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분이 상쾌하다. 새벽까지 내려준 비가 까칠한 먼지들을 버리고 남은 자리에 자신의 체취를 남겨두고 갔다. 마치 노란 개나리가 당장에라도 얼굴을 내밀 것 같은 그런 공기가 내게 왔다.
나는 이런 공기의 인식을(사실 인식이라고 부르기에도 좀 어색하다.),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기 전의 무언가에 눌려서 밀려나는 공기를 느끼고, 다들 비가 올 것이란 걸 다 알 것으로 생각했고, 여름 소나기의 공기를 느끼던 어린 시절에는 뜨거운 공기의 시원한 냉각수가 그저 좋아서 피하지 않는 것이라 느꼈던 그 순간까지도 난 모두가 나처럼 그런 감각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 난 친구와의 대화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오늘 공기가 진짜 부드러운 것 같아. 어제까지만 해도 느끼기 싫을 정도로 까슬까슬했잖아. 그 치?"
"무슨 소리야? 공기가 무슨 수세미냐? 여튼 별 웃긴소릴 다 듣네."
나는 내친구K가 단지 표현의 차이 때문에 오해한 것이라 믿었다.
"내가 이상하게 말했나? 어제보다 공기가 훨씬 순해졌잖아. 거칠지도 않구 연유처럼 보드라운 공기잖아?"
"웬 헛소리야! 공기가 그냥 공기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 후, 나는 여러 사람에게 공기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봤고, 그중에서 공기의 느낌을 어렴풋이 표현하는 사람은 봤어도, 나처럼 공기를 완전히 '인지'하는 경우는 찾지 못했다.
나는 느꼈다. 이 감각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강한 호기심과 함께 나와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거란 믿음으로 그런 사람을 찾아다니고, 나의 감각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고자 많은 것을 느끼려 하였다.
수많은 노력과 끈질긴 인내를 통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사람의 주위를 감싸는 공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별한 분위기일 경우에 공기가 정말로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작가에게 내가 느끼는 공기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자신의 느낌을 글로 표현한 것일 뿐 공기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그런 현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게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내 주위로 남들과는 다른 매우 따스하고 보드라우면서 은은한 봄의 공기가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 공기는 항상 내 주위를 머물며, 계절이 바뀌어도, 날씨가 바뀌어도, 다른 공간에 있어도 항상 내 주위를 감싸 안아주었다. 내 주위는 그것 때문인지 항상 친구도 많았고, 많은 남자에게 고백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공기의 매력에 푹 빠져있어서, 남자를 사귀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게 된 그날.
나는 그를 보았다.
그는 끊임없이 시원하고 푸른, 그런 공기를 만들어내었다. 내가 가진 포근한 공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시원스럽고 자유로워 보이는 그런 공기를 그는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자, 갑자기 그가 만든 공기들이 점차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가 느꼈던 것일까? 그는 천천히 나에게 고개를 돌려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초면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하지만.... 너 남들과 좀....,다르네?"
그리고 그가 웃었다. 나도 웃으며 한마디 했다.
"좋은 공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