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6일 연중 22주간 수요일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병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병원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아픔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픔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에 걸리면 사람들은 그 병에서 빨리 낫기를 바라고 빨리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자 합니다. 그래서 여러 병원도 다녀보고, 사진도 찍어보고, 내시경도 해보고, 다양한 검사를 받으면서 병원서 검사하는데 진을 다 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확하게 진단하는데 많은 날이 걸립니다. 의사들은 쉽게 병을 알아맞히기가 어렵답니다. 사진이나 청진기로도 감을 잡을 수 없는 병이 유난이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996년에 미국의 병리학회에서 최초로 등장한 병명이 하나 있었답니다. 그 이름은 화병(火病 : Hwapyung)이라는 병명이었습니다. 그 병명 다음에 가로를 치고 ‘한국사람 만 걸림’이라고 써 있다고 합니다. 이 화병은 정말 다스리기 힘든 우리나라 사람들의 병입니다. 세월호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살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부모들과 본인들은 이 화병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 것입니다. 이 화병을 가슴에 묻고 살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방어기재로 표현되는 많은 방법들도 서로 뒤엉켜 사람들의 화병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정말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사람들은 그렇게 털어버리고 살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털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약 30년 전에 어머니와 동생을 병원에 동시에 입원시킨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7층 병동에, 동생은 3층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어머니는 심한 정신적 고통 때문에 입원하셨고, 동생은 위암 증세로 입원을 했는데 서로 모르게 입원한 것이 더 문제입니다. 서로 ‘어째서 형만 왔다 갔다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어째서 둘째 아들이 보이지 않느냐?’고 성화를 내셨습니다. 나중에 퇴원하신 다음에야 같이 입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내 마음은 정말 갈등이었고, 아무도 만나기 싫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일 의사선생님에게 경과를 묻고 괴로워해야 해야 했는데 동생은 죽음을 준비하는 듯 마음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어머니의 입원을 알렸는데 동생은 그 아픈 중에도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어머니의 쾌유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정성스런 기도를 대하면서 혼자 숱하게 울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은 다행으로 병을 완치되어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동시에 입원하였을 때 나는 양쪽 병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부담감을 갖거나 걱정을 하면 병이 악화될까봐 가족들만 알고 모르는 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생들은 아직 어려서 아무 것도 못하고 또 병원을 찾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나는 거의 매일 두 병실을 찾아다니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서 그 거짓말은 아주 오래 갈 수 있었습니다. 동생에게 사실을 말할 때까지 그렇게 속이는 것이 내 일이었습니다. 정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는 때였습니다.
그 때 나는 마음의 갈등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을 때 생각나는 글이 있었습니다.
‘인수유위기지심, 방능극기. 능극기, 방능성기.’
人須有爲己之心, 方能克己. 能克己, 方能成己.라는 말입니다.
언제인가 제가 복음묵상에서 쓴 것으로 기억이 되지만 다시 올립니다. 중국의 명나라 때 왕양명이라는 대 학자가 써낸 어록인 전습록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이는 소혜라는 제자가 “자기의 사사로움은 이겨내기가 어렵습니다. 어찌해야 하온지요?(己私難克. 奈何?)” 하고 물었을 때의 대답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스스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자기를 이겨낼 수 있다. 자기를 이겨낼 수 있어야만, 비로소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스스로 하느님의 귀한 자녀답게 너그럽게 넓고 큰 아량으로 대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악인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을 그렇게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속이 터지고 답답하고 억울하고 기분 나쁠 때 자기 스스로를 돌보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또한 그렇게 아량을 가지고 너그럽게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깊은 뜻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아무런 능력이 없어도 주님께 의탁하고 자신의 이기심이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잘하면서 지금은 나 자신을 얼마나 구박하는지 정말 큰 죄를 짓고 있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 앞으로 오는 많은 가난한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십니다. 사실 가난한 것은 정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랍니다.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의사를 만날 수도 없으며, 약을 지을 돈도 없는 사람들이 단방약이나 미신에 의지해서 병을 더 키우거나 죽지 못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이랍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러 오신 주님이시지만, 하느님의 권위로 병을 고쳐주시는 일도 조금도 소홀히 생각하지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이후로 그날 밤새우도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런 도구도 없이, 종합적인 검사와 수술도 없이 엄청난 일을 하십니다. 만져주고, 말씀만 나누시고, 악령을 꾸짖는 것으로 모든 이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주님께서 병을 고쳐 주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심리적인 갈등과 원수진 미움과 화병까지도 단 한 번의 안수와 말씀으로 치유해주신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설렌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며, 아직 세상을 희망과 용기로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고 축복이며, 은총인 것입니다. 희망이 없고, 용기도 없어, 축 늘어져 있는 나에게 주님의 축복으로 용기를 내서 나를 사랑할 수 있고, 자 스스로를 위하면서 살 수 있음은 정말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주님께 고쳐 주시라고 졸라대며 내 잘못 살았던 삶을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마련하기 위해서 노력할 때입니다.
주님, 병들어 있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당신의 손길로 깨끗하게 만드소서.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소서. 그 동안 너무 비관적으로 살면서 우울했던 모든 삶을 청산하고 기쁨과 당신의 사랑에 감읍하여 행복한 마음으로 살게 하시어 삶에 활력을 퍼부어 순교자들의 성덕으로 살도록 치유의 은총을 베푸소서. 사랑의 하느님, 아버지...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