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를 끓이는 시간.....
어린 시절 봄바람에 보리밭이 일렁이는 모습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산들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보리 이삭들~
따갑기 시작한 햇살에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꼬투리들~
귀한 밀 꼬투리 대신 몇개 몰래 따와 껍질째 불에 구워 손으로 비벼 먹던 배고픈 시절의 궁핍함~
보리밭에 혼자 들어가면 보리문디가 있다는
어른들의 무서운 당부에 논밭 고랑에 속새를 베러 갈때도 동무들과 어울려 들어가곤 했었지.
상큼한 속새풀의 내음새.. 그 풀냄새가 지금도 코끝을 훅치고 지나간다
추억은 그렇게 오랫도록 내 몸 속 깊이 향기로 남아있다.
지나온 그 시간들은 나의 유전자 구석구석 향기로 사진으로 스며들어 있다가
어느순간
그 장면 그 냄새들이 울컥거리고 내 주위를 맴돈다.
그 때 같이 속새를베고, 쓴나물 캐든 정숙이는 잘 살고 있을까
깔끔해서 그 집 마루 늘 반짝반짝 빛이나곤 했는데, 보고싶다.
보리차 끓이는 시간은 어린시절 고향의 바람과 햇빛마저 소환한다..
짙은 보리차 내음이 온집안에 퍼질때쯤 소환이 끝난다.
보리가 아닌듯~
일주일에 서너번의 보리차를 끓인다.
정수물 주전자 가득담아 물을 팔팔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보리 한웅큼을 넉넉히 넣고 이삼분 더 우려내고 불을 끈다
고급 정수기를 놔도 식구들은 보리차를 좋아한다.
우리집만의 농도..내가 맨날 대충 넣는듯 해도 그 양이 일정한지 그 물맛을 보약처럼 마신다.
어머님이 아들이 좋아한다고 국산보리를 직접 사서 어머님 방앗간에서 고운 갈색빛깔로 볶아서 보내주신다.
그 마음이 고운빛으로 거듭 나는 보리차를 끓이는 시간은 어머님을 늘 생각하게한다 .
그리고 보리차 물을 보약마시듯 좋아하는 남편
집에 있는 날이면 보리차 두세병이 비워진다
주말부부로 지낼때도 늘 일주일치 물을 담아 보내곤 했다.
집에 오는 손님들도 보리차를 주면 꼭 물어본다. 보리를 살 수 있냐고.. 안타깝지만 팔 수 있는 국산 보리를 산다해도
마트에서 사먹는 것 보다 훨씬 비싸서 소개하기도 부담스러워 안된다고 하고 만다.
이렇듯, 우리집 보리차는 특별하고 시원하고 깔끔하고 맛나다.
외식이라도 하고 들어오는 날은 우리 가족 모두... 냉장고 문열어 보리차를 큰컵으로 벌컥벌컥 마셔야 외식의 마지막 정리가 끝난다
여름에는 물을 끓여 냉장고 넣는 일이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