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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SF 영화 용가리 1998 - 과학적 구성 부족, 특수효과는 볼만해

작성자CandyMan|작성시간03.09.07|조회수1,583 목록 댓글 1
한국형 SF 영화 용가리 1998

과학적 구성 부족, 특수효과는 볼만해



정재승/물리학 박사·SF영화평론가




‘용가리 1998’이 개봉하는 첫날 아침 일찍 가까운 상영관을 찾았다. 시사회를

마친 평론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특수효과는 볼만하나 대사와 연기, 스토리는 기

대 이하’라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평가들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극장을 찾는 발걸음을 주저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용가리’는 한국의 SF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영화이기 때문이다. 작품성을 떠나 반드시 눈으로 확인해야

할 한국 SF영화의 현주소이자 최전선인 것이다.




얼굴은 진돗개, 몸통은 티라노사우루스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 1998’은 30년 전 김기덕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대괴수

용가리’에 바탕을 둔 것이다. ‘대괴수 용가리’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SF

영화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시도로 등장했다가 오래 전에 잊혀진 전설적인 작품이다.

1967년 발표된 ‘대괴수 용가리’는 현재 한국에 필름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우주

괴인 왕마귀’와 함께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세계적으로 알려진 SF영화다.

어느날 용가리가 판문점에서 솟아나 남쪽으로 내려와서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줄거리 때문에 반공 선전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고질라’를 만든 일본 특

수효과팀의 도움을 받아 당시까지 조악했던 한국 영화계의 SFX(특수효과) 수준을 일

거에 끌어올렸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특히 경쾌한 재즈 리듬으로 편곡

된 아리랑 반주에 맞춰 용가리가 춤을 추는 장면이나 용가리에 의해 도시가 파멸에

이르자 세기말적 타락으로 흥청거리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고

질라'의 아류로 분류되기에는 억울한 한국형 SF였다.

이런 용가리가 심형래 감독에 의해 다시 탄생하게 된 것이다. 헐리우드와 어깨를 나

란히 할 수 있는 한국형 SF 영화의 새 장을 열겠다는 ‘신지식인’다운 당찬 취지가

과연 우리의 용가리를 어떻게 재탄생 시킬 것인가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모

아졌다. 아마도 용가리가 아니라 이무기나 호랑이가 주인공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큰

관심을 모으진 못했을 것이다.

심형래씨도 한국형 SF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김기덕 감독만큼 많은 애를 썼을 것이다.

영구아트무비 용가리 디자인팀에 따르면, 용가리의 얼굴 모습은 진돗개에서 따온 것이

라고 한다. 한국인에게 친근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몸은 티라노사우루스에서 힌트를 얻었다. 영화 속에는 용가리의 크기가 티라노사우루스

의 50배에 달한다고 나오지만, 설계 자료에 따르면 용가리의 키는 1백50m(약 12배),

몸무게는 1백70t(약 25배) 정도다. 진돗개의 얼굴과 티라노사우루스의 몸통을 바탕으

로 네발 달린 공룡 용가리가 탄생된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SF영화를 기대하진 않았더라도 ‘한국형’ SF 영화를 기대했던 많은 관

객들은 영화를 본 후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다. 영화는 특수효과에만 신경을 썼을 뿐

얘기 전개나 상황 설정에서 치밀함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SF 영화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과학적 설정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의 줄거리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세기말 거대한 발굴이 진행중인 우랄 산맥 북

부 지역에서 켐벨 박사는 우연히 티라노사우루스의 50배나 되는 공룡인 용가리의 화석을

발견한다. 그는 용가리 화석을 계기로 세계 최고의 고고생물학자가 될 야망을 키우지만

그의 스승인 휴즈 박사는 예언서를 통해 용가리가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염려한다.

이때 외계에서 거대한 빛이 내려와 뼈만 남은 화석 용가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긴 잠

에서 깨어난 용가리는 도심 중심부에 나타나 도시 전체를 부수고, 빛줄기가 내려오면

순간 이동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을 반복한다. 수많은 비행기의 포격이 감행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던 중 켐벨 박사의 조교인 홀리는 용가리가 외계인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머리에 박힌 다이아몬드를 떼내면 원격 조종으로부터 피할 수 있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집중 총격을 통해 다이아몬드가 제거된 용가리는 다시 선량한 공룡으로 돌아오

고, 외계인들의 공격으로부터 지구를 구한다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특수효과 기술 총집결


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예언서, 한줄기 빛에 의한 생명 부활, 순간 이동,

다이아몬드를 통한 원격 조종 등은 어느 하나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상적인

설정이다. 또 용가리가 입에서 불을 뿜는 장면은 용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겠지만 과학

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다.

한편 컴퓨터 그래픽스로 처리돼 자연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용가리의 몸동작은 실제 동물

들의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꼬리가 긴 네발 동물들은 몸 전체의 균형을 잡

기 위해 대체로 네 발을 땅에 딛고 생활한다. 그러나 용가리는 긴 꼬리를 뒤로 늘어뜨린

채 영화 내내 서있거나 심지어 뛸 때도 두발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털옷

속에 들어가 찍던 특수효과가 컴퓨터 그래픽스로 바뀌었을 뿐, 실제 동물들의 움직임을

고려한 자연스러움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용가리’는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줄까. 대체로 SF 장르에서 괴물은 과학이 빚어

낸 창조물로 설정돼 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괴물이나 핵방사능 오염으로 발

생한 돌연변이 도마뱀 고질라가 바로 대표적인 예다. SF 영화에서 거대 괴물은 과학의 위

험성과 인간의 오만한 이성을 형상화한 흉측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래서 괴물을 무찌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해 되돌아보고 ‘자연을 완벽하게 통

제할 수 있다’고 믿던 인간의 오만함을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용가리 1998’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비슷한 결말을 얘기하고 있다. 용가리가 자신을

살려준 지구를 위해 온 힘을 다해 희생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도 삶의 터전인 지구를 보

호하고 아껴야 한다는 주제가 나레이션을 통해 흘러나온다. 외계인은 지구를 떠나면서

“언젠가 다시 찾아와 인간들을 다시 시험할 것”이라는 훈계조의 얘기를 퍼붓는다. 그

러나 내용과 조화롭게 융화되지 않은 설교조의 주제는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정

도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다면 영화는 ‘드래곤 투카’나 ‘티라노의 발톱’때보다 확실히

진일보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척박한 영화 현실에서 수십억원을 투자해 특수효과 장

비를 구입하고 몇개월간 연일 1백여명 이상이 밤샘 작업을 했다는 사실은 마땅히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영구아트무비가 구입한 화면합성장비와 3차원 입체영상 제작장

비, 필름 스캐너 등의 고가장비와 축적된 노하우는 아마도 국내 최고 수준이 아닐까

추측된다. 용가리 하나에만 1백여종의 디자인이 만들어지고 실제 모델 20개, 1m 크기

의 축소형 모델 8개가 제작되는 등 한국 SF 영화의 특수효과 기술이 총집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선보인 백악관 폭파장면에 사용됐던 촬

영 카메라를 공수해 썼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지루함을 주는 커다란 요인이 있다. 국적 불명의 공간적 배경, 그리

고 영어 대사다. 영화의 주무대는 테헤란로와 한강, 동평화 의류상가 건물처럼 서울로

설정돼 있으나 LA나 뉴욕의 건물들이 불쑥불쑥 등장하기도 하고, 배우들 모두가 미국인

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군인도 모두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달고 싸우는 미군으로 설정

돼 있다.

또 영어로만 이루어진 대사를 어린이들이 어떻게 소화할지도 문제다. 영구아트무비는 이

에 대해 “영화의 내용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화면만 따라가도 이해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영구와 땡칠이’의 코믹 대사에 익숙한 아이들은 쉽게 지루함

을 느낄 것이다.




‘SF = SFX’ 인식 벗어나야


1967년 ‘대괴수 용가리’에서 특수효과에 들인 비용은 1천3백만원. 당시 일반 극영화의

제작비가 5백 -6백만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김기덕 감독에 따르

면 ‘대괴수 용가리’에 등장하는 서울 중심가와 한강 교량, 화학물 저장탱크, 로켓, 미

사일, 전투기 등 실제 현장이나 실물 촬영이 어려운 거의 모든 부분이 축소 모델을 이용

해 촬영됐다고 한다. 대규모 자본과 첨단 기술이 투입되는 요즘의 한국영화들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당시 이 작품에서 축적된 SFX기술은 이후 한국의 인적 자원 증대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그런데 언젠가 김기덕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특수효과와 같은 기술적인 측면에 너무

치중하느라 스토리 구성에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부담이 컸다” 라고 말했다. 아마도 심형래 감독 역시 김기덕 감

독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았나 싶다. 한국영화계는 ‘SF는 곧 SFX’라는 공식에 사로

잡혀 있는게 아닐까. 과학적인 설정과 탄탄한 얘기 구조로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현

실화하고,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다면 굳이 특수효과를 많이 쓰지 않더라도 좋은 SF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헐리우드 자본에 맞서 경쟁할 수 있는 한국형 SF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런 노력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영구아트무비는 ‘용가리’의 후속 작품으로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콘돌’과 ‘이무기’의 사전 제작작업에 이미 돌입했다고 한다. ‘용가리 1998’

로 열린 한국형 SF 영화의 역사는 이제 비로소 본격적인 출발선에 서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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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우리-워니-사랑 작성시간 03.09.07 이영화 개봉할때 전 군대에 있었습니다. 훈련중 용가리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때 그걸 본 유일한 사람이었던 교육장교의 논평 한마디.. "용가리 보지마라... 욕나온다." 이 한마디에 울 대대원 전체가 관람을 포기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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