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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영섭♡

[심영섭입니다]그 모든 최후를 위하여.. 각자는 각자의 죽음을 맞는다.

작성자Youngseop Sim|작성시간05.02.15|조회수300 목록 댓글 2
지난 한 달 자그만치 세 명의 대통령이 각각의 최후를 맞았다.

박정희의 마지막 날은 유흥으로 시작해 암살로 끝을 맺었고
히틀러의 마지막 날은 휘몰아치는 폭탄 세례로 시작해 자살로 끝을 맺었으며,
미테랑의 마지막 날은 정적으로 시작해 자연사로 끝이 난다.

그때 그 사람들,
몰락,
말년의 미테랑

한 달 간 세 명의 대통령의 최후의 시간에 관한 영화를 보았다.

각각의 영화는 한국에서 독일에서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영화 제목들이다.


베를린에서 본 가장 흡인력 있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몰락이었다. 히틀러의 생애 며칠간을 다루는 이 영화는,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그렸다 해서 개봉 시부터 화제가 되었고 금번 아카데미에 독일 영화가 내던진 도전장이었던 작품이었다.

히틀러를 포함하는 괴벨스와 제 삼제국의 최후의 날을 다룬 이 영화에서, 히틀러는 아이들의 볼을 꼬집고 부하들의 항복에는 분노하는 인간으로 등장한다. 더 이상의 괴물이 아니라.

(우습게도 위의 세 영화는 모두다 대통령이 아니라 인간을 그려냈다는 주장을 한다. )

당초 생각한 것보다 몰락은 히틀러를 옹호한다기 보다 히틀러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데 더 주력하고 있었다. 그녀의 정부였던 에바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15년간 알았으나 도저히 알 수 없는 분'이라고. '자기 앞에서는 개와 채식 이야기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그러자 이 영화의 화자이자 당시 히틀러를 사모했던 20살의 여 비서는 그말에 이렇게 응답한다. ' 무척이나 사려 깊지만 잔인한 말들을 토해낼 때면 바로 그 예의 지도자가 된다고'

히틀러는 독일의 앞날도 걱정하지만 그 못지 않게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고통없이 자살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제 삼 제국의 몰락은 히틀러의 자살을 축으로 전염병처럼 돌림병처럼 번진 자살과 파멸을 두 시간 가까이 광시곡 풍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제 2차 대전은 거대한 전쟁의 신이 끊임없이 죽음의 낫을 휘두르는 광기의 망나니의 춤사위과 같아 보인다. 특히 괴벨스와 그의 부인이 자신의 아이들을 수면제로 잠들게 한 후, 하나하나 죽이는 장면은 죽음의 춤 사위가 그 어느 낫알도 비켜가지 않음을 여실히 절감하게 했다.

영화는 그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제 삼 제국에 절대 충성하던 자들이 자신의 본능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낱낱이 밝혀준다.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믿은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제 삼 제국을 위해 충성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나 바로 몰락에 뒤 이어 상영한 영화가 바로 소피 숄이었다.

소피 숄은 일종의 독일의 유관순 같은 인물로, 백장미 단을 만들어 오빠인 한스 숄과 함께 반나치 운동을 한 뮌헨의 여대생이었다. 반나찌 유인물을 뿌리다 잡혀 정확히 일 주일만에 사형당한, 사형 판결이 내려진 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22살의 여자. 오빠와 동생이 한 날 한시에 죽었다.

소피숄- 최후의 날은 히틀러의 서슬퍼런 공포 정치가 더욱더 기승을 부렸던 1943년 2월 그날의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을 묵묵히 다룬다.

몰락이 전쟁의 한 가운데서 베를린 시민의 고통과 히틀러의 광기와 함께 한다면 소피 숄은 철저히 그녀의 용기와 신념, 그리고 ss 의 심문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을 지켜내려는 그녀의 개인적인 노력에 맞추어져 있다. 그만큼 객관적인 시선이 분명한 영화였다.

소피는 정신박약인 아이들을 살해한 히틀러 정권의 비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형선고의 그 순간에도 재판장을 쏘아 보며 언젠가 당신이 바로 내가 섰던 자리에 서 있게 될 것이라고 외친다. 그녀의 패기는 베를린 영화제가 선택한 모범답안이었으리라.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감동은 묵직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제에 환타지는 없는 것이다. 웃음도.. 그러기에는 아직 이 독일이란 땅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이 말에 귀를 귀울여 보자.

몰락의 마지막, 히틀러의 전직 여비서가 살아 남은 그녀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소피 숄과 나는 같은 해에 태어났다. 내가 히틀러 밑에서 일하던 바로 그 해에 그녀는 학생운동을 하다 처형당했다. 후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젊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녀의 고백은 당신에게 내게 역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히틀러와 소피 숄은 이제 나란히 베를린 영화제를 장식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도 그때 그 사람들이 나왔으니 언젠가는 그 때 죽어간 나의 친구들 이야기도 스크린에 등장할 것이다. 분신하고.. 고문당하고.. 학교에서 쫓겨났던.

나는 역사를 위해 아무 일도 한 것이 없다.

젊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모든 최후를 위하여..

각자는 각자의 죽음을 맞는다.

그날이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죽음이 그들에게 찾아온 다는 점에서 여전히

인간은 공평하다.

선택하거나 남는 것은 '이름'뿐이다.


- 베를린에서 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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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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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kysleeping | 작성시간 05.02.15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젊음을 써야겠네요
  • 작성자東方不敗 | 작성시간 05.02.15 날짜: 2005/02/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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