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듣고 감동된 족장들과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다시 말씀을 자세히 이해하고 싶어 에스라에게 왔다.
발견된 말씀 속에서 그들은 7월 14일 초막절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최대 규모의 초막절을 지킨다.
백성들을 모두 초막을 만들어 거했고,
초막절 기간동안 에스라를 통해 말씀이 계속 낭독되었고,
7일 이후에는 성회(예배)가 드려졌다.
부흥은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것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8장의 앞부분에서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말씀을 더 알기 원하는 마음을 가졌다. 이것이 참된 부흥이 아닐까?
그 마음은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그들은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최대의 초막절을 지켰다.
놀라운 사실은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로,
백성 전체가 초막절에 초막을 지어본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각 지파별로 흩어져 살았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초막을 지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기만 하다.
광야 시대를 마치고 가나안 정착 이후 농경사회와 정착 시대에 살면서
초막을 짓고 사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에스라와 그의 백성들의 순종과 헌신이
정말로 대단했던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사방에 적들이 깔려 있는데 초막을 짓고
그곳에 칠일을 머물며 주님의 날을 지켰다니.....
이들에게는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52일만에 성벽을 완성하고, 7일동안 초막절을 지키고....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한 일들이요,
하나님 수준의 일들을 경험하고 살았던 것 같다.
초막절 이후에 드려진 예배는 정말로 축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죄인들의 회개 잔치가 아닌 순종한 삶들이 모여 드린 예배였기 때문이다.
부흥을 경험하며 살고 싶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소원이 생기는 삶,
그로 말미암아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래서 주님의 일들이 이뤄지는 삶!
그 부흥을 내 삶 속에 경험하고,
케냐 땅에서 경험하며 살고 싶다.
그래서 참된 예배가 드려지는 부흥을 경험하고 싶다.
주님! 주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주님! 부흥케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예배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지금은 엘리야때처럼
주 말씀이 선포되고
또 주의 종 모세의 때와 같이 언약이 선포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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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의 환상처럼 마른 뼈가 일어나며
또 주의 종 다윗의 때와 같이
예배가 회복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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