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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춤 이야기

조선의 기생들

작성자난꽃부리|작성시간12.12.01|조회수253 목록 댓글 0

 

드디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조선 기생이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900년대 초 사진기가 일본에서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희귀한 사진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 가장 현실감 있게 잘 찍은 기생사진들을 살펴보고, 미인에 관한 선조들의 혜안도 살펴봅니다.

베일 속에 감춰졌던 평양기생 장연홍(張蓮紅)

장연홍은 1911, 1914년생으로 추측되는 조선 최고의 미인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화초기생 즉 모델기생입니다. 기생은 두부류로 나누어 부르는데, 그냥 쳐다 보기만 해도 술맛이 동한다는 화초기생과 창이나 기악처럼 예능 또는 시답을 나눌수 있는 학습기생 곧 예능기생이 있습니다.

장연홍의 고향은 경성으로 유복한 가문의 몰락으로 14세에 평양 기생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기생은 평양으로' 라 할만큼 평양은 기생들의 동경의 무대였습니다. 그 이후 한양에서 짧은 기생생활을 했는데 남겨진 기록이 전무합니다.

한양에서의 고단한 기생생활을 선배언니에게 보낸 편지글이 구전되어 오는데, 그 내용은 정조를 지켜야 되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베어 있습니다. 기생이라 해서 함부로 아무에게나 몸을 허락치 않고 순정을 간직하며, 언젠가 만날지 모를 진실한 자신의 님과 해후를 기다리며 기약없는 고단한 삶을 영위하였다고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20세 전후 1930년경 유학길에 오른 후 연락이 두절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선최고의 미인으로 불렸던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지요.

사진에 이름이 새겨진 것으로보아 당시에 명함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좌측은 일본언론에 소개 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음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그녀가 속해있던 권번에서 처음 선보일 때 구름같이 많은 사내들이 장연홍에게 연심을 품었다고 전해집니다. 꿈을 꾸듯 몽환적인 눈매와 지극한 표정에 사내들을 그녀를 잊지 못했겠죠. 또한 그녀의 미소는 가히 '살인미소' 그 자체였다 하니 살짝 벌려 웃는 그의 입을 살펴 봅니다. 토끼처럼 앞니 두개는 선명하나, 덧니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가지런해 보이지는 않군요.

한중일 삼국의 절세미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단발머리를 유행시킨 단발미인 장연홍

그녀의 기록은 당시 명함으로 사용했던 사진 몇 장이 전부입니다. 마치 과거의 황진이가 환생하여 자신의 모습을 알려 주려는듯 사진 몇 장 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1930년대 대표기생 '현매홍과 김옥엽'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는 미니스커트로 바꿔 입으면 지금의 모델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인 이 들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기생 현매홍과 김옥엽입니다.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현매홍과 김옥엽은 서울 상경 후 한성권번과 조선권번에 적을 두며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현매홍은 가곡, 가사, 시조에 능통했으며 기생조합 최초의 잡지인 '장한' 편집인 중 한명으로 활동할 정도로 뛰어난 감각을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옥엽은 초창기에는 궁중무용과 서도잡가와 경기잡가 그리고 30년대 중반부터는 가곡, 가사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김옥엽의 '수심가'는 워낙 뛰어나 당시 장안 최고의 인기를 누린 연예인중 한 명이었으며 문학가 김동환과의 로맨스는 인구에 두고두고 회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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