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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야기

왕상 9장 1-9절, 10장 1-5절_ 시바여왕의 수수께끼_2026년 6월 14일

작성자김덕규|작성시간26.06.13|조회수59 목록 댓글 0

설교본문 : 왕상 91-9절, 10장 1-5절

설교제목 : 시바여왕의 수수께끼

 

결론에 대한 믿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길을 건강하게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주 대만계 미국인으로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인 젠슨 황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유명 CEO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모 방송 토크쇼에 나와서 그의 인생철학과 기업경영의 기본 원칙들을 대화하는 내용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접시 닦던 이민자 아들에서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창업하였습니다. 그는 창업 후 25년 동안 기다리며 세상을 움직여가는 AI의 선두주자가 된 것은 결론에 대한 믿음때문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수많은 위기와 힘겨운 시간에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자신이 구상한 것을 이룬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결론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으신가요? 결론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신앙의 자세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우리가 가던 길에서 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언가 삶의 궤도에서 나름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만나는 사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지극히 정성을 다하며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며 누군가가 잘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인간성을 가장 중요한 인재상으로 뽑았습니다. 그리고 방송 말미에 9살 이민자인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최선을 다하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식상한 듯하지만 그렇게 살아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계신가요? 매순간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삶을 대하고 계신가요? 바로 미래는 그런 사람에게 열려 있음을 마음에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이 있는 곳

 

솔로몬왕은 10년에 걸친 오랜 성전 건축이 마무리되자 성전 앞에 모인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향하여 큰 소리로 축복합니다(8:54-61).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하나님 찬양받으시고, 조상과 함께 하시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버리지도 포기하지 않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로 기울어져 주님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그 형편에 맞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간구하며 우리가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어서 주님의 법도를 걸으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축복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주님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새롭게 지어진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성전 봉헌식을 하였습니다. 소 이만 이천 마리, 양 십이만 마리의 제물과 곡식과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두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다음 날 백성들은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로 진심으로 기뻐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각자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8:62-66). 예배를 드린 후 이렇게 기쁨과 흐뭇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진심으로 예배를 통하여 내 감정과 정서가 주님과 교감하여 이런 즐거움으로 성전을 나선다면 그것이 예배를 통하여 누리게 되는 참 은혜일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 봉헌이 마쳐지자 주님은 다시 한번 꿈에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꿈에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에게 한 기도와 간구를 내가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내 이름을 영원토록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였다. 따라서 내 눈길과 마음이 항상 이곳에 있을 것이다. 너는 내 앞에서 네 아버지 다윗처럼 살아라. 그리하여 내게 네게 명한 것을 실천하고, 내가 네게 준 율례와 규례를 온전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지켜라(9:3-4).”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백성 앞에서 기도하고, 성전을 봉헌하며 제사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이는 자아가 하나님을 향하여 진심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그것에 대하여 반응함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심리학적으로 무의식은 의식에 태도에 반응하며 반영한다는 의미와 상응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가 우리의 꿈을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 기도와 의식적 삶에 대한 반응, 혹은 응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응답이 내가 기대하는 바가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그 예상밖의 반응을 통하여 나의 태도를 교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메시지 중에 단연 마음에 와닿는 구절은 내 눈길과 마음이 항상 이곳에 있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성전을 각종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서가 아닙니다. 성전을 값진 금으로 화려하게 치장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곳을 거룩하게 구별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인생의 왕좌에 앉아 나를 드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세상입니다. 나의 일방적 삶의 방식을 정답이라 생각하며 그 주도권을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려 고집스럽게 살고 있는 것이 오늘 개인과 집단의 모습인 듯합니다.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이 항상 내면의 성소를 지어 구별하고 그분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향해 있고, 그런 자와 함께 하고 계심을 반드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솔모몬에게 아버지 다윗처럼 살고, 너에게 명령한 것을 실천하며, 온전한 마음으로 율법을 올바르게 지키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 정도 되면 이건 거의 잔소리와 같은 수준의 반복어구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말씀을 다시 강조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한계와 취약성을 간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왕궁도, 주님의 성전도 모두 완공했고, 자기가 이루고 싶은 모든 것을 끝마쳤습니다(9:1). 나라는 다윗보다 더 부강해졌고, 안정되었습니다. 바로 이때가 인간에게는 가장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왕은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게 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삶은 권태로움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때 많은 유혹이 다가오게 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정점의 시간을 지나는 솔모몬이 가장 마음에 새겨들어야 메시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마음을 지키며 온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따라 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지어져야 할 것이 있다면 성실하게 인생의 건축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삶의 정점을 지났다면 처음 마음을 잃지 않고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나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바 여왕의 수수께끼

 

솔로몬이 엄청난 업적을 이룬 후 시바(스바) 여왕이 솔모몬의 명성을 듣고 어려운 질문으로 솔로몬을 시험하고자 솔로몬을 찾아왔습니다(10). 이런 시바여왕과 관련한 전설은 수세기를 걸치며 다양하게 전승되었습니다. 시바여왕이 자발적으로 솔로몬 왕을 찾아오는 것은 아니마가 의식과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깊은 무의식 속에 있었던 아니마가 의식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그것과 연결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식화의 작업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바여왕은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들고 솔로몬을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22개의 수수께끼를 질문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수수께끼로 질문하는 것은 원형적인 주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사사기 14장에서는 삼손의 수수께끼가 등장합니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영웅 유디슈티라(Yudhisthira)가 수수께끼를 풀어서 야크샤(야마)로부터 두 형제를 구해내는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모성신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과정이었지만, 자신의 지성을 과대평가한 오이디푸스는 모계 근친상간의 희생자가 되고 맙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열왕기상 11장에서는 솔로몬이 나이가 들면서 그의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 다른 신들을 향하게 하였고, 그로 인해 그의 마음은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아스다롯을 좇는 자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성적 입장에서 시바여왕의 수수께끼를 처리하였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오이디푸스와 유사한 운명으로 고통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모성신 중심으로 퇴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바여왕은 여성적 지혜의 인격화로 솔로몬의 성숙과 발전을 향해 나타난 아니마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에게 있어서 이런 수수께끼를 던지는 시바 여왕은 정신을 구별하는 능력을 시험하고 정화하기 위한 시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바 여왕의 입장에서는 여성의 아니무스와 의식적인 관계를 통하여 여성 원리가 인간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하여 클로져는 설명합니다.

 

여자가 아니무스와 연합함으로써 남자처럼 되는 것 대신에 그녀의 여성적 감정을 심혼과 연결시킴으로써, 아니무스의 집요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그녀는 그녀 안에 있는 남성적 특성을 받아들이고 발달시킴으로써 의식적으로 남성이 된다. 그와 동시에 이미 받아들여진 아니무스는 더 이상 그녀의 여성성을 왜곡하거나 파괴하면서, 그녀 위에 군림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 여성적이 된다.”[에드워드 에딘저, 성서와 정신, p181.]

 

시바여왕의 이야기는 상징적으로 남성의 정신 안에서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아니마가 인간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시바여왕은 한때는 변화를 필요로 하는 내용이지만 또 다른 때에는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연합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바여왕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교부들은 시바 여왕은 마리아의 예표이며, 시바여왕은 그리스도의 왕비로서의 교회에 대한 이미지로 보았습니다.

 

내면에 무의식에 남아있는 상은 변화를 필요로 하며 인간화, 의식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솔로몬에게 찾아온 시바여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의 어둠 속에 있는 여성적 원리, 여성에게는 남성적 원리가 의식화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녀가 내는 수수께끼를 지적 방식이나 호기심으로 풀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큰 위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겸손함과 진지함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어떤 것이 다가와 수수께끼를 던지고 있습니까? 그것을 겸손하게 잘 응대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서 정신적 성숙과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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