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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섭님 글(*)

[기타][인터뷰] 소녀와 소년 사랑했노라 열렬히 (2006.09.01)

작성자무비홀릭|작성시간07.10.16|조회수202 목록 댓글 0

[느티나무] 2006.09.01

 

 

[부부이야기] 소녀와 소년, 사랑했노라 열렬히...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심영섭=영화평론가' 그것이 전부인줄 알았다. 그녀의 책 <대한민국에서 여성 평론가로 산다는 것>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일단 심영섭은 대구 사이버대학 교수이자 '사이'의 대표였다. '정말 바쁘겠다' 싶었다. 이어서 '엄마' 그리고 '아내' 까지가 그녀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땐 감동했다. '선입견' 녀석이 나가 떨어진 순간이었다. 평론가로 유명했고 그만큼 영향력 있는 비평으로 인상 깊었기에 나도 모르게 '일하는, 아니 일만할 것같은...' 이라고 그어버린거다. 엄마인 심영섭을 만나자. 아내인 심영섭을 만나자. 한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를 당장 만나자. 그리고 물어보자. 당신의 사랑은 어떤 영화냐고.

 

심영섭, 남완석 부부. 중년의 그들에게 '소녀와 소년'이라는 제목을 붙이고는 썩 마음에 든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 사랑을 얘기할 땐 순수한 소녀와 소년, 딱 그 모습뿐이었다. 서른이 넘어 한 지각 연애라지만 그때도 역시 소녀와 소년이었다. 따질 줄 몰랐고 비교할 줄 몰랐고 마냥 행복하고 깊은 사랑을 느꼈다. 그 때의 기억은 아름답고, 여전히 좋은 비타민이다. 그 비타민으로 부부는 건강하다.

 

남편이 쓴 청혼의 편지에 다음과 같은 말이 결국 내 마음을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 "당신과 내가 함께할 삶은 결국 이인삼각이란 생각이 들어요. 서로에게 몸과 마음을 의지하고 느리지만 쉬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삶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왔기에 내 삶은 의미롭고 충분히 좋았다고..."

 

청혼을 받고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예식장, 턱시도, 웨딩드레스는 없었다. 반지를 교환했고 편지를 낭독하며 부부가 됐음을 선언했다. 두 사람 모두 재혼이었고 예식의 절차나 형식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혼은 분명 아픔을 주었겠지만 오히려 좋은 가르침으로 남았다. 첫 번째 결혼으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겐 상처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서로 존중하고, 더 큰 사랑을 보내려 노력한다. 상대방의 그림자를 보듬어 안는 것. 그것이 결혼이라고 말한다.

 

이즈음 나는 스스로 '남편 중독증' 이라 부른다. 알코올이나 두통약처럼 남편은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중 하나였는데, 그 셋 모두는 잠 못 드는 밤이 선사하는 불안이라는 지긋지긋한 느낌을 조금이라도 단축시켜주었다. 게다가 나는 '자기' 라든가 '우리 집 양반' 혹은 '그 사람' 이란 호칭 대신 꼭 '남편' 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변호사나 의사 아들 자랑을 하는 중년 여인처럼 남편이란 말을 발음할 때 풍기는 자랑스러움을 스스로 듣노라면 어느덧 나는 세상에서 제 혼자 남편을 가진 여자처럼 흥겨워진다.

 

그녀가 남편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며 밑줄을 친다. 어떤 사람일까? 심영섭을 '평안'으로 이끈 주인공은 누구일까. 책에 실린 흑백사진이 궁금증을 달래주긴 했다. 그러나 더 감사하게도 그녀는 '남편'을 불러 왜 그가 '필수품' 인지 확인시켜주었다. '제과점에서 파는 하트 모양의 초콜릿 상자처럼 생긴 턱선하고는 아주 다른. 두루뭉슬한 턱'을 지녔다는 글에서 언든 이미지 덕분인지는 몰라도 남편 남완석 교수(우석대학교 연극영화학과)는 초겨울에 새로 꺼내 덮은 솜이불의 부드러움과 닮았다. 하루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다가 '당연한 일에 고맙다고 하는 게 어딨냐' 는 말만 들었다는 아내. 근데 어쩔 수 없다. 이 남자. 참 고맙다.

 

남편은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주욱 내 머리를 감겨주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버전 가타은 낭만 버전은 아니지마 적어도 <영자의 전성시대> 버전 정도로 시원하게(<영자의 전성시대>에 보면 한 팔을 잃은 영자를 때밀이 철수가 목욕시켜준다.) 그것은 내가 남편과 붙어살아야 할 1,053개의 이유 중 열 번째 안에 드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가 '남편과 붙어살아야 할 1,053개의 이유'만 다 입수하면 이번 기사는 끝나겠는걸 싶었다. 하여 1,053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물어봤다. "1,053개의 리스트가 정말 있나요?" 라고. 역시 웃는다. 그 숫자는 그만큼 많다는 상징이었다. 같이 살아야 할 이유는 사실 너무나 간단하게 요약된다.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 안의 내가 치유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곳이기에 붙어살아야 한다. 아, 또 중요한 한 가지. 그가 발마사지를 끝내주게 잘하기 때문이다.

 

To My man 석 (2001년 8월 3일 결혼식 전날 쓴 편지)

당신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깊은 바다 물같이 따뜻한 당신의 손과 지층이 두껍고 부지런한 당신의 발과 둥근 달을 삼킨 부드러운 활 같은 당신의 눈을 떠올리면 내 당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의 삶 위에 내 삶을 포개었을 때, 나는 어디서나 쉴 수 있는 의지를 품었습니다. 아침에 당신의 머리칼을 쓰다듬을 때, 나는 밀밭의 바람에 몸을 내어 맡깁니다. 당신이 내 안에 들어 올 때, 나는 매 순간 발자국을 쿵쿵거리며 집에 오는 당신을 영접하지요. 당신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을 허락한 운명에 얼마나 감사한지 깊은 밤 당신의 옆에 누워 있으면서 나의 마음에는 사막에 박힌 별을 바라보는 부엉이의 적막한 고요함이 밀려옵니다. 당신은 내 삶의 평화로운 밀물입니다. 당신의 손과 당신의 발과 당신의 눈과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존재를... 당신 '있어' 행복합니다. - Your wife Sue

 

물었다. 심영섭, 남완석 부부의 만남은 어떤 영화입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묻는다.

"드라마죠. 안 그래요?"

 

- 홍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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