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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의 음성

“썩어질 것을 피하여”(베드로후서 1:3-11) 2012.11.25.

작성자강수봉|작성시간12.11.25|조회수266 목록 댓글 0

         “썩어질 것을 피하여”(베드로후서 1:3-11)            2012.11.25.


  요즘 유럽을 중심으로한 세계적인 경제불황과 경기침체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그 여파가 조만간 우리나라에 밀려들 것이라고 염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 드러난 이슈들을 보면 이에 대한 대비는 없고, 그저 그간 축적된 부를 펑펑 나눠 쓰자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것 같아 염려가 가중되는 것입니다. 물론 내년부터라도 서둘러 복지사회를 구현하며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것에 마다할 사람 없을 것이나, 왜인지 이솝우화에 나오는‘개미와 베짱이’이야기 속의 베짱이 생각이 자꾸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경기침체보다 더 염려스럽고 두렵기까지 한 것은 영적인 침체입니다. 오죽해야‘센데이 크리스챤’이란 말이 나왔겠습니까? 주간에는 세상에서 불신자들과 구별없이 휩쓸려 살다가 단지 주일날에만 반짝하며 크리스챤으로 나타나는 교인을‘선데이 크리스챤’이라고 한다지 않습니까? 이 말은 비록 서양쪽에서 나온 영적인 침체를 의미하는 단적인 한 예에 지나지 않지만 이미 우리 한국교회에도 만연된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요즘의 한국교회 현실은 아마도‘선데이 크리스챤만이라도 좋으니 제발 성수주일하는 교인만이라도 되어다오’의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우리가 외형적으로는 남보기에 주일날 교회 출석을 잘하고 헌금도 하며 봉사도 나름대로 한다고 해도 내면적인 면에서 영적인 침체에 빠져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영적인 침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거나 혹은 깨닫고 있기는 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러한 것 그 자체가 더욱 심각한 영적인 침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만일 우리 몸에 심각한 병이 들었는데도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면 이처럼 위험한 일은 다시 없을 것이며, 행여 건강 검진을 통해 병이 있음이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무지의 소치로 이를 대수롭지 않게 누가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참으로 위험하고 염려스러운 것입니다.

  영적인 침체 현상은 개인차원을 넘어 교계차원으로 확대하여도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한 예입니다만 전부터 들리는 말에‘기도원운영난 문제, 사치스러운 대형교회 건축문제’가 그렇습니다. 기도에 힘쓰는 대신 교회 외형자랑에 관심이 크다는 의미 아닙니까? 최근들어‘세습문제’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이는 우리 한국교계에 만연된 영적침체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영적인 침체 현상이 이미 우리 가운데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기침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참으로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영적 침체인 것입니다. 왜 두려운 일입니까?

  이는 우리의 구원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 우리의 영혼이 이미 구원을 얻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은 사실이며, 또한 주님께서는 이 구원을 끝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여서 어느 한편의 강제적이고 일방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구원은 이미 받은 것이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우리 영혼은 구원 받았어도 아직 부활에는 이르지 않았기에 영혼과 육의 온전한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마치 조난당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구원선에 구조되는 순간에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지만, 온전한 구원은 의료진을 통해 건강검진도 받고 원기를 회복함은 물론 항구에 무사히 도착함으로써 비로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약성경 빌립보서에 보면“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3)”고 하였고, 베드로전서에도“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고 하였으며, 또 로마서에도“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13:11)”고 한 것입니다. 이같은 말씀의 깊은 의미를 절대로 도외시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성취하신 구원의 사역을,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개인의 구원으로 적용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을 교회는 교리로 표현하였습니다. 교회는 이를 보통‘구원의 순서 혹은 구원의 서정’이라고 하여 8단계가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소명으로 시작하여, 중생, 회심, 칭의, 입양, 또 일생을 거치는 성화와 견인의 단계를 지나서 그리고 영화입니다. 즉 마지막 단계의 영화는 천국에서의 부활이니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영적인 침체를 깨닫게 하시며 이를 책망하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고 말입니다. 우리가 만일 성령의 책망을 받고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면 좋지만, 스스로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어서 계속 못 들은체 거부하기를 계속한다면 제대로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 의문시 되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광야 40년의 생활을 거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던가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출애굽 1세의 대부분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채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망했던 것입니다. 이를 후에 히브리서는 말합니다.“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3:19-4:2)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구원받아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때를 보면, 저들이 홍해바다를 건너자마자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오래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훈련을 받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거기서 저들은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받았고 하나님의 장막성전을 세웠으며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그후에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받는 구원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예수 믿으므로 단번에 우리 영혼이 구원받았습니다만, 영육의 온전한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에야 완성되듯이 말입니다.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출생으로 다 된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성장해가듯 말입니다. 마치 과일 나무에 과일이 맺혔다고 다 된것이 아닙니다. 좋은 열매로 익을 때까지의 기간이 필요하듯이 말입니다.

  그러기에 유다서에도“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3)”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힘써 싸우는 단계”입니다. 영적인 침체 상태에 빠지지 않으며, 빠졌을 경우에는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힘써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침체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이는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만도 당시의 영적인 침체 현상을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을 통하여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실족하며(10절), 멀리 보지 못하는 맹인이며(9),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으며(9),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며(8), 열매 없는 자이며(8),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지 못하는 자(8) 등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침체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과(1절),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과(3),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4)을 주셨지 않느냐 했습니다. 그러면서 두가지를 힘써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즉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과정으로서 두 가지를 말하는데 하나는 소극적인 차원이며 하나는 적극적인 차원입니다. 소극적인 차원으로는“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는” 회개와 절제와 경건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또 적극적인 차원으로는“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차원의 성령의 열매를 맺듯이 신앙의 성숙을 기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본문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는 미덕의 사다리 혹은 구원의 사다리를 8단계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서 힘쓸 것을 강조하였습니다.“더욱 힘써”를 두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성령께서 책망하시며 깨닫게 하실 때 우리가“더욱 힘써” 바로 이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며 신앙의 성숙 즉 영적인 부흥을 회복함에는 적당히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에“더욱 힘써”라고 한 줄 압니다. 여덟 단계입니다.

  첫 번째는“믿음”의 단계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받으니 신앙생활의 첫 관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덕”입니다. 우리보다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으면 포용하고 감싸 교회의 선을 추구하는 용기로서의 덕입니다.

  세 번째는“지식”입니다. 당시 이단의 사이비 진리까지 덕으로 감쌀 수는 없지요. 진리의 말씀으로 영적인 분별력을 지녀야 합니다. 지식은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하는 판단력과 이해력입니다.

  네 번째는“절제”입니다. 바른 지식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계속해서 자신을 바로 파악하고 자신을 매사에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는“인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것처럼 환난에 직면해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견디어서 끝내는 승리를 쟁취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경건”입니다. 새로운 시각에서 하나님과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형제우애”입니다. 경건이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라면, 형제우애는 인간을 위한 희생과 봉사와 친절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사랑”입니다.  앞의 모든 덕목들 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더한다면 성도로서의 온전한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아니 이런 것이 있어야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하면서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였습니다.

  (1) 8절 말씀입니다.“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2) 9절입니다.“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3) 10절입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11절 말씀이 나옵니다.“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11절)”고 결론지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봅시다. 포도나무 가지에 포도 열매가 맺기 시작한다고 하여 다 된것이 절대로 아니듯 우리가 예수믿어 새 생명을 지니게 되었다고 다 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열매의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 창고에 추수되어 들어갈 것입니다. 중도에 병충해, 가뭄같은 여러 변수가 왜 없겠습니까? 물론 농부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돌봐주심은 사실입니다만 우리 역시 영적인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의 신앙적인 분발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경계어린 말씀을 주셨음을 기억하십시다.“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4)고요.

  그러므로“더욱 힘써”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므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모든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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