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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갈라디아서 3장 1-9절)

작성자전용범|작성시간10.06.18|조회수49 목록 댓글 0

구원은 분명한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님의 역사다.

구원을 경험하는 순간부터 그 인생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 은혜를 지속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적은 않은 경우, 오늘 말씀처럼 성령님으로 시작한 삶이 육신의 욕심을 따라 마칠 수도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무서운 것은 그렇게 육신의 정욕, 다른 복음을 따르면서도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는데 있는 것 같다.

그런 경우 결과적으로 고난, 수고가 헛될 뿐만 아니라

내가 왜 고난을 받고 있는지 잊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는 복음과 아무 관계없이 자신을 위해 수고 하면서도

내가 주를 위해 목숨까지 던질 것처럼 살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러나 실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은혜가 없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아브라함이 왜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사는 내게 좋은 모범이 되는지 다시 묵상해 보았다.

그는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 받는 인물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이 성취된 위대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성취된 일들이다.

그의 앞에는 황량한 광야와 척박한 유목생활 뿐이었다.

그가 볼 수 있었던 믿음의 결실이라고는 늦둥이 이삭 아이 하나뿐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고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벌어진 일들이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사실상 아무 약속의 성취도 없었다. 땅도, 큰 자손도, 열방의 복도...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 들였다.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삶을 바라며 오늘을 살았고,

어떤 행위를 통해 성취하려기보다는 그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들였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것을 그의 의로 여겨 주셨다.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지켜 살아가는 길은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길뿐이다.

헛된 믿음의 허상, 복 받은 아브라함을 보고 동경하며

뭔가 성취해 보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 주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것이 참된 믿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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