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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설교

[[예배설교]]2018.6.3. "특별한 시간" - 한문덕 목사

작성자심민정|작성시간18.06.03|조회수171 목록 댓글 0

 

특별한 시간

출애굽기 208-11, 이사야서 5813-14

 

한 문 덕 목사

 


[삶과 신앙의 점검]

 

   제가 신학생 시절 매주 드리는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설교하러 오신 목사님께서 강단에 서시자마자 종이 두 장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종이는 반듯하게 여러 번 접었고, 또 하나의 종이는 마구 구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종이를 펼치더니 저희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이 종이라면 여러분은 이 둘 중에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20년 전 내용이지만 제 머릿속에 아직도 그 장면이 그려집니다. 보통 말로만 설교하는 대부분의 목사와 달리 설교의 시작을 일종의 퍼포먼스로 했던 것이 신선했습니다. 물론 복잡한 삶을 두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너무나 단순한 접근이었지만, 그래도 두고두고 저에게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모두 반듯반듯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누구나 구겨진 삶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반듯하게만 직진하며 살게 되지는 않습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굴곡이 있기 마련이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어딘가 반듯한 구석에서부터 비롯됩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혼란은 계속되고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마구 뒤엉킨 실타래를 풀 때 우리가 서둘지 않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실 한 오라기 한 오라기 매만지듯이 우리의 삶이 어느 순간 뒤죽박죽이 되었을 때에도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가 차분히 삶을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열정이 가득 타오를 때도 있지만 정반대로 갑자기 모든 것에 회의가 들면서 허무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울부짖어도 아무런 응답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떠나 어디론가 가버리셔서 메마른 광야에 홀로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밀려 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위기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더 위험한 것은 타성에 젖는 것입니다. 그저 해오던 방식대로 어떠한 변화도 없이, 그냥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지만 거기에서 어떤 감흥이나 새로운 결단이 없고, 적당히 안주하면서 편안하기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다시 신앙의 가장 기본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던 모든 일을 잠시 멈추고, 그저 주님 앞에 나아가 조용히 물어야 합니다. 지난 일들을 떠올려 보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을 바라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지금 해야 할 일과 나중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도 다시 처음부터 물어야 합니다.

 


[생명사랑의 새로운 도약을 생각하며]

 

   올 10월이 되면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한 지 만 3년이 됩니다. 지난 523일 당회에서 제가 장로님들께 말씀 드렸고, 27일 주일 목회운영위원회에서도 살짝 언급했습니다만,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목회를 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저와 여러분이 서로를 알고 적응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생명사랑교회가 창립한 이래 해 오던 것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거의 그대로 해 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똑같이 갈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고 때론 과감한 모험과 도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장기적인 목표와 그 목표에 따른 중단기 계획이 필요하고, 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온 교우들의 합의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6월부터 11월까지 이제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모든 활동을 당회와 함께 다시 점검하려고 합니다. 우리 정관에 명시되어 있는 세 가지 목표 중 첫째 목표 작으나 건강한 교회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으나, 평신도 중심의 사역과 선교 사명에 충실한 교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평신도 중심의 사역의 부분을 집중해서 3-4년의 구체적인 계획을 잡아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설교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하나씩 하겠습니다.

   기초를 잘 다져야 튼튼하고 오래가는 건물을 지을 수 있듯이 우리의 신앙의 기본기를 잘 닦아야 때로 위기가 찾아와도 다시 수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첫째 시간으로 주일 성수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나눠 보려고 합니다.

 


[주일 성수]

   오늘 설교 제목을 특별한 시간이라고 달았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특별한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결단을 동반한 깨달음과 약속의 행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가슴 깊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세상을 창조한 이는 내가 아니기에 모든 존재하는 것의 근원이 되시고, 누구보다도 이 세상을 잘 알고 계시며 큰 섭리 가운데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우리들은 삶의 진정한 의미와 궁극적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겠다.” 그리고 약속해야 합니다. “저 하늘로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한 그 마음 변치 않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그 경지까지 이르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이런 다짐과 약속의 토대 위에 우리는 매주 일요일 하나님과 특별한 시간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동행하시고,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주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늘 우리 곁에 계시는 분이지만, 주일은 더욱 더 주님과 함께 하는 특별한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도 둘 만의 더욱 애틋하고 특별한 시간을 가질수록 그 관계가 더욱 돈독해 지듯이 하나님과의 특별한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모든 지혜의 근원이시고, 사랑의 원천인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그 분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시간을 갈망하면서 그분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반듯해 질 것이지만, 우리가 그분을 멀리하고 내 멋대로, 내 마음 가는 데로, 특별히 이 세상의 물결에 물들어 나도 모르게 욕망에 이끌리는 데로 살다보면 우리의 삶은 구겨진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안식일 준수 계명]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출애굽기의 말씀은 십계명의 일부이고, 우리는 그 중 4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준수 계명의 초기 형태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이렛날은 쉬어라일주일에 한 번은 쉼을 가지라는 이 말은 주 5일 근무가 일상화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그닥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히브리 백성에게 주어진 새로운 율법으로서의 안식일을 지키라는 조항은 해방과 쉼과 자유의 약속이었습니다.

   출애굽기 5장에 보면 애굽의 바로 왕이 얼마나 혹독하게 히브리 백성들에게 일을 시켰는지 잘 나옵니다. 벽돌을 만드는데 재료인 짚을 대주지 않고 스스로 구하도록 하면서 이전과 동일한 양을 생산하게 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겠다고 하면 더 힘겨운 일을 시켜서 제사를 드린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작업량이 감소하면 채찍으로 때리고, 짚이 부족하고, 그것을 구하는 일에 시간이 많이 든다고 정당한 항의라도 하려고 하면 게을러 터진 놈들이라고 하면서 일하기 싫어서 그런 것이라고 윽박을 지릅니다.

   성서는 애굽의 사회경제체제가 히브리 노예들로 하여금 전혀 쉴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합니다. 그런 사회구조 속에서 히브리 백성은 벽돌을 생산하는 하나의 도구였지, 사람답게 살아가는 인격적 존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이렛날은 쉬어라.”라는 초기의 안식일 명령은 인간으로 하여금 노동이 참 기쁨이 되며, 삶의 보람이 되고, 인간의 쉼과 안식을 보장하는 장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서본문은 안식일에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쉼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라는 강력한 요구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5일제가 시행되었다고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참된 의미에서 올바른 쉼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한 만큼 돈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 쉬지 못하고 일하는 이들이 매우 많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쉼 없이 일해야 하는 삶에서 생의 의미를 찾기란 매우 쉽지가 않습니다. 인생을 성찰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한 여유와 사색의 시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한편 쉼 없이 일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착취하는 현상도 일어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일벌레가 되는 것입니다. 성과를 내야하고, 그 성과에 따라서 사회적 존경과 인정이 따르기에 자발적으로 자기가 자기를 몰아치며 일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존엄성을 상실한 노동은 불행을 초래할 뿐입니다.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이렛날은 쉬라는 말씀은 이런 모든 상황에 맞서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쉬는 것을 논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폄하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쉼이야말로 노동의 질을 높이게 하고 참된 안식에서만이 보람 있는 일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에서 우리가 둘째로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은 바로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제가 이런 저런 자리에서 수차례 우리 교우들에게 말씀 드린 것이기도 합니다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삶에는 리듬이 있습니다. 낮에 일하고 밤에 자듯이, 줄기차게 일만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충분한 휴식과 잠이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보장하듯이 우리는 안식의 시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실수하는 존재들이고,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다가 망쳐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자신들이 믿고 있는 대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좋아합니다. 먼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고 그 다음에 그것에 맞는 증거들을 덧붙입니다. 이것을 확증편향이라고 합니다.

   어떤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좀처럼 빠지지 않는 몸무게를 줄이게 위해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언제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갖가지 종류의 스포츠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요가를 하는 사람은 왠지 너무 말라서 별로인 듯 보였고, 보디빌더는 울퉁불퉁한 근육이 너무 동물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테니스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너무 고상한 중산층들의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것이 수영이었습니다. 수영 선수들은 이 남자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그들은 균형 잡힌 우아한 몸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집 근처 수영장에 가서 열심히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엄격한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참 지난 후에 그는 자신이 환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프로 수영 선수들의 몸매가 그토록 완벽한 것은 숱한 연습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그들은 원래 좋은 몸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수영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매일 수영을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좋은 몸매를 갖게 될 수도 있지만 프로 수영 선수는 수영하기에 딱 알맞은 신체적 구조를 타고 났기에 수영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숱한 화장품 광고를 보면서 화장품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원래 아름다운 용모를 타고난 모델들이 화장품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속임수에 쉽게 넘어갑니다.

   후광효과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좋은 현상에 현혹되면 그것으로부터 나머지 전체를 결론짓는 경향을 말합니다. 외모나 사회적 신분, 개인적인 특징들이 어떤 사람의 첫인상을 만드는데, 그 때 그 첫인상이 다른 것을 능가하는 빛을 발하면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다른 전체적인 인상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수십 번의 연구는 특히 외모의 수려함이 사람을 더 다정하고 솔직하고 더 지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결과를 입증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여러 가지 작용으로 인해 다양하게 살펴야 할 여러 요소들을 간과하게 만들어서 객관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일을 망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여러 가지 일이나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자신을 반추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씀으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마지막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오늘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다른 것들과 구별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특별히 하나님과 관련지어서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바로 안식일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 더 구체적으로는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에 깊이 젖는 시간으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존엄성 없는 노동이 불행하듯 정신 없는 휴식은 타락을 불러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종교 전통은 바로 특별한 시간들을 정하고 지켜 왔습니다. 교회에는 교회력이 있고, 매주일 예배를 통해 시간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기도 전통은 아침기도, 한낮기도, 저녁기도를 해 왔고, 그것은 오늘날 아침을 열면서 드리는 기도와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드리는 기도로 권장됩니다. 지난 하루를 돌아보며 영적 일기를 쓰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과 특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성서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목사의 설교와 성서공부를 통해서, 믿음의 형제자매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시간을 정하여 홀로 기도하는 그 때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라는 것은 그러한 시간들을 반드시 기억하고 일부러 만들어 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서의 말씀에는 안식일을 즐거운 날’, 그리고 존귀한 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존귀한 날이기 때문에 귀하게 여겨서 자신의 쾌락을 찾거나, 자기 멋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나옵니다. 대신 주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자신들의 쾌락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더 큰 즐거움과 참된 안식은 더 높고 깊은 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른 즐거움을 찾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이 세상을 살기 위해 단순히 쉬고 즐기고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만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한 주일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현재에서 영원을 만나는 시간이며, 우리들 삶에 하나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지 않고, 우리를 넘어서 계신 그 분이 활약하실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유대 신앙 전통에서 대대로 안식일은 창조의 완성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즉 안식일이 평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평일이 안식일을 위해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안식일은 삶의 막간이 아니라 삶의 절정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오늘날 다양한 삶의 환경에서 매 주일 교회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백성으로의 삶을 온전히 누리려면 주기적으로 하나님과의 특별한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주일 생명사랑 신앙공동체와 함께 예배하며 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습니다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반드시 그런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그런 시간을 갖지 않는 사람에게 영적인 성장은 없습니다. 내 삶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갈팡질팡 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특별한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용택 시인의 <유월>이라는 시를 읽어 드릴까 합니다. 이 시를 들으시면서 여러분도 하나님과의 특별한 시간을 만드시는 유월이 되시길 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 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주님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 아침! 우리 생명사랑 식구들이 당신 앞에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과 특별한 시간 만나길 원합니다. 우리 삶의 뿌리가 되시고, 생수로 우리의 목을 축이시고, 생명의 떡으로 우리를 먹이시니 감사드립니다. 혼탁한 세상에 우리가 당신의 백성으로 중심을 잡고 살게 하시고, 늘 우리의 시간들을 성찰하게 하소서.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매 순간을 새롭게 체험하게 하소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느끼며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당신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없애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온갖 유혹과 덫에서 자유롭게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들고 나옵니다. 우리를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받으시고, 우리가 정성껏 준비하여 드리는 예물 또한 받아 주소서. 이 예물을 통하여 주님 영광 받으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새롭게 힘을 얻고 활기를 얻어 새로운 비전과 에너지와 충족함을 가지고 세상으로 기쁘게 나아가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몸인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세상으로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당신의 삶에 하나님이 좌정하실 빈 공간을 마련해 두십시오. 그곳에 하나님과 만나는 특별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거기에서 생명의 삶이 피어오를 것입니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주님과의 깊은 친교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힘 있게 하루를 살아가는 생명사랑가족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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