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고지에 핀 산나리꽃
김술곤
순둥이 암소 같이 돌아누운 능선 쯤에 유난히 산나리꽃 붉게 붉게 흐드러져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서라 서라 외치네
암구호를 잊었다 흠칫하고 본 순간 깨알처럼 적어놓은 부치지 못한 편지 병사의 눈물 자국이 예 있는 줄 몰랐네
포성 울던 그 많은 밤 별무더기 불러모아 부모님 사랑해요 미숙아 보고 싶다 그렇게 촉촉한 사연 점점이 박힌 글자
누가 이 통점을 기억하고 만져주리 산나리꽃 장총 들고 그날의 불 뿜는다 이름도 군번도 몰라 불러 볼 수 없는 사람
숨 막히게 흐른 세월 훌쩍 넘은 반세기 아이들은 다 자라서 일터로 나가고 내 귀는 먼 산 어디쯤 바람 소릴 듣네요
《나래시조》201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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