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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요한복음 11:25~27)부활주일설교

작성자해피한서광선|작성시간25.04.26|조회수43 목록 댓글 0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요한복음 11:25~27)부활주일설교

 

사람들의 관심사 가운데 가장 큰 것 가운데 하나가 건강문제 인 것 같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나라 성인 남자 셋 중의 하나는 암 환자거나 암 걸릴 확률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나이에 관계없이 암이 찾아옵니다.

그래서들 건강에 관심들이 많고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 한 두 가지는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생로병사의 비밀을 하나 보았는데 인도 강황이 소개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울금이라고 부릅니다.

인도 사람들은 거의 모든 음식에 카레 가루를 넣어 먹습니다.

심지어 차를 마실 때도 한 스푼씩 타서 마시기도 합니다.

흔히 카레가 치매예방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존 홉킨스 대학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강황이 거의 30 가지 정도의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전립선암과 성인병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이 방송 이후 사람들은 강황을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건강에 좋다면 무엇이든 먹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노화를 방지하고 질병을 극복하여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한 길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그 누구도 절대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죽음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 죽음은 극심한 절망감입니다.

본문은 오빠 나사로가 죽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상황에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극심한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나사로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부모가 없었으며,

그러기에 오빠였던 나사로가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오빠 나사로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은 것입니다.

 

더구나 성경은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모든 소망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분명히 마리아와 마르다는 극심한 상실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오라비를 잃은 데 따른 커다란 상실감이었습니다. 이러한 상실감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으면 누구나 여기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처럼 극도의 상실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9:27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고린도전서 1555절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상실감입니다.

엄청난 상실감이 순식간에 밀려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1. 죽음은 극심한 절망감입니다.

2. 죽음을 극복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마르다에게 분명히 자신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 자신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을 가리켜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이라는 말은

예수님 자신이 장차 부활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신 후에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25~26)

그러니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을 극복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선언입니다.

오늘 말씀의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인류의 역사는 죽음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문제, 곧 죽음과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길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믿으면,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우리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안겨주십니다.

 

늙고 병들어 죽게 되어도 그것은 마냥 슬퍼할 만한 일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세계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과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야 합니다.

 

1. 죽음은 극심한 절망감입니다.

2. 죽음을 극복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3. 우리는 부활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마르다가 먼저 뛰어나가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21절입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는 솔직한 감정을 예수님께 드러냅니다.

마르다의 말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만약 주님이 일찍 오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라는 말에는 원망과 불평이 섞여 있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오셨으면하는 섭섭함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병든 자도 고치신다는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늦게 왔지만 마르다는 예수님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예수님은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가 있습니다.

 

그 말이 22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는 이제라도 주님이 하시고자 하신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마르다의 말을 가만히 보면 굉장한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르다의 믿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믿음이 아니고,

한계가 있는 인간적인,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인 믿음입니다.

 

마르다의 문제는 믿는다.’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항상 압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믿는 것아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입니다.

안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한 말입니다.

지식과 정보가 기적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해했다고 다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마르다는 믿습니다.’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녀의 믿음의 기초는 이성, 합리성, 지식, 정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은 좋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기대와 희망은 있지만 결정적인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르다의 믿음에 쐐기를 박습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이것이 부활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성과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의해 흔들릴 마르다가 아닙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 식의 믿음을 끝까지 고집합니다. 24절에서 마르다가 이렇게 반응합니다.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여기에서 또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부활을 믿지만 부활은 지금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한다고 이성적으로 말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에게 희망과 기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적과 능력을 베푸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마르다는 종말에 모두 부활할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지금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이러한 구태의연하고 인간적인, 믿음의 관점을 바꾸지 않으려는 마르다에게 두 번째 쐐기를 박습니다. 25절과 26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내가 부활이요 내가 생명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네가 믿겠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믿겠냐?’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자신의 믿음을 바꾸었습니다.

27절에서 마르다가 드디어 아멘하기 시작합니다.

27절을 보겠습니다.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주여 그러하외이다.’아멘이라는 뜻입니다.

아멘그렇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예수님 말씀을 믿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부활이십니다.

주님이 생명이십니다.

주님은 기적을 지금 베풀 수가 있습니다.

마르다가 말을 바꾼 것입니다.

믿음이 바뀌면 언어가 바뀝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대충 믿으면 안 됩니다.

상식적으로 믿으면 안 됩니다.

39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아직까지도 마르다는 나사로가 산다는 것을 확실히 믿지 못했습니다. 죽은지가 나흘이지나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도 살릴 수 있습니까?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4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우리의 믿음이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부활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변해야 합니다.

 

믿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메시아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 하셨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2차대전(1945728) 때에 미국의 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호는 비밀 임무를 수행한 후 태평양을 건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첩보를 입수한 일본의 잠수함이 습격해 어뢰를 쐈고 무방비에 있던 인디애나폴리스호는 단박에 침몰됐습니다.

300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고 남은 900명의 병사들은 배의 잔해들을 붙잡고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함장인 찰스는 병사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찾았지만 사고 4일 뒤에야 구조대가 도착했습니다.

4일 동안 추위와 외로움, 그리고 상어떼의 공격으로 600명이 죽었습니다. 생존자 중 316명 중의 한 명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사투를 벌이던 처참했던 그 순간 무신론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기 위해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습니다.”

죽음 앞의 인간은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지금 실패와 좌절, 죽음의 자리에 있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는 신앙을 졸업하기로 결단하십시오.

믿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을 믿습니다.’ 아멘.

이런 고백 위에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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