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헤 받은 자(고전 15:9-11)26.06.14.주일설교
칭찬은 상대의 에너지를 높이는 효과적인 수단이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최고의 기술입니다.
그러나 칭찬도 본질을 잃어버리면 도리어 비난이 됩니다.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이 있고 기분을 좋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 든 어르신께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라는 칭찬은 듣기에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고움은 사라지고 늙음만 남게 됩니다. 칭찬은 기술입니다.
세계적인 소설 ‘뿌리’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사무실에는 아주 기묘한 그림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높은 담장 꼭대기에 위태롭게 올라가 있는 거북이 그림이었습니다.
방문객들이 의아해하며 “왜 저런 이상한 그림을 걸어두었습니까?”라고 물을 때마다 그는 늘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거북이를 보십시오.
이 느린 녀석이 저 높은 담 위에 올라갈 수 있었을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누군가가 저 위에 올려놓아 준 것입니다.
제가 바로 이 거북이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 나의 명성과 삶은 내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거북이 같은 나를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로 올리신 것입니다.
나는 교만해질 때마다 이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가 뭔가를 이루었다면 그건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과 은혜의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고린도교회에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 통역을 하는 사람, 병을 고치는 사람, 귀신을 내 쫒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 각양각색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은 교회니 얼마나 좋은 교회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주를 위해 충성하지는 않고, 자기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높고 낮음을 재고 크고 작음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끄러워졌습니다. 파당이 생겼습니다.
교회가 나뉘어서 논쟁이 되고 그래서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방언을 하고 통역의 은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13장에서 사랑을 이야기 하고 나서 15장에 와서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은혜라는 단어를 세 번 사용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구원을 주신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받은 은혜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신이 받은 은혜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9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교회를 핍박한 것을 생각하면 사도라 칭함 받는 것 자체가 거북하고 송구스럽다는 것입니다. 사도라 칭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도 사도라 칭함을 받게 하셨으니 가장 작은 사도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가 너무 크다고 10절에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요.
주의 일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여러분의 믿음을 표현합시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 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 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 3:20).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멘.
1. 은혜 받은 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9절 말씀을 보면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과를 다 잊어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내가 허물 많은 사람인데, 나는 허물이 많았던 사람인데·····' 하면서 항상 겸손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은 교회의 지도자요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군인 사도이지만 자기의 과거는 교회를 핍박하던 죄인이라고 솔직하게 고백을 하면서 겸손해하고 있습니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주님 앞에 주님의 은헤에 감사하며 불평과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 말씀에 보면 히스기야가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응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를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려고 했습니다. 곧 진노를 내리려고 하는데 히스기야 왕이 스스로 마음이 교만함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왕의 생전에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다행히 히스기야 왕이 깨달아 하나님의 은혜를 안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이 중요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항상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1. 은혜 받은 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2. 은혜 받은 자는 감사해야 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우리는 바울처럼 "오늘의 내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라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휘테라는 설교가가 있습니다.
그는 매주일 설교할 때마다 그 주에 있었던 일 중에 꼭 한가지씩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기도를 드리렸습니다.
한 번은 그 지역에 큰 태풍이 몰아쳐서 많은 피해를 입고 최악의 한 주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자 성도들은 오늘 아침만은 목사님이 감사할 조건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 날 아침에도 여전히 감사기도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감사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 주간과 같은 최악의 재난이 항상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현대인들은 가장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는 풍요로움과 편리함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늘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꼭 현재 없는 것을 찾아서 불평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어진 삶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바로 감사에서 시작됩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1위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놀라운 은혜)입니다.
이 찬송은 노예선 선장이였던 존 뉴턴이 만든 찬송가입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존 뉴턴(John Newton)은 일곱 살 때 어머니가 폐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해군에 입대했는데, 엄격한 규율을 견디다 못해 결국 탈영하여 군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청년 뉴턴은 노예 무역선에 올랐습니다. 바다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그였기에 재능을 발휘해서 결국 노예선 선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출세하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노예선에 태워 노예들을 짐승처럼 다루고 비인간적으로 노예를 혹독하게 다뤘습니다. 그야말로 무자비한 인간이 된 겁니다.
그에게서 그 어떤 자비나 관용은 없었습니다.
존 뉴턴의 이름은 흑인 노예에겐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아프리카로 가는 긴 시간을 항해하는 동안 배 안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도중 노예선이 대서양에서 거대한 폭풍을 만나서 파선직전까지 갔다 기적적으로 배가 침몰 않고 살아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뉴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살려줬다고 굳게 믿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존 뉴턴은 노예 무역선의 항해를 끝으로 노예선에 내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기로 다짐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은혜 (Amazing grace) 입니다.
존 뉴턴은 후에 목사가 됩니다. 뉴턴 목사가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뉴턴은 자신을 돌아보며 "놀라운 주님의 은혜"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설
교를 준비하던 그는 죄인 중에 죄인인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설교의 마무리를 위해 그는 시 한 편을 썼습니다.
바로 전 세계 그리스도인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영어로는 Amazing grace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겁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 찬송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지난 삶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의 삶을 감사하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은 잔혹한 노예선의 선장도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 누구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은 없습니다.
놀라운 은혜 (Amazing grace)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항상 겸손하게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1. 은혜 받은 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2. 은혜 받은 자는 감사해야 합니다.
3. 은혜 받은 자는 충성해야 합니다.
10절하∼11절입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게 다른 사도보다 더 수고 하였다고 했습니다.
‘충성’이란 믿을만한 사람, 신실한 사람, faithful,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 변하지 않는 사람, 표준새번역에서는 신실함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일 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맡겨진일에 신실하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실함이란, 내 기분과 형편에 따라 요동치는 열심이 아니라, "나를 부르신 주님을 신뢰함으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혹은 눈물 나는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나의 자리를 지켜내는 거룩한 끈기"입니다.
잰슨황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창업자이며 현재 최고 경영자입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개막하고 이끄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입니다.
잰슨 황이 유퀴즈에 나와서 한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 접시를 닦고,
화장실 청소를 했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얼만큼 최선을 다했는냐 100%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신실하게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시편 116:12-14에서 다윗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도망 다녀야했던 그 시간이, 분노와 억울함, 절망감과 자괴감으로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믿음의 고백으로 자신의 인생을 채우고, 감사로 채웠습니다.
하나님을 오히려 더욱 사모하는 믿음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답답함의 시간에도 그는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고 왕궁에 세워졌는데 그가 어찌 잊겠습니까? 어떻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다 보답할 수 있을까?
다윗과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주님께 충성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항상 겸손하게 감사하며 충성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나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