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성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은 가장 큰 기도입니다.
나는 요즘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해도 마음이 심란합니다. 집중을 하기 힘들고 산란한 것이 내 마음과 기도와 미사참례가 따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분심이 나를 가지고 놀고 있으니 내 마음이 집중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병들었을 때는 오직 그 병을 고쳐주십사 하고 마음을 집중시켰고, 내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는 그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게 해 주십사 하고 그 문제에 집중했기 때문에 마음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요즘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개의 분심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이 한 군데로 집중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악마가 나를 심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아이들의 냉담입니다. 고등학생 때까지 사제가 되려고 준비했던 아들도 냉담을 하고, 수녀가 되겠다고 벼르던 딸들이 냉담을 하고 손자들까지 냉담을 하고 있으니 이건 성당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기도 하고 무거운 바위덩어리는 눌러 놓고 사는 것 같이 답답한 마음입니다. 매일 기도하고 주님께 매달리지만 벌써 5년 가까이 이것은 아주 큰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자식이 냉담하면 옛 교리에 의하면 부모는 큰 죄를 짓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체를 할 자격마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식의 냉담을 지켜보면서 산다는 것은 아주 큰 고문과 같습니다. 내가 매일 묵상을 하면서도 이 문제만큼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인인 것입니다. 이제 자꾸만 건강이 좋아지지 않고 나빠집니다.
쉽게 말해서 기억력도 떨어지고 육신도 병을 이기느라고 소진되었는지 아픈 것이 자꾸만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초조해집니다. 병원에 가는 날이 많아지고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속은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이제는 급해졌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나 사위들은 고사하고 아들딸들도 냉담하고 있으니 묵상을 할 자격도 없습니다. 성당에서 주일학교에 대한 얘기만 나와도 유아 방에서 애들이 떠드는 소리만 들려도 손자들 생각에 마음이 또 분심이 드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이 좋지 않아서 우리 아이들이 냉담하고 있는지, 내가 기도를 잘못해서 그런지, 주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지 않으시려고 작정을 하셨는지,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니 더욱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이나 내가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세상을 겸손하게 산다면 아이들이 그 부모를 보고 겸손을 배웠을 것이고, 신앙을 배웠을 것입니다. 내가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무구하고 아름답게 살았다면 아이들이 냉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만을 배우고 신앙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냉담의 고리를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다른 길을 걷다가 길을 찾은 사람들이나 냉담하다가 신앙을 회복한 사람을 두고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주님은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영광을 나는 언제나 맛볼 수 있을지 자꾸만 분심이 드는 것입니다. 한 가족이 모두 미사에 나와서 기쁘게 미사에 참례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럽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성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했는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입니다. 성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일은 가장 큰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주님께서 축복해주시는 최고의 은총입니다.
<여호수아, 힘과 용기를 내어라. 너는 백성과 함께 그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31,1-8
1 모세는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을 하였다.
2 “나는 오늘로 백스무 살이나 되어 더 이상 나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또 주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이 요르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 주 너희 하느님께서 친히 너희 앞에 서서 건너가시고, 저 모든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시어,
너희가 그들을 쫓아내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너희 앞에 서서 건너갈 것이다.
4 주님께서는 아모리족의 임금 시혼과 옥과 그 나라를 멸망시키신 것처럼, 저들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5 이렇게 주님께서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시면,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계명대로 그들에게 해야 한다.
6 너희는 힘과 용기를 내어라. 그들을 두려워해서도 겁내서도 안 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가시면서,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7 그러고 나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 놓고,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말하였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이 백성과 함께,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들어가서,
그들에게 저 땅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8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된다.”
축일8월 12일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Jane Frences de Chantal)
신분 : 설립자, 수녀
활동 연도 : 1572-1641년
같은 이름 : 방지가, 샹딸,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프란체스카, 후아나
1572년 1월 23일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디종(Dijon)에서 귀족 가문의 둘째 딸로 태어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oanna Francisca de Chantal)은 18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가톨릭적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로부터 폭 넓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20세 때에 크리스토프 드 샹탈(Christophe de Chantal) 남작과 결혼한 그녀는 충실한 아내이자 헌신적인 어머니요 검소하고 알뜰한 주부로서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던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城)에서 매일미사를 봉헌하는 관례를 만들었고, 다른 성의 신심활동을 도입하여 소개하면서 자선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그들 부부는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둘은 유아 때 사망하였다. 게다가 1601년 남편이 사냥을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그녀는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와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시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몽틀롱(Monthelon)으로 오지 않으면 손자들의 상속권을 박탈하겠다는 위협을 받고 할 수 없이 몽틀롱으로 가서 7년 동안 자녀교육에 힘쓰며 살았다.
1604년 사순시기 동안 친정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디종을 방문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마침 그곳을 방문한 제네바(Geneva)의 주교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설교를 듣고 대단한 감명을 받아 그의 영적 지도를 청하였다. 처음에 다소 망설이던 주교는 결국 그녀의 간청을 받아들였고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서로 영성적인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결혼하지 않을 것과 주교에게 순종할 것을 서원하였다. 디종의 카르멜회 수녀들과 만남을 통해 큰 영향을 받은 그녀는 자신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하고자 원했으나 주교는 좀 더 인내를 갖고 기다리도록 했다.
1607년에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는 그녀에게 영성적으로는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에 드러내었던 덕들을 따르고, 활동적으로는 노인들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하는 수도 공동체를 세우려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이에 뜻을 같이 한 그녀는 주교의 도움으로 자녀들의 장래 문제와 집안의 대소사를 해결한 후 안시(Annecy)로 떠났는데, 그곳은 주교가 새로운 수도회를 세우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 1610년 6월 6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는 안시 수도원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녀와 2명의 동료들이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해 주교로부터 정식으로 회칙을 받았으며 이듬 해 그들 모두 수도 서원을 하고 그녀가 원장이 되었다. 이 수도회의 이름과 회헌은 여러 번 바뀌어 오다가 마침내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공식 명칭으로 확정하였다. 이 수도회는 1612년 1월부터 병자방문을 시작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그녀는 시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후 더욱 영성적인 성숙에 힘쓰며 수도회의 새로운 분원 설립에 주력하였다.
1614년 리옹(Lyon)에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많은 난관을 겪기도 했지만 그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의 도움을 받아 수도원을 급속히 확장해 나갔고 많은 여성들이 입회하였다. 이러한 성공적인 확장은 육체적인 고행보다는 겸손과 온화함을 강조한 주교의 가르침과 그녀의 신중함과 헌신 덕분이었다. 1619년에 그녀는 파리(Paris) 분원을 설립하면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9월 27일)를 만나게 되었는데,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는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초기 정신과 활동 방향을 옹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사망한 후에는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주었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사망하던 1622년 당시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분원은 13개였고, 프랑스 전역으로 확장되어 그녀가 사망할 당시 약 86개의 분원이 있었다.
그녀는 수도회 내적, 외적인 시련을 견디어 내면서 계속해서 분원을 설립하기 위해 거처를 옮겨 가며 생활하였다. 1628년 흑사병으로 많은 수도자들이 사망한 후 안시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다시금 장상을 역임하다가 1641년 마지막으로 파리에 가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를 만나고 돌아온 후 느베르(Nevers)에서 병을 얻었다. 결국 물랭(Moulins)의 분원에서 몸져누운 그녀는 1641년 12월 13일에 그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의 시신은 안시로 옮겨져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의 무덤 곁에 묻혔다. 그녀는 1751년 11월 21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성되어 1769년부터 로마 전례력에 포함되었다. 그녀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쓴 “신심생활 입문”(The Introduction to the Devout Life)에 잘 나타나 있다.
2001년 12월 18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에 의해 성녀 축일의 전례적 기념일이 12월 12일에서 8월 12일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1999년 3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자로 선포한 ‘과달루페(Guadalupe) 성모 축일’과 같은 날이어서 전례적인 기념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그녀의 축일을 8월 18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