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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종이의 안쪽을 걸어요 / 정상미

작성자이명숙|작성시간24.08.27|조회수50 목록 댓글 0

종이의 안쪽을 걸어요

정상미


   소설을 읽는 밤
   잠깐 달래고 가는 게 어때요?

   종이의 감정을 따라가면 그들의 처음이 궁금해져요 종이가 활자를 입고 더러 그림을 걸치고 윙크를 날리면 먼 곳의 나무 향이 걸어나와요 종이나라로 가는 길은 보루네오 열대우림행 티켓이 필요해요

   입국장에 들어서면 나이테 세관원이 동그란 미소로 맞아줍니다 그녀의 얼굴엔 늘 물기가 묻어 있어요. 꼼꼼하게 짐을 검사하는 이는 커다란 나무에 말 가웃 거름을 보태던 코끼리 총각이죠 그는 기다란 코로 짐들을 뒤적뒤적 간간이 코울음을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아요 친절한 원숭이 기사는 택시를 몰며 저 나무가 자기 집이라 자랑하죠

   우림으로 가는 길은 몰이해로 질척거리죠 햇빛의 옹이가 간신히 우림의 정문을 찾아가요 그때 비단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방문객들을 맞이하죠 그의 혀는 반가울 때 갈라져요

   책을 읽다가 보루네오국을 들락거릴 때 나무의 속살이 만져집니다 간지럽다고 종이의 눈이 까르르,

   누웠던 소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어요


ㅡ계간 《시인시대》(202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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