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을 보면서
2026년 6월 14일 / 창세기 5:21-24, 히브리서 11:5 ♬ 430, 384장
1. 서론: 평범함 속에 감춰진 비범한 삶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도전을 주는 한 인물을 만나고자 한다. 그의 이름은 바로 에녹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거인들이 등장한다. 홍수 심판에서 인류를 구원한 노아, 믿음의 조상이 되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아브라함, 바다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이끈 모세, 갈멜산에서 우상숭배자들을 KO시킨 엘리야 등 그들의 삶은 화려하고 극적이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한 에녹의 삶은 매우 단조롭고 평범해 보였다. 그는 거대한 방주를 짓지도 않았고, 민족을 구원하지도 않았으며, 눈부신 기적을 행하지도 않았다.
저들의 기록은 성경에 많이 있는 반면 에녹에 대한 글은 성경에 몇 구절밖에 없다.
창 5:21-24 /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히 11:5 /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유 1:14-16 /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그가 한 일은 그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것과 65세에 '자녀들을 낳은 것'이 전부처럼 보인다. 사실 에녹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약 5:17).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일상,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를 향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평가를 내렸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진 사람 그리고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라는 찬사였다. 우리는 에녹을 선지자라고 하지는 않지만 악한 세대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비롯하여 많은 선지자처럼 특히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세상은 화려한 업적과 결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누구와 함께 걸었느냐'로 인생을 평가하셨다. 이 시간 에녹의 삶을 통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동행의 비밀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2. 본론
1. 동행의 시작 – 무너진 세상에서 들은 경고
에녹은 어떻게 이 위대한 동행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본문 21절과 22절을 보면 중요한 전환점이 등장한다.
창 5:21-22 /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에녹은 65세까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던 같다. 그런데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후, 그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왜 하필 아들을 낳은 후였을까? 그것은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에 숨겨진 비밀 때문일 것이다. '므두셀라'라는 의미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 창을 던지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부족의 창을 던지는 전사가 죽는다는 것은 그 부족의 파멸과 패배를 의미했다. 고대에는 전쟁할 때 군사들이 성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성문에 창 던지는 사람을 한 사람 세워 놓았다. 군사들이 밖에서 싸우다가 지게 되면 적들이 성으로 몰려온다. 적들의 창에 창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죽으면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므두셀라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 즉 무서운 환란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아들을 주시며 ‘이 아이가 죽는 날, 이 세상에 심판이 임할 것이다’라는 묵시를 보여주신 것이다. 실제로 성경의 연대기를 계산해 보면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고, 라멕이 182세에 노아를 낳았으며,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일어났다.
187 + 182 + 600 = 969
므두셀라가 향년 969세에 죽던 바로 그해,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했던 노아의 홍수 심판이 임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했다.
▶ 에녹은 매일 아침 눈을 떠 자라는 아들을 볼 때마다 무엇을 느꼈겠는가?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다가올 심판을 기억했을 것이다. 에녹이 살던 시대는 죄악이 가득하여 번성하던 가인의 후예들이 문화를 지배하던 시대였다. 모두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영원히 살 것처럼 죄를 짓던 그때,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는 종말론적 신앙을 가졌던 것이다.
진정한 동행은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믿는 사람만이 세상과의 손을 놓고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 있다.
2.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미가 6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것이었다.
미 6:8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얼마나 큰 영예이며 얼마나 큰 기쁨일까?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간 제자들이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사도 바울, 사도 요한, 스데반 근래와 와서 스펄전이나 빌리 그레이엄, 웨슬리, 칼뱅과 같은 분들과 동행한다면 얼마나 큰 영예이며 영광이겠는가!
세상에서는 대통령이나 장관과 식사하며 동행하더라도 어깨를 으쓱한다. 하물며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특히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과 동행한다면 그 영광과 기쁨은 대단할 것이다.
감사하며 놀라운 사실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이 다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이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분과의 동행이 없다면 신앙생활은 위선이며 생명없는 형식일 뿐이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나며 그분과 동행하는가?
에녹은 아담과 동시대를 살았다. 즉, 에녹이 살아있을 때 아담 역시 여전히 생존하고 있었다. 아담은 에녹이 태어날 때 622살이었다. 즉, 에녹이 태어날 때 아담은 한창 젊은 시절이었다. 아담은 930세에 사망했으니 에녹이 태어난 후 308년을 더 살았다. 즉, 아담과 에녹은 약 308년을 함께 지냈다.
▶ 에녹이 어릴 때 어느 날 아담을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아담 할아버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나기 전, 에덴에서의 삶은 어떠했나요?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거닐 때 그 기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아담은 그 질문을 듣고 약 6백 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을 것이다. 그는 한때 하나님과 에덴동산에서 거닐었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늘 아담을 찾던 때가 있었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창세기 3장 8절을 보면,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평소에 아담과 에덴동산을 동행하셨다는 뜻이다.
아담은 과거를 기억하면서 그 눈에 눈물이 보이며 흐느끼며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 ‘에녹아! 우리는 함께 걸었단다. 하나님은 내 곁에서 함께 걸었단다. 우리는 함께 높은 산에 올랐고, 함께 최초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동물들을 바라보면서 함께 웃고 대화를 나누었지. 우리는 참으로 아무런 막힘이 없는 깊은 교제를 나누었단다. 나는 우리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들으며 온 우주가 에덴처럼 될 그 날을 바라보았어. 물론 그날이 이르기 위해서는 내가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짓지 말고 부지런히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했어야 했건만 …. 이 못난 할아버지가 그렇지 못했단다. 아! 죄와 저주가 들어오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그 아름다운 순간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꿈만 같은 시절이구나. 바로 낙원이지. 바로 그곳이 천국이었단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셔서 지금은 오실 메시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날 수 있지. 그러나 그분의 영광을 직접 보며 그분과 동행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은 나를 속였던 그 마귀가 멸망하던 날이 되겠지. 너는 결코 마귀에게 속지 말거라.’ 】
이처럼 에녹은 어릴 때부터 아담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들었으며 어린양의 피로 제사를 지내면서 복음을 알아 죄 사함을 받았을 것이며, 그 후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을 것이다. 즉, 에녹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이며, 그 말씀을 개인적으로 듣고 믿었으며, 이에 그는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3. 동행의 과정 – 일상에서 지속하는 믿음
에녹의 동행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동행의 기간과 장소이다.
1. 그는 300년 동안 동행했다. 하루 이틀 혹은 몇 년은 누구나 뜨겁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은혜받은 직후에는 세상을 다 이길 것 같다. 그러나 10년, 20년, 30년... 한결같기란 결코 쉽지 않다. 에녹은 무려 3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의 신앙은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지속적인 신앙이었다.
2. 그는 자녀들을 낳으며 동행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깊은 산속이나 수도원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치열한 삶의 현장 한복판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다. 자녀를 양육하는 수고,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갈등을 고스란히 겪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우리는 흔히 ‘기도원이나 교회에 있을 때는 은혜가 충만한데, 집에만 가면, 직장에만 가면 무너집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삶의 현장에서 증명된다.
3. 에녹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은 여기에 있었다.
히 11:6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요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말했듯이 에녹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뿐 아니라 자신 또한 자신의 경건을 위하여 무진장 애썼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비결이 되었다.
①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였고(살전 5:13)
②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았다(살전 5:14).
③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않았고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랐다(살전 5:15).
④ 항상 기뻐하였고, 쉬지 않고 기도하였으며, 범사에 감사하였을 것이다(살전 5:16-18).
⑤ 그리고 성령을 소멸하지 않았고, 예언을 멸시하지 않았으며,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렸다(살전 5:19-22).
그러므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자신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힘썼을 것이다(살전 5:23).
4.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세상을 향해 외친 예언자였다.
유 14-15 /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만의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는 장면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래서 에녹이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도다.’라고 예언하며 선포하였던 것이다.
에녹은 예언을 하면서 그 예언에 대하여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300년을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던 신앙의 승리자였듯이 유다서에서 유다도 선지자로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장래의 일을 예언하였다. 유다도 미래에 대한 환상을 보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있을 심판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는 경건치 않은 이들의 악한 말과 행동을 다 드러나게 하시어 정죄하고 심판하실 것이다. 악한 거짓 교사들의 말과 행동은 단순한 악한 행동이 아닌 주를 거슬러 행한 것이다.
유다서 16절에서 유다는 이러한 악한 자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① 그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로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기에 주님을 위하여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해 수시로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는 특징을 가졌다. 오늘날도 이단들은 교회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고 교묘히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② 이단들은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심대로 살며 그것이 불법을 행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가책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이단들은 결코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지 않는다. 겉으로는 착한 양처럼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사악한 이리가 들어 있어서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이용하는 자들이다.
③ 이단들은 자기가 자신을 지나치게 포장하여 자랑하기를 좋아하며 이익에 따라 또 지나치게 타인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이다.
이단들의 최종 목적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들의 하수들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을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기도 하고, 이득이 될만한 사람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아첨하므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믿음이 없으므로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서 심판받을 자들이다. 성도들은 이러한 자들의 악한 계략에 미혹되지 말고 신앙과 삶에 있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의 삶을 살므로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 심판이 아닌 칭찬과 상급을 받아 누려야 한다.
5. 하나님과 동행한 몇 사람들의 실례
①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다. 그의 동행 방법은 하나님을 쳐다보는 방법이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이 살금살금 민심을 도적질하다가 결국 반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왕궁을 빼앗기고 쫓겨나게 되었다. 다윗이 왕궁을 비우고 도망치는데,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가와서 다윗을 저주했다. 제 딴에는 다윗이 완전히 망한 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다윗의 장수가 ‘저 개 같은 놈을 단칼에 베어 버릴까요?’ 하고 물었다. 다윗은 대답했다. ‘저 시므이가 뭘 알아서 나에게 저주하겠느냐? 하나님이 시키신 일인가 보다’라고 대답했다. 말만 그리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렇게 여기고 시므이에게 분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어떠한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를 개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관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잠 16:7). 다윗은 그 말씀을 믿었을 것이다. 그게 다윗의 방법이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압살롬은 제 꾀에 넘어가 망했고 다윗은 다시 환궁했다.
② 다니엘의 동행 방법도 역시 어떤 어려운 여건에서라도 뜻을 정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다니엘이 적국 바벨론에서도 출세해서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그를 시기하는 바벨론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왕에게 가서, 다니엘이 왕을 존경하지 않고 자기 신만을 공경한다고 모함하였다. 앞으로 1달 동안 왕 외에 다른 사람에게나 신에게 경배하는 사람은 즉시 사자굴에 집어넣는 법령을 제정하자고 하여 왕이 그들에게 넘어가 그 법이 공포되었다. 다니엘은 기도하는 것이 발각되면, 사자굴에 던져져 죽는 것을 알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왕 앞에 찾아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그런 법을 만든 사람들을 맞고소하고 하는 등 인간적인 방법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여전히 창문을 열고 하루 3번씩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그것이 다니엘의 방법이다.
③ 요셉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도 그랬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성실하고 경건하게 살았다.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었다.
결 론
동행의 종착지 – 영원한 나라로의 이사
창 5:24 /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성경은 ‘그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런 경우는 엘리야에게서도 또한 예수님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왕하 2:11 /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행 1:9 /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에녹의 경우에 대해 어느 목사님은 동화처럼 아름다운 비유로 설교하였다. “에녹이 매일 하나님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골길을 걸었습니다. 하루는 너무 멀리까지 걸어갔습니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녹아, 날이 저물었구나. 네 집까지 가려면 너무 멀단다. 오늘은 그냥 우리 집으로 가자.’ 그래서 에녹은 주님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갔고,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에녹에게 있어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진 사건은, 갑작스러운 기적이 아니었다. 매일 하나님과 걷다 보니, 장소만 땅에서 하늘로 바뀐 ‘자연스러운 이사’였을 뿐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인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된다. 그날에 주님을 처음 뵙는 서먹한 손님처럼 만날 것일까? 아니면 매일 동행하던 친밀한 아버지를 만나는 것처럼 기쁨으로 만날 것일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에녹의 시대만큼이나 어둡고 음란하며, 마지막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돈과 성공, 쾌락의 소리가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말자. 에녹처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손을 잡자.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자. 아침에 눈을 뜰 때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과 걷겠습니다’라고 고백하자. 힘겨운 일 앞에서도 ‘주님, 제 손을 잡아주십시오’라고 기도하자.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고, 마침내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에 기쁨으로 주님의 영원한 집에 들어가는, 복된 동행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찬송가 430장을 부르면서 설교를 마치려고 한다.
❶ 주와 같이 길가는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 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후렴 :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❷ 어린 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이어 생명길로 가겠네
❸ 꽃이 피는 들판이나 험한 골짜기라도 주가 인도하는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❹ 옛날 선지 에녹 같이 우리들도 천국에 들려 올라 갈 때까지 주와 같이 걷겠네
읽으면 유익한 글
❚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요 저술가인 워치만 리 이야기이다. 워치만 리 책이 많이 읽히고 있다. 그는 이런 간증을 했다. 그가 20대 중반에 불치병에 걸렸다. 의사들은 고칠 수 없다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며칠 후 하나님의 응답이 이렇게 임하였다. 환상이 나타났다. 환상중에 자기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바위에 걸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안절부절하고 있는 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리야! 그 바위를 치워 주랴.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하랴?’ 워치만 리는 대답하였다. ‘바위는 그대로 두시고 물이 불어나 그 위로 지나가게 해 주십시요.’ 이 말이 떨어지자 말자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강에 물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래서 배가 무사히 강을 건널 수가 있었다. 리는 그 환상을 본 후에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 병고침을 받았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18살에 왕이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고등학생 나이일 때 왕이 되었으니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는가? 그러나 그는 왕이 된 후 실수하지 않았고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여론에 따라 흔들리지도 않았다. 신문이나 잡지를 보지 않았지만 그가 판단한 대로 하면 일이 형통하게 이루어져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가 64년간 나라를 통치할 때 영국이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릴 때 걱정하지 않았다. 찬송을 부르면서 쉽게 나라를 다스렸다.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시고 그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손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못 해먹겠다고 하는 대통령도 있었는데 빅토리아 여왕은 왕의 일을 즐겼다. 빅토리아 여왕이 64년간 그렇게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형통했던 비결이 어디에 있었을까? 어떤 사람이 빅토리아 여왕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왕 폐하, 폐하께서는 하루에 기도를 몇 번 하십니까?’, ‘한 번 합니다.’, ‘신앙 깊은 폐하께서 하루에 한 번밖에 기도를 안 하시다니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면서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계속 기도합니다.’ 그래서 한 번이라고 한 것이다.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어떤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귀한 일이다.
❚ 300년을 못한다 할지라도 30년, 40년은 한결같이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한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선교사로서, 정글과 전염병, 맹수와 식인종의 위험이 가득찬 곳을 뚫고 3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 19년간 정글 속에서 고독과 질병과 위험과 싸우며 복음을 전하다가 고국에 돌아와 글라스고大에서 강연하였다. 강연 후 한 학생이 질문하였다. ‘어떻게 19년간 그 고독하고 고생스런 환경을 이기었습니까?’ 이에 리빙스턴이 대답하였다. ‘요 14:18과 마 28:20 두 말씀으로 이기었습니다.’ 이 두 말씀(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는다.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이 위기 속에서도 찬송·감사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였다.
❚ 웨슬레의 어머니 수잔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19남매였다. 그 아이들을 정성껏 키우면서 음식과 옷을 만들어 입히며 종교교육을 철저히 시키노라 너무나 시간이 없었다. 그럼에도 목사부인의 역할을 감당했고 밤 1시면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으므로 거기에서 존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같은 위대한 인물이 배출되었던 것이다.
❚ 어떤 여자 집사님(여류 문학가)이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간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급성이라서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죽음의 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녀는 수술을 포기하고, 남은 두 달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우선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제 인생에 남아있는 이 두 달을 어떻게 살까요?’라고 기도하는데 자기 마음속에 지금까지 너무 사랑하지 못한 부분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동안 벽을 쌓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명단을 적고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전화하고, 만나고, 용서를 구하고, 격려해주고,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지금까지 자기는 돈을 전혀 가치 있게 쓰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자녀들을 위해 조금 남겨둔 것 외에 선교사들을 위한 선교헌금으로 그리고 구제헌금으로 주님께 드렸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까 두 달이 다 지나갔다. 그런데 몸이 그렇게 나빠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시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지난번 진단이 오진이었던 것이다. 목사님이 물어보았다. ‘후회 안되십니까? 돈 쓴 것이 ….’ 이때 그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저는 제 인생에서 지난 두 달처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본 적이 제겐 없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런 마음으로 살 것입니다.’
❚ 창골산 봉서방 칼럼에 있는 오직 임마누엘 / 거룩한 꿈을 꾸라. 하나님을 향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살라. 하나님은 꿈을 꾸시는 분이 아니요 꿈을 주시는 분이시다. 세상의 썩어질 시시껄렁한 것에 목매지 말고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꿈을 꾸라. 꿈은 하나님의 마음에 나의 생각을 일치시키는 거룩한 만남이다. 하늘을 향하여 꿈을 꾸면 하늘을 날아오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자만이 하늘의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떳떳한 자가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가 있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귀한 자녀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일지라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전능자가 내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 내 갈길 몰라도 괜찮다. 주님이 내 앞에 길이요 빛이시기 때문이다. 인생에 먹구름이 몰려와도 그 구름은 반드시 걷힌다. 비바람이 몰려와도 맑은 날이 더 많기에 우리는 소망가운데 산다. 슬픔의 안개도 한순간이다. 거친 입을 삼가고 하나님이 주신 소망의 말을 하며 사는 자로 살라. 우리의 소망은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오직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길 / 인생을 살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나 주님께 맡긴 인생은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걱정하고 근심에 쌓여서 살아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근심 걱정한다고 변하는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근심 걱정은 뼈를 바르게 하나 하나님께 맡기고 산다는 것은 진정한 살롬의 평화를 불러온다. 엄마 품에 어린아이가 근심·걱정하며 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천국을 소유하고 사는 자의 삶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택하고 살 것인가? 하나님이냐? 세상 욕심에 이끌려 살 것이냐?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생명을 선택하고 예배자로 예배를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인생길에 어떠한 난관이 있을지라도 기도할수 있는 열쇠는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내 인생을 함부로 살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거룩한 땅에 서서 살기를 힘써야 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마 7:6)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그런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발견한 사람은 결코 그 귀한 것을 버리지 않는다. 세상은 전능자의 전지전능하심도 교회의 가치와 예배의 가치나 기도의 가치를 모른다. 그렇다면 믿는다고 하는 나는 그 가치를 알고 누리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보실 때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늘 근심걱정에 휘둘려 움츠리고만 살고 있지 않은가? 범사를 주께 맡기고 살아야 진짜 성도다. 성도는 아무나 성도가 아니다. 성도답게 살아야 성도가 되는 것이요 믿는 자답게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맡긴 자의 짐은 가볍다. 그러나 내가 세상 모든 짐을 다지고 가는 이는 언제나 힘겹게 살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내 짐을 주께 맡기고 주님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