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후 갈릴리에서”(요한복음 21:1-14) 2013. 4. 14.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삼 년여간의 공생애 활동 무대가 주로 갈릴리 지방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이나 초막절 같은 절기 때나 그 외 특별한 경우에는 예루살렘이나 유대 지역으로 올라가셔서 비교적 조용하게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생애의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수많은 무리의 환영을 받으며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일은 예사스러운 일이 아닐 뿐아니라 이에 온 예루살렘 성이 소동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때 원근 각처에서 올라온 유월절 참배자들이 놀라며‘이가 누구냐’고 알고자 했던 것이며, 이에 대한 환영하는 무리들의 대답이 바로‘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였던 것입니다(마21:10-11). 물론 예수님만 갈릴리 사람이 아니라 사도들을 비롯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대부분이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유월절 예루살렘 여행이 예수님에게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마지막 여행이었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른 참배자와 마찬가지로 유월절과 무교절 한 주간이 지나면 당연히 여늬 때와 같이 고향 갈릴리로 내려갈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서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으로 일컬어지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26:31-32).” 물론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의“다 나를 버리리라”는 말씀에 펄쩍 뛰며“모두 주를 버릴 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말하였습니다만, 예수님의 그 다음 말씀인“내가 살아난 후에”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며,“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는 말씀에 대해서도 단지 절기가 지나면 고향 먼저 내려가시려나보다 정도로 귀담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부활하신 날 새벽에 천사들이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이를 다시 강조한 것 같습니다.“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마28:7)”고 말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함께 묵상코자 하는 것은, 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미리“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첫째는 육신적인 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제자들도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될 극히 자연스러운 귀향에 대한 언급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절기를 마쳤으면 당연히 갈릴리로 내려가지만, 하나 특이한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 앞서서 미리 준비하실 무슨 일이 있으신지 따로 먼저 내려가신다는 사실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주님은 항상 양을 인도하는 목자와 같이 제자들 앞서 나아가셨기에 특이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정신적인 면입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싸여 심신이 극도로 지쳤을 것이며, 강도의 소굴과 같은 예루살렘을 빨리 멀리 떠나 조용한 갈릴리에서 기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뿔뿔이 흩어졌던 양떼와 같은 제자들을 다시 갈릴리로 불러 모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래전에 제가 베드로의 그간 한 주간의 심리를 그라프로 그려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높낮이의 그라프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날의 베드로의 마음은 천당에 오른 듯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예수님 타신 나귀 고삐를 누가 쥐었는지는 모르나 저는 베드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탄 나귀 고삐를 쥐고서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실 것을 마음에 그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예수님이 폭도들에게 잡히시자 자신은 혼자 살겠다고 예수님을 버리고 줄행랑을 쳤으며, 또 줄행랑을 치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슬금슬금 먼 발치로나마 끌려가는 주님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그래도 베드로의 행동을 이해하겠으나 오히려 그 어간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하였으니 갈수록 태산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그대로 십자가 형을 받아 죽으십니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 과정 속에서 베드로는 좌절감, 절망감과 공포감에 몸서리치며 그야말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끝없이 계속 굴러 떨어져 내려갔으리라 짐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이제는 지옥에서 천당입니다.
그야말로 요 며칠 사이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지옥에서 천당으로 오르내리는 현기증나는 롤러코스터 청룡열차를 탄 심리상태였을 겁니다. 어디 베드로 뿐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처형후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 추종자들에 대한 체포 등 일망타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숨죽여 숨어 지냈는데, 설상가상으로 예루살렘 한 쪽에서는 또다른 괴이한 소문이 돌고 있어 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소문이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경비군들이 졸고 있는 틈에 그의 제자들이 시신을 도둑질하여 갔다는 소문입니다. 물론 그 소문의 근원지는 대제사장들과 유대 장로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입막음코자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헛소문을 퍼뜨리게 한 것이지요(마28:4-15).
좌우간 이런저런 이유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는 문밖 출입도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속히 절기가 마치면 귀향하는 군중들 틈에 묻혀 나가거나 아니면 군중들이 거의 빠진 조용한 기회를 잡아 예루살렘을 빠져나가든지 좌우간 빨리 멀리 갈릴리로 가는 길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는 전갈은, 그동안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갈릴리로 모여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고, 부활하신 주님의 돌보심을 다시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힐링 캠프’입니다.
셋째는 영적인 면입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를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과 제자들과의 갈릴리 만남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제자들의 고기 잡는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이 베드로를 비롯하여 대부분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이었으니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여기 1절의‘디베랴 호수’는 일명‘게네사렛 호수’라고도 불리워지는 갈릴리 바다입니다.
삼 년전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실 때도 바로 여기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때였습니다(눅5:1-11,마4:18-22). 그날도 시몬 베드로는 밤새 별 소득없이 허탈히 앉아 그물만 씻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배에 오르시고는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아서 몰려온 무리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시고는 시몬에게“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시몬은“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대답하고는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 다른 배에 있던 동업자 야고보와 요한을 급히 손짓하여 도와 달라하여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웠는데 고기로 배가 잠기게 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이를 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였으며,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 무릎 아래에 엎드려“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저들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그대로 버려둔채 주님을 따랐으니, 이때부터 저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삼 년이 지난 지금 거의 동일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동일한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채 날이 새어가는데,“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는 바닷가에서 말씀하시는 어떤 분의 말대로 했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어서 물고기 든 그물채 끌고 간 것입니다. 경악할 만한 사실 앞에서 그 어떤 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제일 먼저 알아본 제자가 요한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자들은 갈릴리에서 주님을 만나뵌 것입니다.
저들은 아마도 오늘의 놀라운 갈릴리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삼 년전 사람 낚는 어부되게 하기 위해 자기들을 제자로 부르신 그 때를 다시 한번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후 부활하신 주님과의 아침 식사와 이어지는 대화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다시 한번 증거하셨으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부름받은 제자들의 사명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다음에도 여전히 변치 않았음을 재확인 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야말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온 세상 땅 끝까지 힘차게 구원얻는 회개의 복음이 전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제자들로 하여금 이전에 갈릴리를 중심으로 행하시며 가르치셨던 예수님의 모든 행적과 교훈을 회상케 하여서, 이를 다시 부활의 빛 아래에서 재검토케 하는 중에 그 영적인 참된 의미를 새로이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이같은 주님의 마음이 누가복음 24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245:44-45)”라고 기록된 대목입니다.
이처럼 주님 부활하신 이후 제자들은 갈릴리에 머물면서 새로이 많은 깨달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권위에 관하여 추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이 성전은 사십육 년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알 동안에 일으키겠느냐”고 반박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데 제자들도 깨닫지 못하다가, 훗날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비로서 이를 깨닫고 주님의 하신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요2:18-22).
또 예수님께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실 때에 무리들이“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고 외치며 대대적인 환영을 한 사건에 대해서도, 제자들은 처음에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구약 스가랴의 말씀인“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슥9:9)”는 예언이 예수님께 대한 기록이며 사람들이 그리한 것임이 생각이 났더라고 하였습니다(요12:12-16).
이같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예루살렘에서 목격하고 만났지만 저들은 주님의 분부를 따라 멀리 고향 갈릴리로 조용히 물러나 지금까지의 주님의 모든 가르침과 행적을 부활의 빛 아래서 재조명을 받으며 새롭게 깨닫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복음 전파가 급하지만, 마치 총탄없이 달랑 총만 들고 전장에 나서는 병사와 같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후 일시적으로는 즉시 유대인 회당을 찾아 들어가서‘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전파하긴 했지만, 갈라디아서를 보면 그는 지체하지 않고 멀리 아라비아로 물러나 고요히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가지면서 그의 신앙과 신학을 재정비하였던 것입니다(갈1:17).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부활절기를 보내면서 생각하는 것은 나름대로 우리에게도 갈릴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나와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계가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은 나와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조용히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검토 재정비하는 시간 장소 기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언제까지 설렁설렁 대충대충 확신없는 신앙생활을 하며 살 것입니까?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근래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요즘 이북에서 남한에 핵폭탄과 미사일로 매일같이 위협하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는 것입니다.‘내가 지금 원자폭탄을 맞아 순식간에 녹아 없어진다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분명하지 않더냐’라고 생각하면서 믿음을 다짐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확신과 다짐은 결국 우리로 생사문제를 초월하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게 합니다.
로마서의 말씀입니다.“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4:25-5:1)”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자만이 비로서 이웃과 진정한 화평을 누리게 되며 따라서 진정한 전도로 이어지는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의 갈릴리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이웃과의 화평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