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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에서 이기대 해안로 "해파랑 길"을 가다

작성자만월(滿越)|작성시간11.07.22|조회수14 목록 댓글 0

이기대(二妓臺)라는 명칭은

1850년 좌수사 이형하(李亨夏)가 편찬한 《동래영지(東萊營誌)》에 좌수영 남쪽으로 15리에 두 명의

기생(二妓)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영성(水營城)을 함락시키고 축하연을 열고 있을 때 수영(水營)의

의로운 기녀가 왜장을 술에 취하게 한 뒤 끌어안고 바다로 투신하여 함께 죽은 곳으로서

이기대가 아니라 의기대(義妓臺)가 올바른 명칭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당시 두 명의 기생이 함께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투신한 데서 유래된 명칭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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