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9일 연중 10주간 수요일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율법은 사랑을 실천할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란 말이 있습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뜻이지요. 우리나라 사람은 코걸이를 잘하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코걸이를 아주 즐겨합니다. 요즘 들어 젊은 대학생들이 코에 구슬처럼 반짝이는 것을 박고 다니기에 신기해서 물었더니 그렇게 물어보는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바라보는 겁니다. 아마 내가 19세기 사람처럼 보였는지 모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법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자기에게 유리하고 편리한대로 해석하는 사람이나 세상의 모든 기준을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율법도 시대에 맞게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 혼란과 혼돈으로 바로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어떤 기준을 정하여 법은 제정되거나 개정되었고 적절하게 폐지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 법에 따른 시행령과 규칙이 많아져서 법은 계속 확대됩니다. 분명 죄를 지었는데 법으로 정한 조항이 없어서 처벌을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은 꼭 지켜야 하고 또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고 권익을 존중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라고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실은 힘없고 착한 사람을 "그 사람은 법이 있어야 법으로 보호 받아야 살 사람"이라고 말해야 하는 요즘 사회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법을 만드는 정치가들이 가장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큰 영웅처럼 대접을 받는 세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율법은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십계명'입니다. 그 십계명은 계속 수정되고 폐지될 수 없는 완전무결한 하느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한 점 한 획도 고칠 수 없고 없어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요약하면 '하느님 사랑'과 '사람 사랑'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계명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혹시 이현령비현령으로 내 편한 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하인과 함께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가게 되었는데, 돌아올 때 주인은 너무 피곤해서 전혀 뱃길을 모르는 하인에게 배의 키를 맡기면서 북극성을 보고 가라고 일러 주고 곧 잠이 들었는데 조금 후에 하인이 주인을 다급하게 깨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주인님, 다른 별을 가르쳐 주십시오. 가르쳐 주신 별은 이미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북극성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북극성을 보고 배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몰랐을 것입니다. 법이 있어도 법을 모르면 지킬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율법은 변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계명을 쉽게 지나쳐 버리기 쉬운 하늘의 별쯤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북극성처럼 언제나 그 방향을 지키고 있는데 우리는 우둔한 하인처럼 딴전을 부리다가 북극성을 잃어버리고 매번 다른 별을 찾고 이현령비현령으로 핑계를 댑니다.
우리는 '아전인수'(我田引水)로 나 위주의 율법을 곧잘 만듭니다. 이는 내 논과 밭에 물을 대기 위해서 우선 물줄기를 막아 다른 사람의 논과 밭에 물이 흘러가지 못하게 막고 물줄기가 흐르는 도랑을 내 논밭에 슬쩍 돌려놓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인 방법으로 욕심을 채워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선을 분명히 그으시고 우리에게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율법을 잘 지키는 지 판단기준은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강제로 법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키며, 자발적으로 그 율법의 뜻을 새겨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스스로 모범이 된다면 얼마나 흐뭇하시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옛 시조에 이런 구절이 생각납니다.
"먹세그녀 먹세그녀 술 한잔 먹세그녀, 나못가지 꺽어놓고 술 한잔 먹세그녀.."
술을 먹을 때 석잔만 마시겠다고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술 한 잔 마실 때마다 나뭇가지를 한 번 꺾어놓고 세 번 꺾였으면 그 즉시 술잔을 놓고 일어섰다는 노래입니다.
스스로 율법을 지키고, 스스로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주님께서도 마음을 놓으실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을 기쁜 마음으로 지키고 가르치는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헛된 우상에 정신이 팔려서 하느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세상의 율법에 전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의 법망만 뚫고 나가려는 얄팍한 잔꾀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계신데 세상의 헛된 것에 정신이 팔려 하느님을 잊고 산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만이 계십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율법만이 있을 뿐입니다. 율법은 사랑을 실천할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새 계약을 이행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3,4-11
형제 여러분,
4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5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스스로 무엇인가 해냈다고 여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7 돌에 문자로 새겨 넣은 죽음의 직분도 영광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곧 사라질 것이기는 하였지만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8 그렇다면 성령의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9 단죄로 이끄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의로움으로 이끄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10 사실 이 경우, 영광으로 빛나던 것이 더 뛰어난 영광 때문에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11 곧 사라질 것도 영광스러웠다면 길이 남을 것은 더욱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축일6월 9일 성 에프렘 (Ephraem)
신분 :부제, 교회학자, 성서학자
활동 지역 :에데사(Edessa)
활동 연도 :306?-373년
같은 이름 :애프램, 애프렘, 에프라임, 에프램
메소포타미아 지방 니시비스(Nisibis) 태생인 성 에프라임(또는 에프렘)은 어느 이방인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양친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됨에 따라 18세 때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니시비스의 성 야고보(Jacobus, 7월 15일)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후일 이 학교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325년의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성 야고보를 수행하여 참석하였다.
시리아의 문헌에 의하면, 350년의 페르시아 침입 때 그의 기도 덕분으로 니시비스가 해방되는데 큰 공로를 세웠으나, 363년 요비아누스 황제에 의해 니시비스가 재차 페르시아의 수중에 들어가자, 성 에프라임은 로마 제국에 속한 에데사 근교의 동굴에 거처를 정하고 신자들에게 설교도 하며 지냈다. 그는 부제였다고 한다. 그는 또한 이곳에서 자신의 저서 대부분을 저술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370년에 카이사레아(Caesarea)로 가서 성 바실리우스(Basilius)를 찾아보았고, 돌아오는 길에 372년과 373년 겨울의 냉혹한 기근을 덜어주는데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는 373년 에데사에서 선종하였다.
성 에프라임은 성서적 근원을 밝히는 비중 큰 저서를 비롯해 성경 주석과 교의 및 수덕 생활에 관한 수많은 글을 시리아어로 남겼다. 그는 또한 이단을 반박하는, 특히 아리우스(Arius) 이단과 영지주의를 공격하는 중요한 논리를 서술하였고,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외에도 그는 복되신 동정녀에 대해서도 신심이 깊었는데, 그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단언했기 때문에 흔히 ‘원죄 없으신 잉태의 증인’으로도 불린다. 그는 공식 전례에 찬미가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신앙 교육에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신앙생활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의 저서는 일찍이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 그리고 라틴어로 번역되어 자주 사용되었는데, 그의 니시비아어 찬미가와 절기에 따른 찬가는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그는 ‘성령의 하프’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1920년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교황이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한 것은 시리아 교회 출신으로 서방 교회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 그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는 ‘시리아 사람 에프라임’(St. Ephrem the Syrian)으로도 불린다.
오늘 축일을 맞은 에프렘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