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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

주일낮예배 / 화해의 기적

작성자샘물 청지기|작성시간26.06.22|조회수24 목록 댓글 0

화해의 기적 / 창세기 33장 1~11절

 

어느 가정에 사이가 좋지 않아 말을 하지 않고 지내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던 부모는 더 크면 화해하겠지 하는 기대로 아픔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월남전이 발발하자 군에 가 있던 형제가 똑같이 파병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육사를 나와 중대장으로 참여했던 형이 전사하였고 동생은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기대가 컸던 아들의 전사는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만 또 한 가지 마음이 아팠던 것은 형제가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화해하지 못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힘들게 하고 안타까워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과 에서가 오랜 시간 갖고 있던 앙금을 털어버리고 서로 화해하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이 모습이 있기까지 야곱과 에서는 얼마나 힘들게 살았겠습니까? 야곱이 20년 만에 외삼촌의 집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마음에 걸리는 큰 짐이 형 에서였습니다. “형이 나를 용서해줄까? 용서하지 않는다면 20년의 수고가 한 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텐데.”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데 더 절망스러운 것은 형이 400명의 군사들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자기를 환영하러 온다면 이렇게 많은 숫자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400명의 숫자는 분명 불길한 소식이었고 절망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 잃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천사를 붙들고 씨름을 합니다.“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으면 이렇게 기도했겠습니까? 야곱만 힘들었겠습니까? 동생에 대한 원한을 품고 20년을 살아왔던 에서는 왜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화해의 필요성은 야곱과 에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과 적대관계를 가지면서 얼마나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까? 북한이 무슨 미사일을 발사했다 하면 곧바로 안보 회의가 열리지 않습니까? 북한의 행동 하나에, 북한의 말 한마디에 정부뿐 아니라 온 국민이 신경을 쓰지 않습니까? 미국과 이란이 100일 넘게 전쟁을 벌이면서 세계는 전투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증시가 올랐다 내렸다 요동을 쳤습니다. 두 나라의 전쟁이 세계경제에 빨간불을 켰기 때문에 어서 빨리 화해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화해는 어떤 시대, 어떤 사람, 어떤 지역에서든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 줄 믿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도 서로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먼저 화목 하라는 말씀은 화목하고 화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 하라.”(롬12: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말씀합니다. 화해는 시대를 막론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지름길이요 첩경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안에 합의해서 MOU를 발표했습니다만 합의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시비가 있었습니까? 자존심싸움, 이해득실, 정치적인 유, 불리를 따라 협상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국가 간의 화해나 개인 간의 화해나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우리는 화해를 해야 합니다. 화해가 될 때 인간의 행복이 있고 평화가 있고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화해의 방법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해주셨습니다.

인간과의 화해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해는 이루어졌습니다. 화해는 예수님처럼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먼저 희생할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는 인간 세상에 놀라운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과 화해된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마음껏 기도하고 은혜를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우리들은 주님이 보여주신 화해의 정신과 방법으로 화해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자들은 인간 세상에 화해를 실천하는 일에 더욱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화해의 삶을 살아가고 화해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먼저, 화해는 나 자신의 겸손으로 시작됩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 그는 먼저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만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제 네 이름이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하여 야곱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야곱은 가족들을 네 부대로 나눈 다음 발을 절뚝거리며 형을 향하여 앞서 나아갑니다. 그리고 몸을 땅에 굽히며 일곱 번 에서에게 절을 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항상 완전한 수를 의미하는데 야곱이 일곱 번 절을 했다는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형을 속이던 이전의 야곱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진 야곱의 모습을 보여준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야곱은 이런 겸손한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이 몸을 땅에 굽혀 일곱 번 절을 하였을 때 에서는 달려와서 야곱을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입을 맞추고 서로 울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야곱이 원했던 일이지만 기대하기는 쉽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화해의 첫걸음은 겸손입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자신을 낮출 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화해는 상대방이 변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낮아지고 내가 먼저 겸손히 손을 내미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에밀 브루너 박사가 자기 친구들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두 사람이 사이가 나빠져 1년 동안이나 만나지 않았는데, 한 사람이 설교를 듣는 중 깊이 뉘우친 바가 있어 화해의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화해 편지를 다섯 통이나 보내도 회답이 없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이 사람이 친구를 방문하여 눈보라 속에 서서 문을 두드리자 얼음장 같았던 친구의 가슴이 녹아지는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화해는 먼저 찾아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찾아가는 사람이 주님을 통하여 변화된 사람이고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먼저 손 내미는 자가 큰 사람이고 남을 섬길 줄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내가 변하면 남도 변하고 내 안에 맺힌 것이 풀리면 내 밖에 맺힌 것도 풀리게 마련입니다. 누군가 화해를 이루기 원하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고 자신부터 변화돼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뒤이어 여러 축복도 따라오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한 성도들은 화목의 직책을 감당하며 화목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화목의 삶을 보여줘야 하고 교우들에게 화목의 삶을 보여줘야 하고 이웃들에게도 화목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화해를 위하여 먼저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십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다. 그리고 받은 은혜를 흘려 보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에서 사이에 화해의 기적을 이루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 가운데 화해의 은혜를 이루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하고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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