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석호정 남산 활터 국궁장,한국 양궁의 발상지/호미숙
2019. 11. 16
서울 석호정 호미숙 여무사 오랫만에 활터에 다녀왔습니다.
일이 바빠 활터를 년중행사로 어쩌다 오릅니다.
오늘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석호정을 찾으니
불붙은 남산은 날아간 화살에 붉은 단풍이 우수수
한 시, 한 시 과녁을 향해 날아간 화살이 과녁을 때릴 때마다
불빛이 들어오고 단풍들이 찬사를 보냅니다.
호미는 활을 자주 쏠 때는 50파운드를 쏘았는데
요즘은 45파운드를 사용합니다.
22년 세월 중에 10년 동안 활을 잡은지가 손가락 안에 들 정도네요.
국궁은 저에게 정신적 지주처럼 자리한터라
활을 쏘지 못해도 석호정 단체방이나
국궁신문 소식을 보면서 아련한 활사랑을 다집니다.
1년에 한번 찾는 호미의 오늘 시수
4손 결과 3중, 2중, 불, 1중
오늘 활을 얹으면서 참으로 기가 막힌 실수를 범했는데요.
현의 위 아래를 바꿔 잘 못 걸어 쏘게 되었답니다. ㅠ.ㅠ.
급하게 올린 것이 문제였지요.
그런데 신기하게 초순에 3중을~ 다들 너무 웃었답니다.
자전거처럼 한 번 배워두면 몸이 기억해서 어느 정도 쏠 줄 알았는데
10년 동안 년중 행사로 가다보니 표도 잃고 화살의 방향도 보이지 않습니다.
평생 취미로 할 수 있는 국궁이기에 내몸에서 잊지 않기 위해 좀 더 자주 가야겠습니다.
서울 사대문 안의 최초 민간 활터, 양궁의 발상지 석호정을 소개합니다.
석호정은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백성들의 상무정신을 기르기 위해 1630년 창건된 민간 활터입니다. 원래 장충단공원 뒤쪽 산기슭에 있던 ‘활터’로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70년대 현 위치에 새로 지었습니다.
서울 석호정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무인들은 자주 남산 자락에 올라 활을 쏘고 시를 쓰고 심신을 단련했습니다.
석호정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이전과 중수시마다 중수기를 기록한 현판이 여러점 있습니다. 그 중에 1956년 중수기는 창건 이후 1956까지 역사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중수기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석호정에 방문했을 때 기념사진 1949년도 촬영
오늘 토요일 오후 석호정 사대에서 활을 내고 있는 사우님들.
석호정은 남산둘레길 바로 옆에 위치합니다. 동국대학교에서 남산 계단을 올라 약수터 방향으로 가다보면 국립극장 뒤편에 있습니다.
또는 국립극장 쪽으로 가서 산쪽으로 오르는 뒷길 계단을 오르면 석호정이 있습니다.
석호정은 남산둘레길에 있어서 남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까이서 구경할 수도 있습니다. 외국인들도 호기심에 들어와 사진도 찍고 궁금함을 문의하기도 합니다.
무겁터 옆으로 국립극장이 보입니다.
석호정은 기와 건물 단층이고 외부에는 차양막을 설치해서 눈부심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석호정이 양궁의 발상지라는 것을 아시나요?
올림픽의 금메달을 석권하는 한국 양궁은 석호정에서 활을 쏘던 석봉근 씨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1959년 수도여중 체육교사 석봉근이 고물상에서 구한 시위 없는 양궁 활과 석호정에서 얻은 국궁 시위를 사용해 석호정에서 홀로 연습을 하였는데, 1962년 석호정을 찾았던 양궁 매니아 미군의 엘로트 중령이 석봉근을 보게 됩니다.
이후 엘로트 중령은 석봉근 선생에게 양궁 시범을 보여주고, 장비 일체를 기증합니다. 이 인연으로 1963년 10월 한국일보사 주최 전국활쏘기 대회에 양궁 30m종목이 채택되어 경기도 수원성 터에서 실시되었고, 엘로트 중령과 석봉근 역시 선수로 참가하였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석호정으로 젊은 사람들을 모아 국궁을 바탕으로 한 양궁을 교육시켰고, 오늘날의 양궁 최강국으로 이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