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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들 설교

20260628 / 이제는 귀한 그릇이 되자 / 딤후 2:20-21

작성자이윤형|작성시간26.06.20|조회수10 목록 댓글 0

이제는 귀한 그릇이 되자

2026년 6월 28일 / 대예배 / 딤후 2:20-21

‘희소가치’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많으면 가치가 없고, 흔하지 않은 것이라야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다이아몬드가 흔한 돌멩이처럼 아무렇게나 길가에 굴러다닌다고 하자. 아무도 그 다이아몬드를 귀중하게 생각하거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희소가치가 사람에게도 적용되고 있어 문제다. 사람의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사람의 가치는 점점 하락되어가고 있다. 그러한 현상이 정치, 경제,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면 말세라고 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가 있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크리스천들이 그 가치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이 땅에 남아 있는 경건한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신다.

예수님은 사람을 가리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라고 하셨다. 과거에 그가 어떠한 일을 했느냐를 묻지 않으시고, 오늘 그가 현재 어떠한 상태에 있느냐를 물으시며 그와 함께 일하시고자 하셨다.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은 4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죄인이며, 버림받은 사람이며, 실제로 그렇게 생활을 하는 세리와 죄인과 창기를 친구삼아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이것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비난거리가 되어 예수님은 나사렛 천한 사람’, ‘죄인의 친구라는 비웃음과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외모와 형편, 그들의 과거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므로 그들을 사랑하셨고, 제자로 삼기까지도 하셨다. 이제는 우리도 귀한 그릇이 되자.

▶ 사도 바울은 인간의 가치를 ‘그릇’이라 하는 상징적인 비유를 들어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가르쳐주었다. 큰집에는 여러 가지 그릇이 있는데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도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그릇에 비유하였다. 누가 묻기를 이러한 그릇 가운데 가장 귀한 그릇을 골라내라고 한다면 모두 금그릇이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대적인 평가방법에 의해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릇의 가치는 그 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그릇의 용도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금그릇이 귀한 그릇임은 부정하지 말자. 세상에서 금과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금과 같은 존재라고 할지라도 본문에 나오는 여건에 합당치 않으면 하나님께 예비된 그릇이 될 수는 없다. 반면에 ‘나는 원래 좋지 못한 환경, 불우한 여건 속에 자라났기 때문에, 나는 머리가 둔하여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귀한 그릇이 되기에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낙심하지도 말자. 그릇이라고 하는 것은 그 질에 가치가 있는 것만이 아니고, 보잘것없는 질그릇이라도 용도만 잘 쓰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귀한 그릇이 될 수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천으로서의 맛을 잃었던 여러분과 내가 다시 소금으로서의 맛을 찾고, 잃었던 빛을 다시 찾아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예비된 그릇이 되자는 것이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와 같은 우리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와서 아들이란 신분보다는 품꾼의 하나와 같이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둘째 아들이 되자는 것이다(15:17-24). 우리 스스로가 오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 귀중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말이다.

527장 어서 돌아오오

❶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❷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❸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1. 빈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귀한 그릇이 되려고 하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릇의 목적은 무엇을 담기 위해서이다.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무엇을 담을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그릇으로서의 사명을 못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깨끗한 빈 그릇이 되어야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하셨다.

여기에 스테인리스 그릇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면서 이 그릇에다가 김치를 담으면 김치 그릇이 되고,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여기에다가 가룟 유다처럼 먹지 못할 쓰레기를 담았다면 그 그릇은 천하고 악해 보일 것이다. 반면 베드로처럼 그릇에다가 귀한 참기름이나 꿀을 담았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귀하게 여길 것이다.

바울이 교훈하고 있는 깊은 진리를 깨닫자.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모든 것을 쏟아버리고 빈 그릇이 되어 그 속에 복음과 같은 귀한 것을 담아야 귀한 그릇이 된다(고후 4:5-10). 가룟 유다에게 묻고 싶다. ‘3년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하면 빈 그릇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지금 내가 간직하고 있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예수님께서 마 13:45에서 천국을 설명하는 중에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13:44-46 /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아직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성품, 옛 습관, 그 못된 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다. 또는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도 옛것에 대한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한 것이다.

19장에서 삭개오는 예수님 얼굴을 한 번만 보았으면 하다가 예수님을 집에 모시게 되었는데, 예수님이 자기네 집에 들어오셔서 좌정하시자 서서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도 모았던 귀중한 재물을 아무런 미련도 없이 예수님을 모시자 말자 쏟아놓았다.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그릇이 되는 길은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아무것도 아님(Nobody)을 깨닫고, 내 안을 철저히 비워내어 하나님만이 전부(Everybody)가 되시게 하는 과정이다.

【‘주님! 저는 연약하고 부족한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보혈로 저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소서. 토기장이이신 주님의 뜻대로 나를 빚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곳에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2. 귀한 그릇이 되려면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쓰신다. 예수님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하셨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셨다. 이어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하시며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5:13-16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얼굴을 성형수술 한다고 하여 신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모는 수수하면 되고, 속사람이 깨끗해야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좋고 귀한 황금으로 만든 그릇이라도 그 속에 더러운 것들이 있다면 그 그릇을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질그릇이라고 할지라도 깨끗이 씻은 그릇이라면 누구라도 소중하게 그리고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쓰시기 전에 먼저 청결하게 하셔서 사용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함이 가장 큰 능력이다. 성전의 구조를 보면 번제단을 통과한 후에 바로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물두멍을 통과해야 한다. 번제단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상징하며 물두멍은 말씀으로 씻어 정결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서 사역하기 전에 물두멍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신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죄사함을 받고 정결해야 한다. 제사장은 물두멍을 통과한 후에 빛을 발하는 등대를 살피고, 떡상을 살피고, 향단에 향을 피운다. 그렇듯이 신자는 죄사함을 전제한 상태에서 세상의 빛이 되며, 영혼의 양식을 공급받고, 기도의 향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들어 쓰시는 그릇이 되려면 먼저 마음의 그릇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이 말은 곧 회개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무엇을 회개하라는 말인가? 하나님께 대하여 교만했던 나 자신, 불순종했던 나, 의심 많았던 나,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또는 기도하면서 나 자신이 회개하기 위하여 전심을 기울인다면 반드시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 깊은 것까지 회개하도록 배려해 주실 것이다.

세례 요한의 회개에 대한 외침은 우리에게 많은 여운을 준다.

3:3-8 /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세례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릇이 깨끗하게 닦이고 단단하게 빚어진 최종 목적은 단 하나, 주인의 필요를 위해 쓰이기 위함이다.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은 하나님의 일을 행한 후, 결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거나 영광을 가로채지 않는다. 그릇은 음식을 돋보이게 할 뿐, 식사가 끝나면 뒤로 물러나는 존재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자세를 지향하자. 주인이 큰일을 맡기기 전에 먼저 작은 일에 우리를 시험하신다. 지극히 작은 일,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충성하는 자를 하나님은 주목하신다. 맡겨진 영혼을 사랑하고, 가정이든 일터든 교회든 나에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더 크고 영광스러운 일에 우리를 귀하게 쓰실 것이다.

279. 인애하신 구세주여

❶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때에 날 부르소서

후렴 :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아멘

❷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 주소서

❸ 주의 공로 의지하여 주께가오니 상한 맘을 고치시고 구원하소서

❹ 만복근원 우리 주여 위로하소서 우리 주와 같으신 이 어디있을까

 

3. 주인의 쓰시기에 편리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란 곧 편리한 그릇이다. 그릇의 용도는 무엇을 담기 위해서이고 또 쓰는 사람이 불편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값진 그릇이라 해도 주인이 쓰시기에 불편하면 사실 그 그릇은 유효적절하게 쓰지 못하게 된다. 누구나 어느 곳에서 어떤 때 사용해도 불편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의 가장 핵심적인 태도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겸손과 순종이다. 이사야 648절에서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라라고 고백하였다. 그릇은 자신이 만들어진 목적이나 형태에 대해 토기장이에게 불평할 수 없다. ‘왜 나를 금그릇이 아닌 질그릇으로 만드셨습니까?’, ‘왜 나를 이 자리에 두셨습니까?’라고 원망하는 것이 아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주인의 뜻에 맞아야 한다. 주인의 뜻에 거역하기보다는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종이 주인의 뜻을 거스르며 제멋대로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그 종에게 귀한 것을 맡길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8:34)라고 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라, 교만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내 잘났다고 주인 행세하지 말라. 온유하고 겸손하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 되라.’

▶ 이에 예수님은 먼저 본을 보이셨다.

19:29-31 /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제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라면, 왕 답게 멋진 백마를 타야 어울릴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하시는 것일까?

21:4-5 /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시온은 예루살렘을 영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메시아가 오실 곳,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설 곳, 만민을 위한 구원의 문이 열릴 곳이다. 그런데 시온에 예언된 왕이 임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실 것이다. 이는 세상 권세자들은 멋진 말을 타고 화려한 가마를 탄다. 이 왕들은 복종하지 않으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두려운 존재, 머리를 조아리고 섬겨주어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나귀는 일반 백성들이 타는 볼품 없는 짐승이다. 나귀를 탄 사람은 위화감이 없고 친근하다. 왕 중의 왕, 가장 높으신 분께서 이렇게 백성들의 곁에 낮아져 오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겸손이요, 은혜일까!

제자들도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다(요 12:16).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그토록 높은 권세를 가지시고 인생들을 위해 엄청난 일을 하신다면, 얼마든지 생색을 내고 권위를 주장하고, 힘으로, 당위성으로, 군림하려 할 텐데. 예수님은 어쩌면 그렇게 출생에서부터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겸손히, 가장 낮은 모습으로, 위압감 하나 없이 무해하고 무해할 분으로 우리 곁을 살다가 가셨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부탁하였다.

2:5-8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생각하며 평가만 하기보다는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것을 염두에 두며 이제부터 새로운 출발을 하자.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태를 보고 나는 금그릇이구나. 나는 질그릇이구나.’라고 판단하지 말고 우리 속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를 살펴보고 귀한 것을 담도록 하자. 비록 남들이 우리를 귀하게 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귀한 것을 담으면 반드시 귀하게 쓰일 것이다.

▮ 폴란드 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Rubinstein 1887~1982)이 연주를 하기 위해 일본 동경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사장의 명령을 받은 한국일보 주일 특파원이 그에게 한국에서의 콘서트를 제안하여,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최초로 루빈스타인 콘서트가 열리게 되었다. 그때가 1966년이다. 지금이야 한국이 엄청나게 발달하여 그렇지 않지만, 당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이틀 동안 콘서트를 한다고 하자, 온 나라 안이 떠들썩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뛰어난 콘서트 장소와 훌륭한 악기가 없었다. 어렵게 그가 이화여대 강당에서 콘서트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콘서트를 하기 전에, 자신이 연주할 ‘스타인 웨이 판’이라고 하는 피아노를 한번 두드려보더니 갑자기 ‘I can't’, ‘못하겠다’라고 말하였다. ‘악기 상태가 너무 나빠서 안 되겠다’라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주최 측에서는 일본 동경에서 피아노 조율사를 급히 불러서 연주할 피아노를 조율했다. 그리고 다시 그 피아노에 앉아 연습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삐익’하는 기차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연주하는 동안 저 기차 소리가 나면 연주를 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결국 신촌 구간의 기차를 정지시켜 놓고 그의 콘서트를 진행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음악가는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일반 아마추어들도 악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회에서 기타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학생이나 청년들을 보면, 연주하기 전에 꼭 튜닝(Tune)을 하여 음을 맞추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연주자는 연주하기 전에 미리 악기를 점검한다. 그리고 연주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연주를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연주자가 되신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악기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악기들인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연주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바울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준비되기는커녕,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는 특별한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 쓰신다. 만약 쓰고 싶으시지만,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는 여러 가지 훈련을 시킨 후에 쓰신다.

요셉을 기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쓰시기 위해서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서 노예와 죄수로서 13년 동안 훈련하셨다. 또 야곱을 기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격과 성품을 변화시키며 성숙시키기 위해서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훈련하셨다. 또 모세를 기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게 하며 훈련하셨다. 이처럼 우리 ‘인생의 연주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를 쓰시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어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다. 사람들이 세워놓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기준을 알고 철저히 준비하자.

이에 대하여 욥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우리 삶에 찾아오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억울함, 기다림의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불순물(인본주의, 조급함, 세상 의지 ….)을 태워버리시는 영적 용광로의 과정이었다.

 

4. 이 세대에 필요한 일꾼이 되자.

 

성경은 악한 세대를 구약과 신약에서도 각각 이렇게 말하고 있다.

6:1-7 /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딤후 3:1-5 /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루터의 일화를 보면서 우리도 작은 루터와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악한 세대에 노아와 같이 방주를 예비할 수도 있다. 아브라함과 같이 경건의 조상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루터와 같은 마음을 품고 나 자신과 더불어 내가 속해 있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 자신, 내 교회를 만들 수 있지는 않겠는가!

■ 찬송가 585장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A Mighty Fortress Is Our God)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장엄하게 부르는 찬송 중 하나이자,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이었던 종교개혁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다.

이 찬송은 영적 침체에 빠진 이들에게 새 힘을 주고, 거대한 세상 권력과 영적 어둠 앞에서 타협하지 않을 담대함을 심어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찬송가 585장에 담긴 배경과 영적 의미, 그리고 이 곡을 둘러싼 깊이 있는 글들을 먼저 정리하면서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었으면 한다.

❶ 찬송의 탄생 배경: 마틴 루터와 종교개혁 / 이 찬송의 작사와 작곡자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이다.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서: 1517년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이후, 루터는 가톨릭 교황청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라는 거대한 권력과 홀로 싸워야 했다. 파문당하고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사탄의 집요한 영적 공격과 내면의 두려움, 우울증에 시달리던 루터는 시편 46편을 묵상하며 이 찬송을 지었다. 시편 46편을 읽다 보니 나 자신이 루터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말세지말에 하나님께서 쓰시는 의인 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힘써야 하겠다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찬송, 개혁의 무기가 되다: 루터는 ‘음악은 영혼을 다스리는 신의 선물’이라고 믿었다. 그는 당시 라틴어로만 불리던 난해한 성가 대신, 성도들이 자국어(독일어)로 힘차게 부를 수 있는 역동적인 찬송을 만들었다. 이 찬송은 들불처럼 번져나가 종교개혁자들의 행진곡이 되었고, 박해받는 개신교인들에게 육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영적 자유’를 일깨워주었다.

❷ 가사 묵상: 시편 46편을 바탕으로 한 영적 통찰

찬송가 585장의 가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위협을 넘어, 그 배후에 있는 영적 전쟁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1절: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성벽이 되시는 하나님: 루터는 하나님을 '성(Fortress)'으로 고백하였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도망치고 숨을 수 있는 유일하고 안전한 요새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선언이다.

대적의 힘을 인정하되 두려워하지 않음: 찬송은 마귀의 권세가 만만치 않음을 솔직히 인정하였다(‘천하에 누가 당하랴’). 그러나 그것이 결론이 아니다.

2절: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철저한 자기 부인과 그리스도 의지: 나의 지혜, 나의 의지, 나의 의로움으로는 사탄의 유혹과 공격을 단 1초도 버텨낼 수 없다. 오직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만군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모실 때만 승리가 보장된다.

3절: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궁극적 승리의 확신: 세상은 우리의 물질, 명예,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아 갈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과 진리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 세상의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당당함이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다.

❸ 이 곡에 얽힌 역사적 일화들

찬송가 585장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돌파하는 영적 원동력이 되었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와 30년 전쟁: 개신교의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30년 전쟁 당시,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 왕은 전투에 임하기 전 항상 군사들과 함께 이 찬송을 불렀다. 이 곡은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두려움을 떨쳐내게 하는 영적 군가였다.

하이인리히 하이네의 찬사: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이 찬송을 가리켜 ‘종교개혁의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처럼 혁명적이고 뜨거운 노래)’라고 불렀다. 이 곡이 가진 시대적, 사회적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평가였다.

감옥에서 울려 퍼진 찬송: 히틀러 정권에 항거하다 순교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를 비롯해, 수많은 믿음의 절개를 지킨 이들이 어두운 감옥과 강제 수용소에서 이 찬송을 부르며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냈다.

❹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영적 메시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찬송가 585장은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불안의 시대, 피난처를 재확인하다: 경제적 위기, 질병, 가정의 붕괴, 미래에 대한 불안 등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영적·정서적 공격받는다. 이때 세상의 돈이나 인맥이라는 모래성을 의지하지 말고, '강한 성'이신 하나님께로 피하라는 영적 침소봉대를 제공한다.

타협 없는 신앙의 촉구: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신앙의 가치관이 흐려질 때,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라는 가사는 우리가 진정으로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맺음말: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부를 때의 자세 / 이 찬송은 입술의 고백으로만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온 삶을 던져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전사의 결단이자 기도이다. 삶의 무거운 짐이나 영적인 침체, 사탄의 참소로 인해 낙심해 있다면, 가사 하나하나를 깊이 묵상하며 이 찬송을 소리 내어 불러보자. 내 힘이 아닌, 날 대신해 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됨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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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에 실망치 말고 무조건 순종하자 / 옛날에 어느 돈 많은 할아버지가 노비를 많이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그해 섣달그믐날 그 노비들을 다 해방해주겠다고 노비들 앞에서 공언했다. 노비들은 굉장히 기뻐하며 손꼽아 그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노비로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내일이면 꿈에 그리던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종들을 불렀다. ‘너희들 이제 내일 나갈 텐데, 얼마나 좋으냐? 그런데 너희에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하자. 짚으로 새끼줄을 만드는데, 이제까지는 굵게 만들었는데, 너희들이 마지막으로 최대한으로 가늘게 새끼줄을 꼬아서 한 타래씩 해주고 가면 좋겠다’라고 했다. 새끼줄을 꼬아 보신 분은 알겠지만 가는 줄을 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런데 이 얘기를 듣고 나서 일군들의 반응이 두 가지였다. 게으른 노비들은 생각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부려 먹고도 이제 고작 하루 남았는데 그게 아까워서 끝까지 부려 먹겠다? 원 세상에, 이리도 고약한 할아버지가 또 있을까?’ 그들은 되는대로 짚을 한 움큼씩 잡고 굵직굵직하게 새끼를 꼬았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내던져놓고 잠들어버렸다. 또 한 부류는 ‘그렇지. 저 주인은 다른 주인과는 달리 우리에게 자유를 주니 얼마나 감사하냐. 그러니 이 감사한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하고는 주인이 요구하는 대로 이것을 밤새 꼬다 보니까 이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밤잠을 못 자고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침이 되었다. 주인이 종들을 다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이제 너희는 자유다. 그런데 자유를 주는데 종으로 살다가 자유를 주지만 막상 나가서 살려고 보니까 지식도 부족하고 정착금도 없고 못살지 않느냐? 그러니 나는 너희들에게 정착금을 좀 줘야 하겠다. 그래서 어제 너희에게 새끼를 꼬라고 그랬는데, 저 창고의 문을 열면 구멍 뚫린 동전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너희들이 나갈 때 어젯밤에 새끼줄을 꼰데다가 끼워 갈 만큼 가져가라.’라고 했다.

▮ 2003년 9월 주간 신문에 충남 논산의 한 병원을 소개하였다. 충남 논산에 가서 택시를 타고 ‘고려의원으로 가자’라고 하면 모르는 기사분이 별로 없을 정도로 유명한 병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병원 건물이 커서가 아니다. 간판도 화려하지 않은 30년 된 건물을 가진 동네의원일 뿐이다. 이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의술이 뛰어나서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의사 선생님 때문에 유명해졌다. 이 의사 선생님이 최의규 장로님인데, 최장로님은 ‘의사인 것이 자랑스럽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남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을 평생 갖게 되어서 감사하다’라는 것이다. 장로님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고, 공부하고, 자립해서 대학교수도 목사님도 배출하였다. 바람이 있다면 이분들도 자기처럼 남을 돕고 사는 삶을 살면 좋겠다고 한다. 이 분의 좌우명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로님이 이렇게 살게 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어떻게 나를 위해서만 쓰느냐 남을 위해서도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가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선교사들을 보면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나라가 이만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나라가 몹시 어렵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선교사들이 자기 고향에 좋은 것 다 내버리고 여기에 와서 피땀 흘려서 시간 들여, 돈 들여서 일하시는데, 한번은 환자가 피가 모자란다고 하니까 선교사님이 자기 피를 뽑아서 주더라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라고 했다. 그렇게 살았더니 유명해진 것이다. 그렇게 살았더니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높임 받고 그러는 것이다. 신문에 났다 안 났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 평안북도 정주에서 머슴을 살던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쓸고 집 안을 정리하였다. 주인마님이 일어나시면 방에 들어가 요강을 가지고 나와 깨끗하게 씻어 양지바른 곳에 뒤집어놓았다. 행실이 너무 바르고 영민한 것을 지켜보던 주인은 청년을 평양 숭실학교로 보내 공부시켰다. 공부를 마친 청년은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의 선생을 거쳐 교장이 되어 수많은 민족지도자를 양성하였다. 이 청년이 바로 독립운동가였던 고당(古堂) 조만식 선생(1883-1950)이다. 조만식은 평양 산정현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장로 조만식은 산정현교회 담임목사로 오산학교 출신인 주기철 목사(1897-1944)를 모셔 왔다. 자기보다 14살 연하이고 이전에 스승과 제자 사이였지만 조만식 장로는 목사에게 깍듯했다고 한다. 교회 대표로 주기철 목사를 찾아가 교회의 청빙 결정을 전하고 모시기로 했다. 주기철 목사님을 찾아온 조만식 장로님은 젊은 주목사 앞에 무릎을 꿇고 ‘목사님 저희 교회에 부임하실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청원했다. 그 후에도 목사 앞에서 언제나 무릎을 꿇었다. 주기철 목사가 편히 앉으시라고 간곡히 권해도 조만식 장로는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그럴 수 없다며 자세를 곧추세웠다. / 어느 주일 아침, 조만식 장로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만식 장로는 예배 시간에 늦고 말았다. 교회 문을 살짝 열고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가는 조만식을 향해 주기철 목사가 질책했다. ‘장로님, 오늘은 앉지 말고 서서 예배하십시오.’ 조만식은 나이도 한참 아래이고 이전에 제자였던 목사의 말을 듣고 설교 시간 내내 서 있었다. 설교가 끝나자 주기철 목사가 조만식 장로에게 지시한다. ‘장로님, 기도하세요.’ 조만식 장로는 목사의 지시를 받고 떠듬떠듬 입을 열어 기도를 시작했다. ‘아버지,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애국 운동한다고 사람을 만나다가 하나님 만나는 예배 시간에 늦었습니다. 목사님이 얼마나 마음 아프시면 설교하다 말고 책망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을 마음 아프게 한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성도들이 은혜받는 것을 방해한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기도를 하는 중에 조만식 장로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주기철 목사도 울고 성도들도 울었다.

▮ 미국의 자동차왕 포드가 눈이 내리는 겨울에 길을 가다가 포드자동차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서 뒤에서 지켜보았다. 어떤 사람이 차를 열고 엔진을 작동시키려 하고 손을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1급 정비사였다. 그러나 자동차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뒤에 서서 한참 보던 포드가 말했다. ‘1분만 만지겠습니다.’ 포드는 둘러보다 어떤 것을 한번 만지고 자동차 문을 닫았다. 그랬더니 시동이 걸렸다. 일급 정비사가 기술 자랑할 것 없다. 제작자에게 맡기기만 하면 1분에 해결되는 것이다. 긴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많은 노력이 문제가 아니다. 완전하신 분 전능하신 분, 그분에게 내가 달라고 할 때마다 맡기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그릇이 되고, 준비된 그릇이 되고, 깨끗한 그릇처럼 쓰임 받는 것이다.

❚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는 책에서 주인공인 김혜영 씨는 134cm의 작은 키로 척추 장애를 지닌 여성이다. 그런데 그 여성이 14살 때 월급 3만 원에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어린이가 편물을 14시간씩 짜면서 직업훈련원에 다녔다.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대학교를 검정고시로 합격하고 지금은 미국 컬럼비아대학 석사 학위를 받은 국제사회복지사가 되었다. KBS 이금희 아나운서는 2011년 6월 14일에 ‘아침마당’ 프로그램에서 이런 멘트로 생방송을 마쳤다. “때로는 존재 자체만으로 기적을 믿게 하고 존재 자체만으로 희망을 품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국제사회복지사 김혜영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김혜영은 정신 질환을 앓은 어머니, 술에 취하여 자신을 벽으로 내던지고 이후 자살해 버린 아버지, 그 불행의 틈바구니에서 척추 장애인이 되고, 키가 자라지 않고, 식모로 편물장이로 인생을 개척해 간 여인이다. 김혜영 씨가 오늘날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의 보잘것없는 키와 인물 때문이 아니다. 그의 그릇 속에 담긴 삶에 대한 비전과 열정, 최선을 다한 삶 때문이다. 그녀는 아프리카에 자원봉사자로 나아가 14년간 자원봉사를 하였다. 그의 그릇 속에 담긴 삶의 마인드가 아름답기에 그 보배의 찬란함으로 인해 박수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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