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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일기장

나는 누구인가?

작성자일휴|작성시간15.09.18|조회수140 목록 댓글 3

 

나는 누구인가?

 

나는 몸(육체)인가?

몸은 물질이다. 물질은 사고능력이 없다

 

나는 마음인가?

마음은 대상없이 스스로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작용만 할 뿐이다.

대상이 일어났다 사라질 때 그곳에 마음이 같이 한다.

 

나는 생각인가?

생각은 생각을 인지하는 마음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나라고 할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주체)라는 명칭은 관념이다. 명사다

관념은 명사다. 하지만 삶은 동사다

빠라마타는 동사다. 진행형이다. 보이고, 들리고....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

동사를 명사로 한정 지은 것 자체가 오류다

 

그렇다면 이 뿌리깊은 나라는 의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일단, 사회적 약속인 것 같다.

명칭은 임의로 주어진 것이다.

임의로 주어진 약속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가짜가 진짜가 된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일어났다

내(나) 마음이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안하다는 느낌이 있고 느낌을 아는 마음이 있다

그전엔 불안하다는 느낌이 일어나게 만든 마음의 작용(작용은 사람이 아니다.)이 있다.

   

불안한 느낌이 일어났고, 거의 동시에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 이전에 이 느낌은 좋지 않다는 견해가 자리잡고 있었던 거다.

즉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이 프로그래밍을 풀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이선생님”하고 존칭을 불러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만약 “어이 이씨”하고 하대 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소리를 소리로 이해하지 못하고,

청각기관에 감각접촉이 일어났을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념화의 틀에 갇여, 관념화 프로그래밍 된 것이다.

지금 이순간도 누군가 “어이 이씨”하고 부르면 기분이 나빠질 것이다.

조건화 된 것이다.

아직도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부처님 교법에서 살펴보면

들뜨거나 불안정된 마음(불순한 마음, 혼탁된 마음 혹은 탐진치의 마음) 상태에서는

실체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없고,

사띠, 사마디, 지혜가 있어야 실체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한번 사띠, 사마디, 지혜가 있었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이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상태를 수년 혹은 수십년 동안 실체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생길때까지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너무 어렵다.(하지만 여기까지 온 사람들도 행운아다. 전세계에서 쉐우민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그래서 신심(믿음), 위리야(노력)가 오력의 맨 앞에 있고

부처님께서는 그토록 방일하지 마라, 정진하라고 끊임없이 강조하신다.

   

알고, 알고 또 알고 아는 상태를 끊임없이 지속시키는 것

지속하는 것, 지속하는 것, 유지하는 것, 유지하는 것

이것이 열쇠다.

 

사야도께서 말씀하셨다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은 꾸준히 중단없이 수행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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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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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시나브로 | 작성시간 15.09.18 _()_
  • 작성자빤냐 | 작성시간 15.09.18 사두사두사두
  • 작성자파란하늘 | 작성시간 15.09.19 사두사두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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