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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의 음성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한복음 12:12-19) 2012. 4. 1.

작성자강수봉|작성시간12.04.01|조회수624 목록 댓글 0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한복음 12:12-19)          2012. 4. 1.

 

  오늘은 4월 첫주일이며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수많은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서 대대적인 환영을 하였다함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4개 복음서에 관련말씀이 다 나옵니다만 하나같이 예수님을 왕으로 대하는 환영이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눅19:38),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여 하더라”(요12:13),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8-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막11:9-10)고 하였습니다.

  물론 마태 마가복음의“호산나 다윗의 나라여 다윗의 자손이여”란 외침도‘우리를 구원하소서 다윗왕의 자손으로 오실 왕, 그리스도시여!’라는 뜻입니다.‘그리스도 곧 기름부음 받은 자’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제사장과 왕과 선지자’를 의미하지만 당시 저들은 특별히‘그리스도’하면‘왕’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왕도 그저 왕이 아니라 당연히 다윗왕과 같이 민족을 여호와 신앙 아래 하나로 통일하였고 주변 모든 나라를 정복한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막강한 왕일 것으로 기대하였으며 고대하였습니다. 당시 유대민족은 로마제국 지배아래에 있었기에, 성경이 수없이 예언하여 온 그리스도를 그 어느 때보다도 나타나기를 간절히 고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실 하늘과 땅의 왕 그리스도로 오셨기에,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대부분을 변방 갈릴리 지방을 위주로 복음사역을 하시며, 또한 당신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드러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대 군중들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며 세상적인 희망을 품었고, 어떤 때는 억지로 왕으로 옹립하고자 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 당시 그랬죠. 이와는 반대로 당시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 헤롯당원들,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율법사들은 예수님을 시기하여 모세의 율법을 파괴하는 신성모독자이며 로마정부에 맞서는 민족의 반역자로 몰아 잡아 죽이려고 하였고, 심지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까지 출교키로 하였던 것입니다.(요9:22) 공생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기승을 더해 갔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절(10-11절)을 보시면“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하였으니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돌연히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 나타내시어 예루살렘으로 입성해 들어가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군중들이 노골적으로 왕으로 환호하는 대대적인 환영을 그대로 받아들이시면서 들어오시니 말입니다. 전에는 그러한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것도 일년중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가장 많이 모여드는 유대 최대 명절인 유월절때 말입니다. 세계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물론 이방 헬라의 개종자들도 많았던것 같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백만명이라 기록을 남겼다지만 당시 예루살렘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음은 분명합니다. 적대자들은 그동안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사람까지 풀었었는데 뜻밖의 허를 찔린 것입니다. 본문19절을 보니“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연히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주권적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이 때를 위하여 기다리시며 준비하시며 일해 오신 것입니다. 바로 이 때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십자가의 희생의 때입니다. 일찍이 세례요한이“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고 말씀한대로 입니다. 이를 위하여 세상에 오시면서 주님의 때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으며, 그런가 하면 공생애의 길을 걷기 시작하신 때부터 라고도 할 수 있지만,‘이 때’란 의미는 더 구체적으로, 십자가를 향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9:51)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다 이루었다”하시며 운명하신 때까지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4-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요12:23,27)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막14:41)

  그러므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것과 이제 세상 만민의 구원을 위한 때가 드디어 도래하였음을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만 백성 앞에 이를 선포하신 사건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찾아온 바리새인 니고데모와의 대화 중에 이러한 말씀을 하신적이 있습니다.“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고요. 이는 모세의 영도를 받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중에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에 있었던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백성들이 모세에게 구원을 호소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매어 이를 쳐다보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셨지요. 그런데 당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예표가 자신에 관한 예표이심을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보아야 하듯, 세상의 만민들 역시, 만민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제물로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왕으로 입성하시는 그리스도는 세상에 군림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어 세상 만민의 죄를 속하시려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 길이 곧 죄와 사망의 권세잡은 사탄을 쳐 이기는 길입니다.

  따라서 오늘 예루살렘의 군중들은, 입성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그가 참으로 이스라엘을 구속할 그리스도로서의 왕이 어떠한 왕임을 바로 깨달아 알아야 했습니다. 

  첫째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임하시는 왕이십니다. 이는 일찍이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겸손하신 평화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왕이신 그리스도이나, 당시의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그러한 세속의 권력을 회복하는 땅의 왕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둘째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후 예수님이 가신 곳은 왕의 권세의 보좌로 나아가신 것이 아니라 성전으로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왕이신 그리스도이지만 또한 하늘의 참된 대제사장이시며 참된 선지자이심을 보이신 것입니다. 성전을 숙정하시는 사건이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 적의가 가득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시는 주님에게서 환난과 핍박과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한채 담대하게 임하시는 예수 우리 주님을 보면서 참된 용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한편, 주님을 환영하는 군중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군중들이 참으로 바른 신앙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았는지 말입니다. 말씀드린대로 당시로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유대사회에서 출교 당하는 것인데. 이같은 유대 당국자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도외시 한채 막무가내로 예수님을 왕으로서 환영하였으니 놀라운 일인 것이지요. 물론 개중에는 군중심리도 작용하였을 것입니다만, 일단 수많은 군중들의 마음은 순수하였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서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만, 막상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 예루살렘은 조용했습니다. 하기야 예수님의 최측근 제자들까지 몸을 숨겼으니 할 말 없지요.

  예루살렘 군중들의 열렬했던 신앙은 고작, 주님 일찍이 말씀하신대로 흙이 얇은 돌밭같은 신앙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이내 말라버리듯, 주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날 때 넘어지는 자를 돌밭과 같은 신앙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옥토 밭에 떨어진 씨같이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끝까지 견디어 삼십배, 육십배 혹은 백배의 결실을 맺는 신앙이 되어야 하겠음을 본문을 통해서 교훈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30-33)

  최근 미국 미식축구계에‘티보잉(Tebow)’이라는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이 열풍의 주인공은 NFL 덴버브랑코스 프로팀에 입단한지 일 년밖에 안된 어린 선수가 최고의 쿼터백으로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는‘틴 티보’선수입니다. 그는 얼마나 경기를 잘 하는지 지고있는 경기를 매번 역전승하게 만들고는 잠시 한 쪽 무릎을 꿇고 주님께 감사기도를 하는 겁니다. 처음엔 놀리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이젠 전 미국에 이를 따라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히 열풍이라고 할 정도랍니다. 어찌보면 거룩한 열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하인스 워드’선수가 금년에 은퇴했습니다만 그가 속한 피츠버그 스틸러스팀이 금년 1월 덴버브랑코스팀의‘틴 티보’ 때문에 역전패하면서‘티보잉’은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같은 과정의 짧은 동영상을 오늘 오후집회때 보려고 합니다만,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살고있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함을 다짐하게 됩니다. 종려주일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말씀을 통하여 매번 주시는 교훈을 놓친다면 우리 역시 당시의 예루살렘에 모인 환영군중에 지나지 않으며 돌밭과 같이 열매맺지 못하는 쭉정이 신앙에 불과함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1-33)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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