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곡산성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7호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초곡리산1번지
초곡리는 풀이 많이 난다고 푸실이라 하고 초곡산성 아래능선따라 있는 팔장군묘와 장등에서 도굴된 유물과 많은 사찰과 주거 흔적들을 볼 때 삼국시대에도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초곡산성은 둘레 약1530m의 석성으로 삼국시대에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죽고 과녀들이 주축이 되어 성을 쌓고 적을 막았기 때문에 과녀성(寡女城)이라 한다(“현풍읍지에 三國相爭時 一寡女奮義 築城禦賊兵之”이라 기재한 읍지와 일과녀의 일자가 없는 읍지도 있음) 성곽은 산마루 평면에 동북 남서가 긴 타원형의 평면형태를 하고 북쪽과 서쪽의 경사가 급한 쪽으로는 자연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성벽은 평할석으로 외면을 수직에 가깝도록 하여 높이 6~7m,성폭 3m 내외로 쌓았는데 현재는 몇군데를 제외하고는 붕괴되어 있다.
임진왜란때 홍의장군 곽재우의 군사들이 푸실골 뒷산에 와와산성(臥蛙山城:과녀성 초곡산성의 다른 이름)이란 성을 고치고 와와성에서 대니산과 줄을 이어 허수아비 장군을 매달아 풍운 조화로 왕래하게 했다.왜병은 겁을 먹고 있다가 와와성을 공격하면서 산이 개구리가 뛰는 형국을 한 산성이므로 원래 뒤가 낮고 앞이 높으므로 뒤로 침입했으면 성공했을텐대 왜병은 그것을 모르고 앞으로 침입했다가 대 실패를 하고 현풍 성하리 수문진 옆 서산성에 성문을 굳게 닫고 움츠리고 있는데 오히려 곽의병장은 날랜 의병과 피난민을 동원, 횃불을 들게하고 징, 꾕과리,북을 동원하여 치기도 하여 위협을 가하여 왜병을 현풍에서 몰아냈다고 전한다. ( 출처-달성마을지)
초곡산성은 삼국시대 초기엔 신라와 가야의 접전지였고 조선시대엔 현풍일대 백성들의 피난처이자 왜군과의 접전지로 오랜 세월동안 이 지역을 지켜준 중요한 요충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곡산성에서 능선따라 서쪽으로 내려오면 팔장수 묘가 있고 그곳에서 북쪽 초곡리 쪽으로 낮은 진등이 길게 내려왔는데 이 진등의 약 100여기가 넘는 많은 고대의 무덤 하나하나에 가야시대 유물이 도굴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6톤트럭 7~8대의 많은 유물이 도굴되어 가야시대 지역문화 연구에 걸림돌이 되었다.
달성군 옥포면 김흥리에서 유가면 양리로 통하는 임도를 따라가면 고갯마루에 초곡산성표지판이 나옵니다.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옥포면 김흥리 멀리 옥연지가 보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양리쪽으로 내려오면 초곡산성 들머리 표지판이 나옵니다 여기부터 소나무숲길이 3킬로미터 이어집니다.솔향기에 취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여기부터 산성이 시작됩니다.오른쪽은 성의 북쪽이고 왼쪽은 남쪽입니다.일단 산성의 북쪽으로 길을 정합니다.
보기엔 괜찮은 갈대밭이지만 푸실푸실 진짜 풀이 많습니다.갈대속에 산딸기 가시밭길입니다.고행의 연속입니다.
저 아래는 달성군 유가면 일대, 상전벽해를 실감할 테크노폴리스 개발지구입니다.
성의 북쪽으로 자연지물을 이용한 성벽입니다.
성의 남서쪽 둘레로 무너진 성벽위에 풀이 우거져 잘 보이지않습니다.참으로 풀이 많습니다.
여기부터 성의 남쪽둘레로 원형보존이 가장 잘 된 곳입니다.과녀들이 쌓아서 그런지 돌들이 대체로 크기가 작습니다.
남쪽둘레 앞으로 잣나무들이 가로수 처럼 줄지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성곽위로 다시 풀이 우거져 있습니다.
사람이 살았을 듯한 집터가 있습니다.
집터를 지나소나무 숲길이 나오고 숲속의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초곡산성에서 조망되는 비슬산의 모습입니다.
비슬산 아래 유가사와 수도암 전경입니다
봄에 참꽃군락지로 분홍빛이던 산이 가을 단풍으로 장관을 이룹니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고령군 개진면과 달성군 현풍면 낙동강 구간입니다.
달성군 유가면 너머로 보이는 창녕군 들판입니다.
구지면 대니산에서 이륙한 행글라이더가 초곡산성 상공에 포착되었습니다.
팔장수무덤(양리 고분군)입니다.
산 속에서는 산의 광경을 보기 어렵다.아름다운 비슬산 바라보며 작지만 유서깊은 초곡산성 걸어가는 숲길에 홍의장군의 함성이 서려있고,푸실골 풀섶 곳곳에 여인네들의 절규가 베어있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