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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아를 죽여 자유롭게 살기

작성자짱stigma|작성시간10.05.03|조회수27 목록 댓글 0

자아를 죽여 자유롭게 살기 / 어네스트 오닐


축복은 어디에?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내가 깨달았던 축복은 어디로 갔나?

예수님과 당신의 말씀으로 거듭난 영혼은 어디에 있나?“


그대의 마음도 이런 말을 하면서 울고 있습니까?

이 글을 읽으면서 그대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누구도 이 글을 읽는 그대의 마음을 훔쳐볼 수 없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는 그대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타인의 모든 시선이나 그대를 지탱해온 가식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그대가 정직하길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그대에게 그대 자신이 되라고,

그대의 고유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온갖 좌절과 개인적인 실패들이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장 21-23절에서 예수님은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향한 헌신과 감사의 첫 마음, 기도와 성경 읽기에 대한 첫 열심,

밖으로 나가 전도하고 미래를 모두 주님께 봉헌하겠다던

첫 결심이 희미해져 버린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열의는 사라지고

신앙 생활은 꾸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일에 우리의 삶 전부를 드리겠다던 결심은

나 자신에게 일부라도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희석되어 버린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고,

심하게는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을까 의심하는 등

신앙의 기복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자주 그러한 감정들과 불공평한 싸움을 벌입니다.

그런 감정들은 점점 더 공공연한 죄가 되고 맙니다.

한동안은 질투심이나 이기심을 누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감정의 억제”를 포기하다시피 한 채 악마의 꼬임과 타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은총 가운데 있다고 우리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변모된 삶”의 기준을 자꾸만 낮춥니다. 그러나 외적인 실패와 내적인 긴장과 포기한 확신은

참된 증거를 하려는 시도를 완벽하게 무너뜨리고 맙니다.

실로, 위선에 대한 혐오가 늘어도 신자다움에 대한 회의는 더욱 깊어지면서,

우리는 고도로 전문화된 종교와 저질의 삶, 고도의 내성과 수준 낮은 미덕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약속을 의심하고 시적으로 과장된 사적인 체험들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20세기의 신앙적 갈등이라 말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하거나 우리와 같은 이들이 또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인간적인 비신화화 이론에 심취합니다.


그대도 이런 경험을 했습니까? 이는 불필요한 일입니다.

그대는 하나님과 함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의 경험,

회심 너머의 단계, 그대 영혼 속의 또 다른 기적을 마련하고 계십니다.

아마 이런 단계를 그대는 인식하지 못했거나 이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죄로부터 절반쯤 치유되는 일은 나무 속의 병든 부위를 찾아내는 대신에

병든 가지만 쳐내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병은 깊어질 것입니다.


성경 전체는 질병 자체와 질병의 증상, 즉 내적인 죄와 외적인 죄,

마음과 삶을 구별시켜 줍니다. 우리가 증상들을 처음 발견하여 그것을 치료하듯이,

회심 가운데 우리는 죄에 해당하는 행위와 말과 생각을 의식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드러난 삶을 영광되게 만드시는 성령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진짜 병든 곳은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평안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 여전히 자아가 살아 있습니다.

무의식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과 비밀리에 떨어져 있고 싶어합니다.

우리 내면의 ‘가장 신성한 곳’에서 우리는 신이 되기 원하며,

안전하게 차단된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던 마음을 조종합니다.

각각의 순종들은 개별적인 처리와 협상을 요구합니다.

차츰 이런 일들이 체화되면서, 우리의 동기와 반응, 욕망과 기질을 통해

숨어 있던 자아가 표출됩니다. 망설임 없이 자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던

행위와 말과 생각의 자리로 되돌아갑니다.

병을 붙잡고 있기에, 얼굴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몸은 긴장으로 굳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전적으로 동행하지 않은 실패한 기독교인의 표지입니다.


성경의 치유

사람들이 두려워 공개적으로 예수를 부인했을 때, 베드로가 겪은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그의 모든 삶을 성령에게 내맡겼을 때,

베드로는 사도행전 15장 9절에서 “믿음으로 마음들이 깨끗해졌다”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 5장 17절에서 “육체의 소욕은(내적인 분리를 원하는 마음) 성령을 거스린다”고 썼을 때,

바울이 겪은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에서 “우리의 낡은 자아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합니다.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치유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의 죄성과 또한 그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외적인 죄와 동시에 내적인 죄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증상뿐 아니라 질병으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주님은 외적인 삶과 마음을 모두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옛 자아의 대체물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완전함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껏 그대는 성령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제 성령이 그대를 취하게 허락하렵니까?

그대가 ‘가장 신성한 곳’으로 성령을 들어오시게 하지 않는 한,

병은 자라고 그대는 제2의 안식, 완전한 성화, 성령 세례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이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첫째, 성령이 그대 인생 속의 한 사람, 예수님의 대리인임을 깨달으십시오.

“진짜 그대”가 살고 있는 중앙 본부인 그대의 마음, 그대의 자아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얼마나 병들었는지 가르쳐 달라고 성령께 요청하십시오.

우리는 오랜 세월 이런 일을 무시하거나 아예 묻어버렸기에,

이 작업은 여러 주일 걸릴지도 모릅니다.

내적인 죄의 표지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열어 성령께 이 일을 맡기십시오.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고 미소를 짓고 있지만 속에선 후회와 망설임과 분노가 일고 있나요?

칭찬을 기대하나요? 그대 자신을 성령과의 대화 속으로 밀어붙이고 있나요?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평온을 얻고 있나요? 마음이 아픈가요?

 

그대는 꾹꾹 눌러둔 적개심이나 조바심 때문에 골이 나서

한참 동안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않은 적이 있나요?

이 모두 자아를 방어하거나 주장하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자아에 대해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거스르는 이러한 교만, 은밀한 배신이라는 죄성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눈으로 그대의 본성을 직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성령께 청하십시오.

옛 자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성향을 지닌 육적인 기질의 표현입니다.

옛 자아는 외적인 혹은 실제적인 죄를 낳는 이기심입니다.

옛 자아는 기독교인이면서도 본성은 여전히 육체적임을 드러내는 자기애입니다.

 

이러한 병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적입니다.

인간적인 기질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역적입니다.

로마서 8장 7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그렇기 때문에 옛 자아는 위험합니다.

옛 자아는 종교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옛 자아가 내부에서 우리를 오염시켜 왔기 때문에 참된 크리스천이 될 때까지

이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억제나 율법으로는 옛 자아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철저히 부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그대의 ‘옛 자아’로 무엇을 하셨는지를 깨달으십시오.

로마서 6장 6절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대의 죄를 예수님께서 짊어지셨기 때문에 그대가 이 사실을 믿는 그때라야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대 육신의 생각, 즉 옛 자아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지만, 이 사실을 믿을 때에만

그대의 생명에 그 죽음이 끼친 영향에서 비롯되는 자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대가 회심하던 그때 하나님께서 그대의 영혼을 쇄신시켜 주셨듯이,

그대가 믿는 그때 하나님은 성화를 통해 그대의 영혼 속에서

죄로 기우는 성향을 없애는 두 번째 작업을 하실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그대 인생의 쓴 뿌리를 뽑아내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것은 분명 죽었으며, 우리를 위해 주님이 하신 그 모두를

우리는 주님을 통하여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대는 그리스도 안에 머물면서 주님이 그대를 위해 얻어준 유익들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렵니까?

그대의 옛 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대여 그렇게 하렵니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그대 인생의 쓴 뿌리를 지금 당장 치워주실 수 있습니다!


넷째, 신앙을 가지십시오. 신앙을 통해 하나님은 그대 안에서 이 일을 지금 하십니다.

신앙은 자아를 불신임하고 하나님을 신임하는 이중의 선택입니다.


자아를 죽일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대가 원하고 좋아하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라갈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대의 현재와 미래를 성령의 손에 맡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물으실 때,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대의 이름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있으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자아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대 자신을 무방비 상태로 내어놓고, 방어기재들을 내려놓으며,

천국에까지 가져가고자 계획했던 인격의 아주 사적인 조각까지도 영원히 던져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행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공공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선함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것이 신앙을 씻는 첫 부분, 완전한 성화입니다.

그대가 모든 것을 제단 위에 드릴 때에만, 희생이 온전할 때에만,

성령은 그대 마음 바닥에 도달한 영혼과 함께

그대가 하나님께 마침내 정직해졌음을 증거하실 것입니다.


신앙이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은 완전한 성화에 대한 응답으로 솟아나기 마련입니다.

성령이 성화의 완전함을 증거하기까지, 성령으로 하여금 양보를 모르는 그대의 이력이나

인격적인 영향력, 자만 등을 샅샅이 살펴달라고 하십시오.

“그대가 죽어서 그대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은 바 되었다”고

진정으로 말하기 위해 “그대 자신은 진실로 죄에 대해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대는 모두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성령이 증거해 주셨습니까?


이런 준비가 되면, 하나님의 신뢰라는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그대의 보혜사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이미 그대를 도왔으나, 그대는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했을런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또한 “성령이 신앙으로 그대의 마음을 씻어줄 것이다”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이미 그대의 삶을 완전하게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성령에게 길을 내어주십시오. 성령의 품 안에서 쉬십시오. 성령을 신뢰하십시오.

성령에게 “옛 자아”를 지워달라고 건네십시오.

 

성령은 지금도 내면의 그대 주장들을 무너뜨리고 계십니다.

신앙으로 성령을 붙들고, 믿고 따르십시오. 성령은 성심으로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성령은 그대를 인도할 것입니다. 성령은 미래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그대는 오로지 지금 성령에게 집중하면 됩니다. 주님만을 생각하십시오.

지금부터 그대 자아의 지시를 따르지 마십시오.

즉시 세세한 부분까지 성령의 명령을 따르십시오.

그대의 생명이 성령의 것이 되면, 성령은 구주의 영광을 위해 기뻐하면서 그대를 사용합니다.

성령이 그대 안에서 열매를 맺게 하십시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은사를 받으십시오.


마침내 삶의 자유가 찾아옵니다! 자아의 속박에서 벗어납니다.

더 이상 자아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들지 않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속에 숨어버립니다.

(주님을 위해 그대의 생명을 잃을 때마다 그대는 생명을 구할 것입니다.)

사실 그대가 하나님 안에서 그대 자신을 잃어버릴 때,

그대는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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