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모두가 복음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다.
그러나 그 노선과 방향을 다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부름 받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반드시 고수해야할 사명의 내용이 있고
때로는 서로 양보하고 연합하고 협력해야할 사명의 내용이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오늘 말씀의 사도 바울이 좋은 모범인 것 같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살기 위해 유대교나 율법주의에 대해 강하게 저항해야 했다.
디도에 대해 할례를 요구하는 것을 반대하고
이방 도시들을 고집한 것은
그의 부르심과 사명이 이방인의 사도이기 때문이었다.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나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은 직접적인 복음은 아니라 할지라도
협력을 위해 함께 애썼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다.
그러나 그 복음을 어디에서 누구에게 전할지는 다를 수 있다.
같은 케냐지만 종족마다 섬기는 선교사의 사명이 다르고,
한인을 상대하는가 케냐 사람들을 상대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복음의 협력자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연합할 수 있다.
자기 방식을 고수하고 다른 방식을 거부하는 것은 이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조건 나의 부르심 아닌 일들에 무조건 개방적인 것도 어리석다.
주님께로 케냐로 불러주셨다.
한인이 아닌 케냔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래서 그들을 섬기기 위한 삶의 방식을 더 많이 배워 나가야 한다.
한인들 사회 속에 묻혀 사는 것은 부르심과 어긋나는 것 같다.
그러나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 복음은 아니지만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에는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