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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조실(사찰의 큰스님)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인 천운(天雲·사진) 대종사가 지난 14일 오전 광주 향림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64세, 세수 78세. 영결실은 오는 18일 오전 11시 대흥사 천불전 앞에서 거행되며 다비식은 부도전 앞, 분향소는 보현전에 설치돼 있다.
천운 스님은 입적하기 전 문도들에게 '악한 일 행하지 말고 선행을 받들어 실천하라 그리고 마음을 늘 청정하게 수행하면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는 유훈을 남기셨다.
천운스님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1947년 월정사, 1958년 선운사에서 지암스님을 계사로 각각 사미계와 구족계를 받았다.
1900년 후반부터는 대흥사에 머물며 사찰을 중창하고 후학들을 양성했다. 주지를 거쳐 조실을 맡아 남도의 문화와 정취를 통해 사람들의 심성을 맑게 해주고 보다 차원 높은 불교를 전파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스님은 대흥사에서 불교문화를 선양하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기도 했다. 서산대사 의발이 보존된 사찰로 13대 강사와 13대 종사를 배출한 조계종 종원 사찰로 불리는 대흥사는 한동안 침체됐었지만 천운스님에 이르러 다시 한번 승풍을 드높이는 계기를 맞았다.
1996년에는 해남 한듬어린이집을 설립했으며 이외에도 광주광역시에서 향림유치원, 향림사어린이집 등을 설립, 복지를 겸한 어린이 포교로 불교의 위상을 높여왔다.
스님은 호남불교를 일으킨 개척자이며 현대 도심 포교, 불교 교육, 복지불교의 물꼬를 트고 방향을 정립한 선각자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입대했으며 군승이 없는 군에서 불교모임을 이끌며 군내 포교를 담당하기도 했으며 당시 스님으로서는 처음으로 목에 '묵언패'를 걸고 묵언정진해 수좌들의 길잡이가 됐다.
스님은 철저한 수행자였으며 부처님의 올곧은 제자였다. 출가한 이래 조석예불 드리는 것을 거른 적이 없으며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6시까지 참선하고 예불을 모셨다. 좌선, 염불, 다라니까지 빠뜨리지 않았다. 6시15분에 아침 공양을 마치고 1시간 동안 포행을 하고 나면 줄지어 기다리는 신도들을 만나 친절히 상담했으며 점심 공양 후에는 광주불교대학, 사무실, 복지관, 정광학원, 향림원 등을 돌아보는 생활을 입적 전까지 어긴 적이 없었다.
스님은 구례 화엄사, 해남 대흥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교무부장 등을 지냈다. 2001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됐으며 대흥사 조실, 광주 향림사 조실, 정광중·고등학교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향림원장, 광주 우산종합복지관장을 맡고 있었다. 저서로는 '알고 가는 길' '끝없는 행원' '청정해의 깨달음의 길' 등이 있다.
천운스님을 스승으로 모셨던 대흥사 회주 보선스님은 "큰 스님은 평생 교육과 복지포교에 애쓴 분입니다. 절에서도 고아들을 따뜻하게 키우시지만 정광학원을 오늘의 명문학교로 만든 데도 스님의 공이 컸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스님이 찾아오면 다른 인연 따지지 않고 흔쾌히 뒷바라지 해주십니다. 절에서 일하는 종무원 자녀들에게도 교육비를 마련해 주십니다. 한마디로 이 시대의 자비보살이였지요"라며 회상했다.
보선스님은 또 "수행자로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항상 말씀하신 스님은 우리나라 불교 포교와 불교 복지사업의 큰 방향을 정립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