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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어디로 갔을까?

작성자정동광 안토니오|작성시간26.06.16|조회수20 목록 댓글 0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피부에 작은 트러블이 생겼다.
급한 증상은 아니었지만 불편함이 계속돼
며칠 전 동네 피부과에 예약을 하고 찾았다.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접수 직원이 뜻밖의 말을 했다.

“저희는 일반 피부질환은 진료하지 않습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피부가 아파 피부과를 찾았는데 피부질환을
진료하지 않는다니.
간판에는 분명 피부과라고 적혀 있었다.
결국 진료도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처음에는 그저 황당한 경험으로 넘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일을 또
겪었다.
이번에는 병원에 가기 전 미리 전화를 걸어
물었다.
“혹시 피부 트러블도 진료하시나요?”

돌이켜보면 참 이상한 질문이다.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파는지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제는 피부과에 가기 전 피부질환을
진료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길을 걷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낭독되는 선서,
그 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의사들은 졸업을 앞두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뿌리는 2000년 넘게 전해져 온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닿아 있다.
시대에 따라 표현과 형식은 달라졌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았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겠다는 의료인의 책임과
윤리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의료마저 효율과
수익성의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의사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병원도 운영을 해야 하고 직원들의 급여와
임대료, 장비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건강보험 수가에 대한 의료계의 어려움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의료의 모든 문제를 경제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교육이 단순한 사업이 아니듯, 복지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듯 의료 또한 단순한
시장 상품이 아니다.
의료에는 공공성이 있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응급실이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자.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영을
중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산부인과가 경제적 이유로 문을 닫고,
소아청소년과가 계속 줄어든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부모들이 아이 진료를 위해 몇 시간씩
대기하는 현실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피부과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미용 시술과 비급여 진료는 늘어나는데,
정작 일반 피부질환을 진료하는 곳은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피부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돈의 논리에 지나치게 끌려갈 때
나타나는 단면이다.
돈이 되는 곳에는 자원이 몰리고, 그렇지
않은 영역은 점차 위축된다.

나는 오랫동안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해
왔다.
사회복지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장애인, 노인, 아동을 돌보는 일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시장의 논리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그래서 국가는 예산을 투입하고 제도를 통해
이를 뒷받침한다.
시장에만 맡겨두면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국민 누구나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면 국가 역시 그 권리가 실현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일반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의료자원이 특정 분야에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야
한다.
국민들이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의 회복이다.
병원을 찾는 사람은 단순한 고객이 아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의사를
의료기술을 제공하는 전문가 이전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나고 싶어 한다.

의료가 신뢰를 잃으면 결국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도 의료계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는 그 정신이 가장 살아 있어야 할
영역이다.
환자를 진료의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볼 때 의료는 비로소 신뢰와
존경을 얻을 수 있다.

길가의 피부과 간판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경제성과 효율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책임보다 앞설 때 공동체는 조금씩
균열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의료는 그 균열을 가장 먼저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른다.

국민들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피부가 아프면 가까운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고, 아이가 아프면 동네
소아청소년과에서 치료를 받고,
한밤중 응급상황이 생기면 걱정 없이
응급실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은 특권이 아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의과대학 졸업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정신이 단지 의례적인
낭독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정부도 국민의 의료 접근권을 지키기
위한 제도 개선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시장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글쓴이/강대성회장, (주) 크랜베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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