 있었을 것이다. 이슬비가 내리는 京城역에는 이상을 전송 나온 B녀와 두어 사람의 친지만이였다. 전송하는 그들은 이상의 건강만을 염려하고 있었다. 이상은 떠나기 전 <휴머니즘은 최후의 승리를 가져온다>는 말을 했다. 현해탄을 건너 간다끄진보조 3정목 101의4번지 이시까와(石川) 방에 기숙을 정하고 자기 문학의 재점검에 들어갔다. 그의 텁수룩한 머리와 세련되지 못한 옷차림은 동경시민들에게 이단시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니시간다(西神田)署로부터 불심검문 끝에 가택수색을 하니 수상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이리하여 니시간다 경찰서에 구금 되었다 풀려난다.
이상은 폐결핵 3기였다. 한국의 천재시인 이상은 맥주로 만취한 채 거리에서 일인 신사와 시비가 벌어졌다. 그러다 누구의 입에선가 <나가자>는 소리와 함께 둘은 대로상에서 싸움이 붙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상은 와이셔츠와 러닝을 벗었다. 그리고 폼을 잡았다. 순간 신사는 실소를 하고 말았다. 이상의 몰골은 피골이 상접했다. 저게 사람인가 해골인가?
<자네 내가 누군지 아는가? 난 긴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오야봉(어깨대장)일세. 날 이기겠나?>
<오야봉이라?>
<글쎄? 그건 싸워 봐야지...> 두 사람은 금방 붙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무엇을 생각했는지 이상은 허리를 구부리더니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었다.
<내가 진 것이 아니라 양보 하네> 하면서 이상은 그 자리를 유유히 떠났다. 이상의 기지야말로 감칠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