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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의 음성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드로전서 1:18-25)

작성자강수봉|작성시간13.04.30|조회수881 목록 댓글 0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드로전서 1:18-25)

2013. 4. 28.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하였지만 그리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봄꽃들이 일주일을 못 버티고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함께 인생의 무상함도 생각케 합니다. 생각같아서는 한 달 정도만 만개 상태로 있어주면 좋으련만,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부터 화무십일홍인 것을 어찌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도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무상함을 알게하여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신 줄 압니다.

파스칼이 한번은 사교 파티를 마친후 밤에 마차를 타고 귀가하게 되었습니다. 도중에 파리 세느강 다리를 건너다가 마차바퀴가 다리 난간에 부딪혀 부러지면서 크게 부서지는 마차에 깔렸다고 합니다. 간신히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와 살았지만 그 와중에 그의 눈 앞에는 세느강이 소리없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는 것이며, 그는 그렇게도 어둠 속에서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서 영원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인생의 모든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죽음 앞에서 젊음과 명성,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이 일은 그가 그후 기독교에 귀의케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파스칼 뿐아니라 누구나 인생의 무상함을 깊이 절감케 되는 되는 때가 있는 줄 압니다. 그래서 그 공허함을 메꾸어 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써 보지만 아무리 해도 그 공허함은 메꾸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설픈 시도는 도리어 금단현상같은 인생의 목마름만 더할 것입니다. 이는 인생이 본래, 영원하신 하나님이 아니고는 그 공허를 메꿀 수 없로록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한번은 물을 길으러 나온 사마리아 수가 성의 한 여인에게서 인생의 실패와 깊은 공허함을 보시고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즉 영원한 생명과 평강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성경말씀에도“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24-25절)”고 하신 줄 믿습니다.

여기‘복음’이라고 한 것에 특별히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는 복을 가져오는 소식이고 다른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다면 이는‘복음’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점을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자기네 민족만이 하나님의 택하신 복된 민족이라는 편협한 선민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 주변에 수많은 이방민족이 있었고 또 저들 나름대로 섬기는 신이 있었습니다. 서쪽의 블레셋 족속은 다곤 신, 시돈 족속은 바알과 아세라 신, 아람 족속은 림몬 신, 암몬 족속은 밀곰 신, 모압 족속은 그모스 신 및 그 외 에돔과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의 우상 신이 족속마다 각각 달리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자기들만의 차별화된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여호와를 섬기노라고 자랑만 하였을 뿐, 여호와 하나님이 온 세상 심지어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심에는 대부분 무지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족속 곧 유대인의 오해였습니다. 오늘날까지 저들은 오해하고 있습니다. 유대교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한번은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하여 보니 레이건 대통령의 책상 위에 각각 다른 색깔의 전화 3대가 있더랍니다. 물었답니다.“각하 이 전화기들은 어떻게 다릅니까?”“흰색은 공무용으로 행정부로 통하고, 빨간색은 구 소련과 직결되는 비상 전화이고, 황금색은 하나님과의 통화용입니다”“그럼 하나님과의 통화료는 얼마입니까?”레이건은 웃으면서“1만 달러요. 하나님과의 통화는 1만 달러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후 이번에는 레이건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베긴 총리 집무실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에도 전화기 3대가 있는지라 물었습니다. 총리 대답하기를,“흰색 전화는 국회의사당과 연결된 공무용이며, 빨간색은 이집트와 연결된 비상 전화이고, 노란색은 하나님과의 통화용이지요” 레이건 대통령 묻습니다.“여기서는 하나님과의 통화료가 얼마요?”“15센트입니다”“왜 그렇게 싼 거요?” 베긴 총리가 웃으며 말합니다.“이곳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통화할 때 국내 통화료를 냅니다” 정말 이런 대화가 있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습니다만 좌우간 유태교를 믿는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독점하고 있으면서, 만민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치 않은채 오늘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2천년전 만민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서 비로서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이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생명의 복음은 비록 유대인으로부터 또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은 되었지만, 결코 예루살렘의 유대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온 천하 만민 땅끝의 모든 민족에게 이 복음이 전파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오래 전부터의 뜻이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에 대하여 로마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롬3:29-30)”고요.

 

복음은 이렇게 만민에게 전파되어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 과정에서 차별이 있을까요? 유대인은 A급 구원이고 이방인은 B급 구원을 받는다든지 말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의 주님이시며(롬10:12),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는 일에도 전혀 차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느니라(롬3:22)”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의 이상스러운 다른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 이단들은 자신들만 특별한 대우를 받는 144,000명이라고 합니다. 이단들의 일반적인 차별화 정책일 뿐입니다. 또 저들은 복음을 이상하게 해석하여 자신들의 교주가 보혜사이고 감람나무이고 엘리야이고 심지어 재림주이고 구세주라고들 주장합니다. 일부는 주장하기를 예수님이 처음에 구세주로 오긴 했지만 구원을 다 이루지 못하였고 실패하였기 때문에 이를 자신의 교주가 마무리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들어보면 대개가 이런 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어린 양과 같으신 대속의 희생 제물로서 죽으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지 결코 실패가 아닌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정하신 일이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18-21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분명히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복음의 핵심 사건은 분명하게도“창세 전부터”미리 예정되어 알린 바 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도“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같이 이루셨느니라(행3:18)”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복음은 모든 만민에게 차별없이 주어지되 전혀 대가성이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로마서 3장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2-24)”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암살하려고 한 여자 자객이 경비병처럼 남장을 하고 궁에 들어갔다가 살인에 실패하고 체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여왕이 친히 나와 재판을 합니다. 심문을 받는 그 여자는 담담하게 말을 합니다.“내가 잘못된 사람에게 고용되어 이런 엄청난 죄를 지었지만 저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여왕이 그에게“그래, 내가 너를 살려준다면 그 대가로 무엇을 하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그 순간에 죄인은 이렇게 말합니다.“조건이 있는 은총이 아닙니다”여왕은 깊이 생각하고는 그를 무조건 석방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영국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여왕에게 그녀만큼 신실하고 헌신적인 여종은 없었습니다. 석방된 이 죄인은 여왕의 종으로 일평생을 그렇게 성실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은총이며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차별 없이’이며 동시에‘값 없이’주어진 은총의 선물입니다.‘네가 앞으로 거룩하게 산다면 내가 구원해 주겠다’식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무조건으로 주신 구원인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의 사랑이라 일컬으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8-10)”

따라서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을‘믿음’이라 하며, 이같이 거저 구원을 받은 자들은 마치 여왕을 위해 충성한 여인처럼 자발적으로 주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강요도 아니며 단지 권면이 있을 따름이며 억지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자원하는 충성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우리에게 세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현재 자신의 경건입니다.“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느니라(14-16절)”

둘째로는, 다른 사람과의 경건입니다.“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22절)”

셋째로는, 미래에 다시 나타나실 주님에 대한 경건입니다.“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13절)”

그러기에 오늘 말씀의 결론으로,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겪는 인생의 모든 허무함을 뛰어넘는 말씀으로 히브리서 12장 2절을 삼고자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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