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도행전 10:34-43) 2013. 3. 31.부활절
주후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부활절을 제정한 이후 매년 부활절을 맞게 되는 줄 압니다만, 입춘지나서 봄에, 그것도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을 보고, 또 거기다가 보름달을 본 다음의 첫번째 주일이 부활절이니 이 얼마나 마음을 설레게 하는지 모릅니다. 연이은 희망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지구의 반대쪽 부라질이나 호주에 사는 분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우리네와는 반대로 가을에다가, 밤이 길어지는 추분을 지나니 말입니다. 지난주에 노란 개나리꽃이랑 민들레꽃이랑 피었더군요. 얼마나 곱고 예쁘던지 봄이 본격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빨치산처럼 여기저기 아직 추위가 도사리고 있긴 하겠지만 이것이 대수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로 시작되는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마태복음에는 이를 더 줄여서“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치 추운 겨울이 물러가고 따뜻한 봄 기운이 몰려오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님의 복음은 그의 행하시는 치유기적과 자연기적과 더불어 금새 온 갈릴리에서 유대로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실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이미 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시며 왕이시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고 말씀하심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파 초기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나라의 왕 즉 메시야이심을 감추셨는데 이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잘못된 메시야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세례요한까지 옥중에서 한때 헷갈렸는지 제자들을 보내 묻기를“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며 확인한 일도 있었으니까요(마11:3). 그때 예수님의 답변이 이러했습니다.“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말씀하심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을 밝히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실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 믿겠다고 교회는 나왔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영적이고 참된 구원을 얻는 일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먼저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수없이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것입니다.“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6:27),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로마서에서도,“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기록하고 있음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흔히 이 부분에서 실족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세상에 있는 현실적이며 물질적인 사건들을 비유로 하여 많이 가르치셨습니다만 그 본질적인 비유의 영적인 참된 의미를 우리가 잘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많은 무리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을 가르친 후에는 별도로 제자들에게 그 비유의 영적인 참 뜻을 풀어주시곤 하였던 것이지요. 복음서에는 씨뿌리는 비유라든지 천국의 비유라든지 많은 비유가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다가오는 세상 마지막 날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도 비유로 하셨습니다. 즉‘므나의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9장11절이하에 나오지요.“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로 시작되는 말씀은, 후에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는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을 칭찬하면서“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시지요.‘열 고을을 차지하라’는 표현이 비록 비유 속에서는 현실적이고 물질적이고 정치적인 표현으로 나타나지만, 여기서도 영적인 비유의 참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이며 결코 비유 자체의 표현에 머물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잘못된 메시야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음을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째 날에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때 수많은 유대인들의 환송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며 다윗왕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야라고요.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는‘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치는 무서운 군중으로 바뀐 것입니다. 물론 일부 선동된 자들이긴 하였을 것이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어찌 잠잠하였단 말입니까? 원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민란이 일어날까 걱정하였던 것 아닙니까? 민심이 이상하게 흐른 이유가 바로 저들 유대인들의 잘못된 메시야관 때문이었지 않나 생각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온 하나님의 나라는 결단코 로마제국과 같은 폭압적인 세상권세를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왕 때와 같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과 이 점에서 엇갈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야 곧 그리스도에 관한 정확한 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이며 최대 문제가 바로 죽음이 아닙니까? 즉 인간의 최대 원수는 로마제국과 같은 세상 정치권세사 아니라‘사망의 권세, 흑암의 권세 곧 마귀의 권세’인 것입니다. 히브리서에도 나옵니다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에 대하여 기록하기를,“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히2:14-15)”이라 하였으니 이는 바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사망이 왔기에, 우리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을 위해서는 죄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급선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기록에,“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행5:30-31)”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주며 하나님의 나라로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직접 당신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시며 부활의 주님이시며 영생의 주님되심을 말씀하셨습니다.“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요18:3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이라고요.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후 제자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24:44-45)”라고요. 즉 모든 것의 최종적인 답이 바로 부활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의 관계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행8:12). 예수님 시대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도 시대에는 예수님 부활을 증거하였다 하여 전도의 주제가 달랐던 것이 아닙니다. 빌립에서 보듯이 이는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목표’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길’입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밝히신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사도들이 나서서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그 분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증언한 것 뿐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설교입니다.“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1-12),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39-43)”
사도 바울도 동일합니다.“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명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17:30-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행28:23),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행20:25),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으며,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되심을 그대로 온 천하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부활하신후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이 기쁜 하나님의 나라의 구원소식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이 말씀이 바로 오늘 부활절을 맞아 우리의 믿음과 사명을 다시 한번 새롭게 다짐하게 하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각자의 마음에 다짐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