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수기 13:25-14:10) 2013.10. 6.
4살짜리 손주녀석이 지난 주에 동물원에 소풍을 갔다와서는 코끼리도 보고 원숭이도 보고 낙타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낙타 등에 이렇게 뿔 난것도 보았냐고 하니까, 대답하기를, 뿔이 아니고 언덕이라는 겁니다. 순간 아차 싶었지요. 뿔은 머리에 있는 것이니, 뿔이 아니라 혹이라고 해야 되는데 제가 실수한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치고‘언덕’은 뭐야! 언덕이라는 말은 또 어떻게 알지! 저는 속으로 혼자서 감탄만 하였던 것입니다. 아마 TV에서 터득한 것이리라 추측할 뿐입니다. 사실 모든 면에서 다 그렇겠지만, 아이들이 재미있는 TV만화를 볼 때는 누가 아무리 옆에서 불러도 웬만해서는 얼굴도 안 돌립니다. 대단한 집중력이지요. 만화 속에 완전히 진짜같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어디 아이들 뿐이겠습니까? 어른들도 소설이든, TV 드라마든 등장하는 인물들과 자기를 일치시키면서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야 진짜 실감이 나고 재미가 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가 닭 쳐다보듯, 성경 이야기를 마치 남 얘기 대하듯 한 걸음 물러서서 읽어서야 은혜가 될 리가 없습니다. 오늘 민수기 본문만 해도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성경 속에 나오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에 함께 동참하여 마치 저들의 문제를 내 문제, 우리 문제로 여기면서 성경을 깊이 상고한다면 우리에게 반면교사로서의 교훈이 되고 은혜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땅을 성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풍요롭고 비옥한 땅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까지 하였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지상낙원 에덴동산이며, 세상 말로 유토피아, 샹그릴라, 무릉도원 같은 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애굽에서 4백년 동안 비참하게 종살이 하느라고 어느 누구도 가나안 땅에 가 본 사람도 없었을 것이며, 제대로 된 정보도 접해보지 못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모르긴 하지만 모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저들은 단지 막연하게나마 옛날 조상들이 살던 곳 정도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때가 이르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시고는, 옛날 조상들이 살던 가나안 땅 곧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저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감격하였겠습니까? 또한 들어가 살 가나안 땅에 대하여 무척 궁굼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자,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도합 12명을 택하여 가나안 땅에 미리 보내어 정말 그런가 아닌가 정탐케 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40일만에 돌아온 저들 정탐군들에게서 결과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같이 크게 실망하였고 끝내는 절망과 공포로 이어져 밤새도록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정탐 결과보고가 어떠하였기에 그랬나요?
저들은 샘플로 가져온 그 땅의 과일을 보이면서,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맞지만, 이어서 그 땅을 악평하기를 그 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었다고 말하면서 그 땅에 사는 모든 백성은 우리보다 강하고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었으며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는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보고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갈렙은“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주장하였지만 소수 의견으로 이내 다른 다수의 주장에 묻혀버렸고, 민심은 동요되어 크게 낙심하고 절망한 나머지 밤새 소리 높여 부르짖고 통곡하였으며 급기야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차라리 애굽이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쩌자고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고 우리 처자식들을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고 원망하면서 흉흉해진 민심은 결국 모세 대신에 다른 지휘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려 한 것입니다.
이때 정탐한 자 중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에 통탄한 나머지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저들을 만류하며 나선 것입니다. 말하기를,“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온 회중이 들고 일어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 다음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 진노하셨으나 모세의 간절한 중보기도를 들으시고는 벌을 유예하시고 저들을 다시 광야의 길로 40년 우회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개략 내용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공부한답시고 조금 깊이 생각하노라면 삐딱한 의심을 품는 일이 간혹 생깁니다. 에덴 동산에는 왜 선악과를 두어 아담 하와로 죄를 짓게 하셨는지 차라리 선악과가 없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면서 말입니다. 또 오늘 가나안 땅도 주인이 없는 무주공산이면 평화로이 들어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가 있었을 것이며, 아니면 최소한 하나님께서 사전에 무엇인가 조치하여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무혈입성토록 해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에서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8장에 그대로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네 하나님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신8:2),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4하-16),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신8:19-20)”
즉 하나님의 뜻은, 우상숭배로 죄악이 가득 찬 아모리 일곱 족속들을 심판하시며(창15:16,신8:20),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모든 연단을 통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뜻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뿐 아니라 오늘날의 신약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종말에 대한 말씀이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에 분명한 것은, 주님의 재림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 전에 이 땅에서 성도들이 마땅히 겪어야 할 영적인 큰 싸움과 이에 따른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 사실입니다.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그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24:21-22)”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 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13:5,7-10),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21:9-10)”
다시 말씀드리면 광야의 연단과 가나안 땅에서의 싸움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뜻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신약의 성도들 즉 오늘날 영원한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말세를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 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이같은 하나님의 뜻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줄 믿습니다. 아무리 일생을 큰 무리없이 평안하고 조용히 살았다고 할지라도 마지막 죽음과의 싸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장대하고 강한 백성들과 한 판 승부의 싸움이 불가피하듯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의 민수기 말씀은 수도 없이 읽었을 것이며 여러 곳에서 여러번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만, 이를 개인의 죽음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게 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왜 예수님을 믿어 구원 얻은 다음에 또 불신자와 별로 다름없이 우리 육신이 죽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삐딱한 의문을 품은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죽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인 것은 사실입니다. 마치 누가복음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가 죽을 때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듯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히브리서의 말씀에도,“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4-15)”라고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신앙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살다보면 어느날 느닷없이 갑자기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는 때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인간인 이상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바로 여기가 이때가 신앙의 위기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가 바로 여기서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 민수기 본문 말씀이 바로 이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이를 잘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는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히4:1-3상)”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불신하므로 결국 광야에서 망하였지만, 그후 말씀을 믿은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저들 2세들은 결국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 강을 건넜으며, 계속 백전백승 하면서 가나안 7족속을 다 멸하고 그 땅에 안착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믿음이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비록 보이지는 않는다 해도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만을 확고하게 신뢰하여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그 무지막지한 가나안 7족속과 같은 죽음을 향해서도 쳐들어가는 것입니다.
물론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라고 하셨고, 히브리서 10장에도 기록되기를,“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5-39)”고 하였고, 로마서 8장에도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말씀하면서 기록하기를,“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7-39)”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갈렙과 같이“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믿음으로 소리칠 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떠한 시련과 난관 앞에서건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말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고전15:55-58)"고 하였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주 안에서 이같은 담대한 믿음을 계속하여 지닐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