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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이야기

설화 속의 용마산 용마산의 설화를 더듬으며 20180726

작성자CAN 무무 최정남|작성시간18.07.27|조회수8 목록 댓글 0


                                              설화(說話) 속의 용마산

전국 날씨는 체온 36.7℃ 보다 더 높은 40.5℃로 경상도 남쪽 주민들을 찜통의 열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늘도 서울의 예상 최고온도는 35℃ 전후이다. 요즘 들어서 매미들이 세차게 부르짖는 소리가 청담공원을 흔들고 새벽잠 마저 설치게 하고 있다. 저들만의 한 달 남짓한 짧은 삶의 희열을 합창으로 신명나게 노래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6년여 동안 땅 밑에서 허망한 세월이 못내 아쉬워 통곡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벽 두시 네시 전후로 선잠으로 다섯시 쯤이면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대모산인가 구룡산이냐 아니면 아차산이나 용마산이려나. 한강변 탄천과 양재천을 향하려나. 그도 저도 아니면 강릉 경포대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동해바다로 빠져들면 어떨까. 겁없는 청소년기에 이루워질 수도 없는 환상의 여인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꿈에서나 보았던 그 모래와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가 신기루로 밀려온다. 오늘 아침에는 무엇을 찾아 어디로 갈 것인가. 광진구에서는 무조건 아차산 용마산이 나의 아침인사를 하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오늘처럼 무덥지 않은 날에는 자전거의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는다. 양재천 영동6교 밑에 주차하곤 대모산으로 향한다. 어디로 향하든지 왕복 세 시간 정도는 소요가 된다. 지하철을 타고 가든 자전거에 오르던 거의 비슷한 시간이 요구된다. 망설임을 뒤로 하고 용마산역 2번 출구를 나선다. 간만에 용마폭포공원을 거쳐서 용마산(348m) 정상을 가리라. 옛날 아들 하나만 낳게해 달라고 아차산에 올라 매일 기도드리는 마음씨 착한 부부가 있었다. 하늘도 감동했는지 부부는 꿈에 그리던 사내애기를 품에 안는다. 돌도 지나지 않은 갖난애기는 겨드랑이에 하얀 날개가 달린다. 지붕에도  오르고  산에도 날아 오른다. 마을사람들은 역적 장수가 되리라고 애기를 죽여버린다. 아차산에서 용마(龍馬)가 아기장수를 기다리다가 해가 떠오르자 한강에 투신으로 자살을 한다. 이후로 아차산 제일 높은 봉우리를 용마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화(說話)가 전해 내려오는 용마산이다. 폭포공원 근처에는 축구장 테니스장 운동기구 농구장 그리고 암벽타기의 클라이밍 시설도 있다. 주위를 맴돌며 걷는 사람, 축구나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회원들 자기 마음대로 즐기고 있다. 어쩌면 용마를 만날 수도 있으리라는  어리석음으로 물병 하나 달랑 들고 용마산 봉우리로 오른다. 어느새 등산티와 팬티는 흥건한 땀으로 훔씬 젖어 버리고 있다. 옛 등산로 따라서는 나무계단이 대신 자리를 잡고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수고스럽게 그것도 세금을 잔뜩 투입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 시설물은 편의를 준다기 보다 혐오시설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서울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지하철의 답답함과 자동차의 매연 그리고 아파트의 삭막함이 숨통을 옥죄고 있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도시에 살고 있는 너와 나의 자화상이다. 잠시나마 산으로 들어서면 자연을 호흡하며 산 그대로의 체취를 만끽하고픈 것이 아니겠는가. 체력이 달리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굳이 버거운 산을 오를 필요는 없는 노릇이다. 설악산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설치는 인간들. 사회약자 편을 든다며 핏대를 올리는 지자체나 정치인들의 속 마음이 궁금하다. 누구를 위한 망발인가. 넓지도 않은 자그마한 한반도를 얼키고 설키게 주리를 트는 모습일 뿐이다. 나무를 붙들며 바위를 기어오르기도 한다. 숲 속에 바위는 차가운 느낌을 손바닥으로 음미하면서 오른다. 온 몸은 체온의 발산을 하느라고 땀구명은 활짝 열려 있다. 팔 다리와 관절 마디 마디에는 산에서 풍겨나오는 모든 정기(精氣)가 짜릿함으로 파고들고 있다. 머리 속은 웬지 모를 상쾌함으로 맑아지는 느낌이다. 복부지방이 연소되고 분해되어 허공으로 퍼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온 음료수 두병이 순식간에 목마름으로 사라진다. 심장 박동 소리는 산울림으로 다가오며 하산의 발길은 날으듯이 가볍다.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오르내리는 계단은 지겹고 숨통을 조여올 뿐이다. 누구나 출퇴근길에서 맞닥들이는 고역이리라. 처자식을 위하여 자신을 위한 생존키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테다. 칠십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노객의 연세한강병원으로의 출퇴근의 실정은 어떤가. 젊은이들 속에 발디딜 틈이 없는 지하철이다. 장유유서(長維有序)의 삼강오륜의 꿈은 생활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자리 양보를 바라는 것은 젊은이들에게는 과욕으로 다가올 것이다. 카톡을 하고 만화를 보며 게임과 고스톱 등으로 노인네들에게 신경쓸 마음도 여유도 없는 게다. 뚫어져라 스미트폰에 정신줄을 놓은지 오래이다. 노객에게는 아까운 젊은 나이의 불행을 예고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영어 한 단어 삶의 보람을 주는 행위는 정녕 보이지를 않는다. 지난 날 젊은 그 세월을 저들처럼 무의미하게 영양가 없이 보냈음을 깨달은들 무엇하리요마는 . 그저 나이 먹은 노인네의 푸념으로 치부하며 오늘도 기분 좋은 즐거운 마음으로 약제실로 들어선다. " 어서 오십시오 " " 안녕히 가십시요 " 이런 앵무새 같이 흘러 나오는 출퇴근 카드를 언제까지 쓸 수 있으려나.


                                          2018년 7월 26일     무     무     최  정  남          


                                  https://photos.app.goo.gl/EMCLvwioJ9uJp8o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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