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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쉼터

가을 길을 걸으며(수필)

작성자이방인|작성시간09.09.25|조회수21 목록 댓글 0

가을 길을 걸으며 ...                                                                               나루 윤여선


가을이라는 계절의 향긋한 빛이 구수한 맛을 뽐내는 아침저녁 운동 삼아 한적한 가을길을 걸을때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는 것은 바로 숲 속의 요정 같은 새들의 울음소리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오랜 동무처럼  반겨주는 새들의 울음소리따라 답답한 마음의 심정을 꺼내놓고 말랑말랑하게

]연붉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작은 나무 숲 가에 앉아 천진한 웃음 빛을 띄우면 어디선가  살글살금

다가와 내 콧등을 핥아내려는 듯이 마주 보고 있는 풀벌레 녀석들. 그렇게 녀석들과 한참 눈싸움을

하다 보면 녀석들은 어느 순간에 경계의 시선을 풀고 내 손등 위로 줄지어 오른다.

그러고보면 삶의 치열한 전쟁터 같은 도심에서 느껴보지못한 삶의 일상을 지금 이렇게 누구의 어떤

재지 없이 만끽하고있는 나는 어쩜 가을이라는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삶의 영혼인지 모른다.

비록 눈뜨고 눈 감는 순간까지 고단한 삶의 노동에 지쳐 오만 잡생각에 평온함을 잃은 가여운 영혼

이지만 말이다. 그러고보면 어쩜 가을이란 계절은 내 삶에 어머니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천상의 멜로디 같은 가을의 숲 속에 새들의 소리는 어머니의 가슴에 흐르는  순백한 고요의

숨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홉 해에 아버지 그리고 열여섯 해 어머니와  먼 세상에 긴 이별을 하고 지금껏 혼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끔찍한 어둠의 거리에서 생사의 목숨 놀이하다 끝내 눈물이라는 슬픔에  어느 가을

조용한 성당의 십 자성 담벼락 아래 쓰러지던 모습 그럴 때 마다. 감긴 두 눈을 포근하게핥아주며

두 눈을 뜨게 해주던 가을의 포근한 바람 그 바람은 어쩜 천상에 계신 어머니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어릴 적 가을이오면 어머니의 마음고생이 조금은  덜어지곤 했다. 그래서 어느 계절보다 어머니의

눈빛이 가을이오면 소태같은 여름의 뙤약볕에 메마른 강가에 가을의 촉촉한 물기 운이 돋쳐나듯

어머니의  눈가에도 걱정이 덜어짐을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산과 들에  

자식의 배고픔을 채워줄 곡식과 열매들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성치 못한 몸으로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하루에도 지붕의 서까래가 수 없이 무너질

듯한 어려운 살림형편으로 인하여 남들처럼 따스한 밥 한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 년 열 두달

사계절내내 허름한 옷 마디 마다치 않고  당신은 배고파도 옷 한 벌 사입지 못해도 괜찮다.

오로지 자식을 위하여 늘 이른 아침이면 이집저집으로 밥을 얻으러 가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왜,

그렇게 창피하고 부끄러웠던지.

그러나 가을이면  등잔불 아래 어머니와 둘이서 도란도란 웃음꽃을 방안 가득 피우고 했었다.
낮에 이웃집 밭일을 나갔다가 소쿠리에 한 아름 얻어온 복숭아를 성치 못한 손으로 혹시나 벌레가

먹었지 않나 어두침침한 눈으로 요리조리 꼼꼼하게 씻은 복숭아를 건내주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 간혹, 벌래 먹은 복숭아를 집어들고 머뭇거릴 때면  어머니는 원래 복숭아는 벌래 먹은

복숭아가 맛있단다. 하시며  내 손에  들려진 복숭아를 가져가 자신의 미안함을 들키지 않으려

슬그머니 벌래 먹은 부위를 베어 물으시던 어머니의 모습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때 어머니의

웃음과 모습은 가을밤 지붕 위에 반짝거리며 생긋생긋 웃음 짓는 별빛보다도 더 아름다웠지 싶다.  

이렇게 가을은 해마다 빈손으로 오지 않고 슬픔과 기쁨이 묻어 있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그리움을

들고 와 하루의 고달픔에 밤늦도록 뜬 눈으로 천정 위 알록달록한  빛 그림자와  눈맞추기할 때

가랑비처럼 눈 섶을 헤집고 흘러내리는 침묵의 흐느낌 그리고, 입가에 엄마, 보고 싶다 새겨지는

언어. 그럴 때면 지금 어딘가에서 나처럼 눈가에 눈물을 뽑아놓고 아빠, 보고 싶어. 라고 잠들지

못하고 있을 어린 아이의 생각이 염치없이 가슴팍을 뛰쳐나와 심장이 화끈거리도록 혹독한 몸 앓이를 친다.

언젠가 어머니의 가을 세상으로 떠나면 아마도 지금에 어린 내 아이도 아버지라는 가을의 세상에서

지금에 나처럼  잠들지 못하는 밤 눈물로 입가에 보고 싶다. 라는 언어를 새기다 잠들지 않을까.

인생은 누군가를 닮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닮아 가느냐보다는 어떻게 남느냐가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지않을까 싶다.  

그것은 바로 그리움이 아닐까. 미움과 원망의 그리움보다는 늘 보고 싶고 미안한 그리움 그래서

저마다 그리움의 계절을 만들고 그 계절에 머물면 보고 싶다. 라는 언어가 가장 먼저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나라면 비록 함께하지 못해도 이별 없는 영원한  마음의 소중한 동무로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에 가을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어머니 이름과 모습이듯이.

그래서일까,  아침저녁으로 가을 길을 걸으면 비록 현실의 내 삶이 부족하고 가난하여 내 육체는

고달프다고 눈물을 통하여 하소연을 하지만 어머니라는 이름을 통하여 그리고 나를 닮아가고있을  

소중한 어린 자식을 통하여 보고 싶다. 미안하다. 라고 말하는 지금에 내 영혼은 이 가을의 세상에서

만큼은 그 어느 영혼보다 아름다운 영혼이 아닐까.  

아직도 내 손등 위를 오르내리고 있는 풀벌레들이 주는 간지러움을 통하여 어머니 그리고 아들아

보고 싶고. 미안하다 라고. 가을의 하늘 넘어로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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