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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던 짐머만 공연의 이유 : 못다한 짐머만 공연 후기

작성자terry|작성시간26.01.23|조회수95 목록 댓글 0

 

2026년 초반 가장 논란이 되고있는 크리스티안 짐머만 공연은

총 6회 대전예당, 서울 롯콘 13, 15, 18일 3회, 부산, 대구에서 진행되었고

매 공연이 끝날 때마다 일어나는 관크에 대한, 짐머만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들이 난무한다

느끼는 바도 각자 달랐고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한 생각도 달랐지만

공통적인 것은 짐머만은 아티스트로서는 여전히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훌륭한 아티스트의 공연은 언제나 최고의 감동을 주는가..........

이 부분이 문제인 것 같다

 

공연의 감동은 연주자의 예술적 기량 외의 요소가 다분히 개입되는바

관크없는 공연, 좋은 프로그램, 그리고 거기다 공연의 베뉴가 주는 보이지않는 서비스의 품질

이 모든 것이 다 공연의 감동에 일조한다

 

 

 

 

공연을 기획하는 주체는 과연 최상의 노력을 했는가

 

사실 이부분이 이번 짐머만 공연에서 가장 부실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침, 소음 관크야 겨울철 공연에서 기대되는 바이고 물리적으로 방지가 완벽하게 될 수 없는 부분

그러나 매 공연의 프로그램이 바뀌는 짐머만 공연을 기획하면서 공연 당일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프로그램북에 당일 프로그램지를 삽입해 주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문제는 그 프로그램 낱장이 바스락 거리는 재질의 얇은 종이 한 장

프로그램북과 동일한 도톰한 재질의 낱장으로만 만들었어도 공연 중 종이 바스락거리는 관크는 방지할 수 있었다

공연장에 앉은 수천명이 동시에 프로그램지를 매 곡마다 들었다 놓았다 하는데 그 소리가 대단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얇디얇은 종이로 결론난 것은 예산문제였을까......

 

공연 전에 어나운스먼트로 이 공연에서 사진촬영이 어떤 단계에서도 금지된다는 공지가 과연 관객에게 효율적으로 전달되었을까?

롯콘 공연에서 의례적으로 나오는 공연 전 안내 뒤에 다른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한국어로 먼저, 그리고 영어로 다시 한번 전달한 촬영금지 안내의 내용은 정중함의 탈을 썼지만 불편한 워딩들이 다분히 있었다

짐머만의 공연스타일을 익히 알고 갔는데도 막상 현장에서 ''아티스트에 대한 배신' 운운하는 멘트가 와닿지 않았고

어셔들의 빈 무대 공간부터 절대로 촬영안된다는 공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빈 무대에 피아노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사진들은 무한으로 올라온다 다시 말하면 강력히 공지해도 공감하지 않으니 지키지 않는다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주체가 좀더 사려깊게, 관객을 배려하고 아티스트를 존중하는 데 더 최선을 다했다면....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각자 지킬 것만 잘 지키면 된다는 논리가 틀린 법이 없지만

모든 일에 소통이 없으면 그 각자 지키는 일이 잘 되지 않는다 심지어 심통이 나면 더 안지키지도 한다

지시와 공지가 아니라 당부와 배려의 요청이어도 될까말까한 일이다

 

 

 

연주자도 관객도 모두 완벽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한 공연의 분위기는 초반부에 결정되는 바 초반에 흐트러진 분위기를 잡기는 어렵다

사실 롯콘 18일 프로그램 <1부>는 모든 관객이 각잡고 경청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짐머만의 연주가 온 우주의 집중과 몰입을 일으킬 만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깐의 사이에 토해지는 기침, 2번 연주 후 짐머만 자신이 잠시 헛기침 후 더 강력해지는 기침박수였다 대부분의 관객은 분위기를 탄다 할만 한 것 같은 틈이 보이면 여지없이 참지않고 토해내지만 몰입을 끌어모아주는 연주는 그 틈이 보이지 않으니 참는다 물론 그 모든 상황을 거스르는 구제불능 관크 관객도 있다

 

짐머만의 공연의 준비단계부터의 완벽함의 추구는 진즉부터 알려진 일이고

한 관객으로서 나는 그런 완벽한 준비와 공연의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아티스트가 기대되었다

그런 아티스트의 공연에 최상의 관객이 될 준비를 단디하고 갔는데

의외로 짐머만은 여유롭고 다정했으며 까다로와보이지 않았고 연주도 그랬다

최고의 아티스트인 짐머만의 부분적인 미스터치가 언짢지 않았다 그는 그럼에도불구하고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었으니까

 

2부 프렐류드에서 보여준 짐머만의 몰입감은 관객에게도 이입되어 2부에는 공연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관객은 빠져들었고 짐머만은 여유를 더한 독보적인 테크닉으로 다른 공연과는 다른 여러가지 제재로 불편했을 관객의 마음을 완전히 치유해주었고 중간중간 곁들인 위트있는 제스처가 오히려 그의 공연을 즐기게 해 주었다

결국 관객을 몰입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연주자이다

 

 

 

21세기 클래식 공연장의 풍경은 더 이상 No 관크일 수 없다

 

 

이제 70대인 짐머만이 전성기였을 때의 상황과 지금의 시대상황은 다르다

관객들 대부분이 이제 21세기에 태어난 이들로 채워질텐데 그들은 텍스트 세대가 아닌 스크린 세대이다

긴 글과 공지로 설득되기에는 직관적인 본능과 경험치가 너무 많다

 

20세기에 태어난 나 또한 적응이 안될 때가 많지만 우리의 21세기 세계시민들이 앞으로 세상의 주체들이다

공연을 즐기고 즐긴 후의 기록을 SNS 남기고 또 SNS로 아티스트와 소통하는 일이 일상인 그들이

관객의 대부분이 될 때, 여전히 No 관크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관크는 아무리 누군가가 방지해도 일어난다 노력으로 가능한 일인지 생각해봐도 그 수많은 사람들의 뇌를 하나로 똑같이 세팅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클래식 공연장도 클래식 아티스트들도 이 새로운 세대의 관객을 받아들이고 문화적 변용을 이행해야하지 않을까? 물론 결단코 관크를 옹호하지 않는다 그런 무례한 관객들이 없기를 바라지만 진공상태로 어떠한 변질도 용납하지않는 추구는 그 불편함으로 이제 21세기 관객들은 더이상 클래식 공연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로 관크를 하지 않을, 관객으로서 완벽한 준비를 갖춘 이들만을 관객으로 삼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다면 클래식의 저변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저변확대를 위해 이거저거 다 용납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관객을 제3의 연주자로 끌어들이기 위한 다른 노력을 모색해야한다는 의미이고 그것을 기획하고 연구하는 것은 관객이 아니라 클래식 공연 주체들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소박한 아티스트의 기대이상으로 감동받은 공연에서 느꼈던 감동은

대단한 기대와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않고 얻었기에 그 가치가 더 빛난 것이고

대단한 아티스트의 기대되는 공연에서 얻은 충족되지 않은 만족은

높디높은 기대와 큰 비용과 노력을 투자했기에 더욱 더 높아진 기대에 미치지 못한

현장의 감동떄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클래식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사랑하는 관객이고자 한다면

관객으로서의 나의 시각과 클래식 공연에 대한 정의도 바뀌어야 할 때라는 생각에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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