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삿 9장 50-57절
설교제목 : 맷돌의 심판
여름어사전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주간 건강하셨습니까?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 폭염이 다시 우리를 피로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뜨거운 여름을 건강하게 나시길 빕니다. 폭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피해 복구하는데, 이 여름 열기를 향해 다소 투정을 부릴 때마다 마음의 사치스러움을 반성하곤 합니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그 시간을 알차게 견딜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시인들이 최근에 펴낸 “여름어 사전”이란 책의 ‘참외’라는 박소란 님의 글이 있습니다.
“노란빛이다. 쨍한 노란빛. 실상 속은 멀겋다. 알고 보면 생각이 많은 사람처럼. 가득 들어찬 잡념 탓에 긴긴밤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달다, 달다, 중얼거리다 보면 더
달아지고 그런 달금함으로 더위와 시간의 고단을 견디는지 모른다. 달고 향기로운 이 액과를 몇 알 까먹고 나면 접시에 수북이 쌓이는 껍질. 한눈을 판 사이 조그만 날벌레들이 날아와 껍질 속을 헤매고, 단맛을 좀 보고. 그 애들과 내가 같은 입맛을 가졌다 믿으면 여름은 잠시 순해진다.
내가 사랑한 이들은 모두 여름에 죽었다. 제상 위 불경스럽도록 노란 한 알의 빛을 자주 생각한다.”
[《여름어사전》, 아침달, p210]
여름 더위에도 잠시 순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다르게 보기, 참외를 깍아먹는 작은 일상에서도 낯선 것들과 접촉하며 조금은 여유로운 시선을갖는 길일 것입니다. 노자는 지족(知足)이면 불욕(不辱)이요.지지(知止)면 불태(不殆)라 했습니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만족할 줄 모르며 사는 우리는 이 열기에 더욱 지치고, 그치는 법을 알지 못하여 위태롭기 그지 없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여름 더위와 우리의 삶의 시간을 건강하게 살아내기 위해 “지족불욕, 지지불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시나무 같은 권력
기드온은 두려워 떨지 않고, 개처럼 충직하게 전쟁에 임할 수 있는 3백명의 군사로 미디안의 13만 5천명의 연합군에 맞서 나팔과 횃불로 싸워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살아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평안을 누렸지만, 그가 죽은 후 세겜 출신의 첩에게서 얻은 아들인 아비멜렉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는 서자였기에 가족 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였고, 적개심으로 가득찬 사람이었습니다. 자신과 경쟁하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제들을 모두 죽이고 왕이 되려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외가 친척을 찾아가서 자신이 혈육임을 강조하며, 왕으로 추대해 주기를 간청합니다. 세겜사람들은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그를 도왔습니다. 외가친척들은 아비멜렉이 왕이 될 수 있도록 자금을 주었고, 그는 불량배를 고용해 다른 형제들을 살육했습니다. 유일하게 기드온의 막내였던 요담만이 살아남았고, 요담은 세겜 사람들에게 아비멜렉은 가시나무와 같은 왕이라고 선포합니다(9:7-15). 가시나무처럼 아비멜렉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찌르는 괴로움을 안겨주고, 불로 사르듯 큰 고통을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겜 사람들도 그와 다투다가, 둘 다 자멸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권력충동에 사로잡힌 아비멜렉을 가리켜 가시나무 같은 존재로 비유한 것은 권력의 본질을 너무나 잘 설명하는 듯 보입니다.
인간이 권력욕에 사로잡히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정적들을 살해합니다. 가시처럼 찌르는 것입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히면 또한 강박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요담이 세겜 사람들에게 외쳤던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어 아비멜렉은 3년간을 통치합니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이 등을 돌립니다. 이들의 배신에 분노한 아비멜렉은 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선출된 지도자가 오히려 가시나무가 될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동료로서 상생해야 할 다른 지도자들과 국민을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나라를 분열하게 하고 정지시켜 버렸습니다. 지역감정, 혈연, 지연, 학연 등 우리가 고수하는 기존의 체계의 방식으로 지도자가 세워질 때 객관적으로 지도자의 자질을 식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도 가시같은 권력충동과 지배욕에 사로잡히면 에로스로 맺어야 하는 관계성은 차단되고, 정신은 무질서와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아비멜렉은 우리 밖에도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권력충동임을 알고 잘 분별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맷돌의 심판
세겜 사람들이 배신하자, 아비멜렉은 무자비한 복수를 감행합니다. 아비멜렉을 저주하며, 가알이 아비멜렉과 맞서 싸웠지만 그는 처참히 패하고 말았습니다.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이 들로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서 매복하고 있다가 성읍사람들을 죽이고 성읍을 헐고, 소금을 뿌리며 학살했습니다. 동굴로 도망친 사람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지하동굴에 나무를 쌓아두고 불을 질러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아비멜렉이 얼마나 복수심에 불타있었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복수극을 벌이며, 데베스 지역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읍 안에 견고한 망대가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곳으로 피했습니다. 아비멜렉은 그 망대에 이르러 공격을 하려 했고, 망대문에 바짝 다가가서 불을 지르려고 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에게 던졌고, 그의 두개골이 깨졌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여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수치를 피하기 위해 젊은 병사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말하여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권력충동과 공격성에 사로잡힌 아비멜렉을 저지한 것은 낯선 여인이었습니다. 맷돌은 단순한 곡물 가공 도구를 넘어, 곡식을 갈아 음식을 만들어 풍요와 연결됩니다. 맷돌질 소리는 계속되는 번영을 의미합니다. 맷돌이 위짝과 아래짝을 통하여 생산해 내는 것은 음양의 조화이자 남녀의 결합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맷돌은 곡식을 갈아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생산과 탄생을 의미합니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맷돌이 회전하는 우주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림형제 민담의 향나무에서는 맷돌이 부정적인 모성상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성서에서도 마찬가지로 심판과 처벌의 상징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는 화가 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을 일으키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마 18:6-7)
하나님의 심판의 또다른 내용은 요한계시록 18장 6절에 등장합니다. “또 힘센 천사가 큰 맷돌과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고서 말하였습니다. 그 큰 도시 바빌론이 이렇게 큰 힘으로 던져질 터이니, 다시는 그 흔적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맷돌은 권력충동에 사로잡힌 바벨론이며, 맷돌은 반드시 심판받을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후에 보게 될 사사 삼손은 신의 비밀을 누설하고 감옥에서 연자 맷돌을 돌리게 하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권력충동에 사로잡힌 아비멜렉이 낯선 여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의 감정원리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 권력욕을 지닌 남성은 그의 감정관계에서 치명적인 위협을 받게 되고 그것이 그를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여인이 던진 맷돌은 아비멜렉이 건강하게 실현하지 못한 생명과 풍요, 창조력입니다. 위쪽과 아래쪽으로 두 개가 조화를 이룰 때 생명과 창조력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일방적이고 공격적으로 사용한 힘은 오히려 죽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오직 권력욕으로만 채우려했던 그는 창조력과 생명력의 도구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머리가 공격을 당한 것은 오직 일방적으로 지성적 합리적 방식으로 살아왔던 그의 기능을 가차없이 일격에 깨부수는 일이었습니다. 힘의 논리, 사고와 지성만을 가지고 살아온 남성들이 소위 정신의 붕괴현상처럼 공포와 불안, 염려에 시달리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비멜렉의 맷돌의 심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권력충동에 매료되거나, 일방적이고 합리적 사고, 편협한 가치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반드시 맷돌의 심판으로 머리가 깨져 정신의 죽음에 이를 수 있음을 일러줍니다. 맷돌의 심판을 통하여 우리 자신과 시대의 모습을 잘 반추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걸음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