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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 묵상

머리가 빠지고, 다시 나고

작성자이창순(야고보)|작성시간26.06.20|조회수20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21일 주일 연중 제12주일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6-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너희는 사람들을 26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머리가 빠지고다시 나고

 

항암주사를 맞기 시작할 때 먼저 가슴에 포트(port)를 심는 수술을 했습니다수술을 한지 10년이 지난 2020년 3월까지 그 포트가 가슴에 심어져 있었습니다항암주사부터 모든 주사를 그곳을 통해서 놓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2020년 3월에 10년 만에 재발 위험이 없을 것 같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판단에 의해서 포트 제거수술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항암주사를 아주 독한 것으로 놓으면서 여러 가지 주의사항과 부작용에 대해서 전문 간호사가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갖고 영양사가 먹는 음식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꼭 3시간 동안 공부해야 했습니다암은 공부해야 하는 병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그래서 노트 해가면서 딸아이랑 열심히 공부했습니다머리가 빠질 것이니 가발을 준비하든지 모자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죽느냐사느냐하는 문제로 항암주사를 맞는 형편에 무슨 모양을 볼 것이냐 하는 생각으로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딸아이들이 모자를 여러 개 준비해 줘서 대기해 놓고 있었습니다. 11시간이나 되는 긴 항암주사를 맞고 5일이 지난 날 아침에 정말 머리카락이 우수수 힘없이 빠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약 100만 개의 터럭을 심어 주셨는데 그 중에서 머리칼이 대략 10만개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건강한 사람이 하루에 50-80개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새로 난다고 합니다머리카락의 평균 수명은 2년 반 정도라니까 계속 빠지고 나는 신비한 선물입니다그런데 그 머리카락이 하루아침에 5만 개는 더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손으로 쓸어내렸더니 정말 힘없이 그냥 우수수 떨어지는 것입니다그 많던 머리카락이 이틀 만에 다 빠져버렸습니다그날 오늘 복음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그래서 정말 태연하게 그 머리카락을 쓸어 비닐 봉투에 담았습니다나의 생멸(生滅)이 그분의 뜻에 달려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10월 중순에 수술을 받고 회복기에 들어가서 12월 중순을 지났을 때입니다빤질빤질한 대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그분께서 세어두신 그 머리카락이 까맣게 나오는 것입니다하루에 0.3mm씩 씩씩하게 자라며 솟아나는 머리카락을 거울로 비쳐 보면서 아파서 통증으로 밤을 지새우며 고개를 들 수 없는 눈으로 거울을 올려쳐다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하신 주님의 말씀이 가슴에서 크게 천둥처럼 들려 왔습니다죽을 수 있는 병에서 살려주시고죽을 고비에서 용기를 주시며 고통과 견딜 수 없는 통증에도 함께 하신 주님께서 나의 생사의 순간에도 함께 하셨다는 생각에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님은 큰 것을 바라지 않으시고또한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시고오직 사람들에게 내가 주님의 은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기만을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일입니다사람들에게 그 것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증언을 하는 일에 인색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증언에 인색한 삶은 악마의 간교한 유혹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은총을 받고 있을 때만 주님 앞에서 알랑거리고 조금이라도 내게 이익이 없다고 느껴지면 돌아서는 나의 신심(信心)이 문제인 것입니다이제부터는 아주 자연스럽게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니다나에게는 주님을 증거 할 수많은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매일 매 순간 기적을 베풀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받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2-15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축일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Aloysius Gonzaga)

 

신분 수사신학생

활동 연도 : 1568-1591

같은 이름 공사가루도비꼬루도비코루도비쿠스루이루이스루이지알로이시우스

 

성 알로이시우스 곤자가(또는 알로이시오)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Brescia)와 만토바(Mantova) 사이에 있는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의 후작 페란테(Ferrante de Gonzaga)와 마르타 타나(Marta Tana di Santena)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그의 집안은 부유했지만 다소 야만적이고 부도덕하기도 했다하지만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사랑으로 성 알로이시우스를 키우려고 노력하였다성 알로이시우스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했으나 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어린 시절 그의 가정 교사였던 피에르프란체스코(Pierfrancesco del Turco)는 성 알로이시우스의 영혼과 정신을 길러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577년 스페인의 왕 펠리페 2(Felipe II, 1556-1598)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성 알로이시우스를 피렌체(Firenze)의 대공 프란치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 궁의 시동(侍童)으로 보냈다그리고 2년 후인 1579년에 성 알로이시우스와 그의 동생 로돌포(Rodolfo)를 만토바(Mantova)의 공작에게 보냈다여기서 사제직의 꿈을 키우던 성 알로이시우스는 1580년 7월 여행 도중 들른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추기경을 만나 그에게 직접 첫영성체를 받았다. 1581년 오스트리아 황후 마리아가 마드리드(Madrid)로 돌아갈 때 곤자가 가문도 함께 갔고성 알로이시우스는 펠리페 2세 궁정에서 왕자 돈 디에고(Don Diego)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철학을 공부했다그 후 왕자가 사망하자 1583년 8월 15일 성 알로이시우스는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다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며 일단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들을 설득했다이탈리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그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85년 11월 25일 로마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우스는 밀라노(Milano)의 예수회 분원에서 몇 달을 지낸 후 만토바에서 수련을 받았다이듬해 2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하여 잠시 집에 들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학업에 정진하였다그는 나폴리(Napoli)에 머물면서 형이상학을 공부하였고예수회 로마 학원에서 철학을 배웠다. 1587년 11월 25일 첫 서원을 한 뒤 곧바로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그를 가르치던 교수 중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바스케스(G. Vazquez, 1549-1604)가 있었으며훗날 성인이 된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 9월 17)가 성 알로이시우스의 영성지도 신부였다.

 

성 알로이시우스가 신학을 공부한 지 4년째 되던 1590년 로마 전역에 페스트가 퍼졌다그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보살피고 그들이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그렇게 헌신적으로 병자들을 간호하던 성 알로이시우스는 이듬해 3월 초 자신도 페스트에 전염되어 같은 해 6월 21일 23세의 젊은 나이로 선종했다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 이냐시오(Ignatius) 예수회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긍정적이고 관찰력이 탁월했던 그는 철학과 신학의 전 과목에서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무엇보다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어려서부터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고어떠한 반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따라서 그는 특별히 정결에 대한 은사를 받은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그리고 그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실천했다.

 

성 알로이시우스의 시성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그는 1605년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5(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3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그로부터 3년 후 성 알로이시우스는 젊은이와 신학생들특별히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교회 미술에서 그는 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주위에 백합화나 해골 등과 함께 그려지곤 한다백합은 정결을 상징하는 꽃으로 특별히 성 알로이시우스가 받은 정결의 은사를 상징하고해골은 회개와 보속의 삶을 의미한다그는 이탈리아에서 루이지 곤자가(Luigi Gonzaga)로 불리는데이탈리아 이름인 루이지의 라틴어 형식이 알로이시우스이기 때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알로이시오 곤자가 (Aloysius Gonzaga)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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