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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 묵상

콩깍지가 여러 겹으로 덮여서

작성자이창순(야고보)|작성시간26.06.21|조회수18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22일 월요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어떻게 형제에게 가만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콩깍지가 여러 겹으로 덮여서

 

마음이 어린 휘니

 

                        서경덕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늬 님 오리마난

지는 님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마음이 어리석고 보니 하는 일이 모두 다 어리석다.

깊은 산 속에 어느 누가 나를 찾아 올까마는

그래도 떨어지는 잎새와 바람 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임일까 한다.

 

황진이의 유혹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서경덕의 연정가(戀情歌)입니다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눈이 삔다고 합니다또 콩깍지가 끼어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아무리 잘못하는 것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얼굴의 큰 흉터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합니다그래도 그렇게 눈이 삐도록 사랑에 빠지기를 원합니다그러다가 어떤 날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내가 미쳤지귀신이 씌었나눈을 감고 살았군살았어!’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삽니다그런 때는 차라리 눈을 뜨지 않고 그냥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그러나 정작으로 눈을 뜨고 있거나 감고 있거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으면어떤 아름다움이나 교태도 소용이 없어집니다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마음 안에 아름다우면어떤 추함도 모두 아름다워 보일 것입니다자신의 마음에 큰 들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제의 눈에 티끌을 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자신 하나도 제대로 버틸 힘도 없으면서 정말 앞자락이 넓어서 다른 사람 참견까지 할 수 있다니 대단한 일입니다그런데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큰 허물을 모두 덮어두고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을 오히려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합니다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작은 허물 밖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별로 하고 싶은 말은 아니지만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내 앞자락은 지금 엉망진창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데 다른 사람의 실마리를 풀어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꼴입니다그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서 충고도 해주고길을 인도해 준다고 나서기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교회도 그렇고 우리 공동체도 그런 모습을 잘 보입니다입을 뗄 형편도 아닌데 충판해탐’(忠判解探)에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충고(忠告)와 판단(判斷), 그리고 해석(解析)과 탐색(探索)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각오로 살고 있습니다누가 사람들을 잘 인도하는 사람인가누가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리더로서 살 수 있다는 말인가이런 질문은 아주 자주 우리를 당혹하게 합니다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신이 없는 질문입니다.

 

먼저 자신을 잘 살펴보고 자신의 결점을 고치고자신의 능력을 보완하고그리고 상대방을 잘 안다면 충고도 값질 것입니다자신의 판단이 부족하지만 주님의 성령으로 겸손해지고지혜의 은총을 받아서 이웃을 옳게 판단하고상담해서 좋은 길로 인도해 준다면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사람들이 편견이나 아집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소상하게 연구하고 조리 있게 해석해 준다면 얼마나 지혜로운 일이겠습니까그래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연구하고 조사해서 좋은 방안을 찾아내서 제시해 준다면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그렇다면 충판해탐(忠判解探)도 절대로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정치가가 눈이 어두워 종교를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고신앙을 함부로 얘기한다면 이는 큰일 날 일입니다그의 눈을 덮고 있는 그 교만을 말끔하게 씻어줄 것은 겸손한 자세뿐입니다.

 

교회도성직자도수도자도평신도도 그렇게 눈이 밝아지고자신의 결점을 잘 고치고 살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매일 몹쓸 것이 잔뜩 끼어 백내장이나 녹내장처럼 소경을 만드는 그런 병들은 빨리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주님의 안약을 빨리 사서 골고루 발라야 합니다서로 무시하고서로 경시하면서 무슨 사랑이 이루어지겠습니까학문에 대한 교만이 가득한데 어떻게 학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질시와 질투가 사랑의 눈을 멀게 하는데 어떻게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이제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부터 개안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그래야 무언가 정말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생길 것 같습니다지금은 아직 어둠의 속이라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합니다그 사람들의 가장 앞에 내가 있음을 느낍니다더러운 속내를 교묘하게 포장하고겸손과 성덕을 위장하고 활개를 치고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내가 우두머리라는 생각이 더욱 슬픈 일입니다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7,5-8.13-15.18

그 무렵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는 온 나라를 치러 올라왔다

그는 사마리아까지 쳐 올라와 그곳을 세 해 동안 포위하였다.

마침내 호세아 제구년에 아시리아 임금은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서 할라와 고잔 강 가 하보르와 메디아의 성읍들에 이주시켰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빼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풍속과 

이스라엘 임금들이 만들어 낸 것에 따라 걸어갔기 때문이다.

13 주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와 선견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셨다.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보낸 모든 율법대로 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켜라.”

14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

15 그들은 그분의 규정과 그분께서 저희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그리고 자기들에게 주신 경고를 업신여겼다.

18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노하시어 그들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축일6월 22일 성 토마스 모어 (Thomas More)

 

신분 인본주의자법률가순교자

활동 연도 : 1477-1535

같은 이름 도마토머스

 

법률학자이자 판사이던 요한 모어(Joannes More)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난 성 토마스 모어는 12세 때에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이며 영국의 대법관인 요한 모턴의 조수로 생활했다나중에 그는 옥스퍼드와 런던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면서 문화와 신학 ·고전 문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넓혔고, 1501년 법조계에 진출했다. 1504년에 그는 영국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카르투지오회 수도자가 되려는 꿈을 포기하고 1505년에 제인 콜트(Jane Colt)와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의 집은 영국의 문예부흥 및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그 이유는 당대의 석학들과 지성인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였기 때문이다그의 해박한 지식과 기지는 만인의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그는 영국 인본주의자들의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최고 석학이었다그는 시역사를 비롯하여 프로테스탄트를 반대하는 논문신심 서적과 기도문 등을 저술했고 고전 번역 작업도 하였다그의 대표작인 유토피아”(1515-1516)는 이성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국가상을 묘사한 것으로 세계의 고전이 되었다또 루터를 배격하는 헨리의 변명”(1523)은 그가 가르쳤던 헨리 8세에 대한 강력한 옹호가 담긴 서적이다.

 

1510년 그는 런던의 사정 장관보(司政 長官補)로 임명되었고, 1511년에는 아내와 사별한 뒤에 과부이던 앨리스 미들턴(Alice Middleton)과 재혼하였다헨리가 그의 형 아서(Arthur)의 사망으로 왕으로 등극하면서부터 그는 프랑스와 플랑드르(Flandre)의 외교사절로 활약했고, 1517년에는 추밀원에 진출했으며, 1521년에는 기사작위를 받았다또한 그는 1523년에 하원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529년에는 월시(Walsh) 추기경 후임으로 평신도로서는 처음으로 대법관직에 올랐다성 토마스 모어는 이때 왕의 이혼에 대하여 강력한 어조로 반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관에 기용된 것이었다.

 

그 후 그는 헨리 8세 왕의 이혼 문제에 침묵을 지킴으로써 왕의 혼란을 가중시킴과 아울러 분노케 하다가헨리 8세가 카타리나(Catharina of Aragun) 왕비와의 이혼 허가를 교황청에 제출하는 서류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을 때 국왕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하였다또 교회를 반격하는 일련의 서류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후 성 토마스 모어는 대법관직을 사임하고, 1532년에 첼시(Chelsea)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또한 그는 헨리 8세가 카타리나의 시녀였던 앤 불린(Anne Boleyn)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 후계 지위를 양도한다는 소위 왕위 계승 문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534년에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고, 15개월 동안 옥중 생활을 하는 중에도 영국 교회에 대한 왕의 수장령에 서명할 것을 요청하는 토마스 크롬웰(Thomas Cromwell)에게 침묵권을 행사하며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이 일로부터 꼭 5일 째 되는 날인 1535년 7월 6마침내 그는 참수형을 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그는 자신이 국왕의 충실한 종이 될 수 있으나 먼저 하느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던 위대한 신앙인이었다그는 1850년 영국 가톨릭 교계제도가 재확립된 이후 시복시성이 추진되면서 1886년 12월 29일 로체스터(Rochester)의 성 요한 피셔(Joannes Fisher) 주교와 다른 52명의 순교자들과 함께 교황 레오 13(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그리고 순교 400년이 되는 1935년 5월 19일 교황 비오 11(Pius XI)에 의해 성 요한 피셔 주교와 함께 시성되었다그의 축일은 7월 9일로 정해졌다가 1970년 이후 성 요한 피셔 주교의 순교일인 6월 22일에 그와 함께 기념하게 되었다법률가의 수호자로서 공경을 받던 그는 2000년 10월 3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Joannes Paulus II)에 의해 정치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토마스 모어 (Thomas Mor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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