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 현대 일본인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우리 일상은 텔레비전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로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자신과 텔레비전과의 관계를 바라보고, 필요하다면 플러그를 뽑을 용기도 가져야 한다.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절반이 자기 방과 자기만의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식사를 할 때 텔레비전을 켜 놓고 있다.
시청 시간을 살펴보자. 한 여론 조사는 1980년대 말부터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연령대의 남녀를 평균한 하루 시청 시간은 3시간 45분에 이른다. 여기서 잠시 계산을 좀 해 보면 이렇다. 사람이 80세까지 산다고 쳤을 때, 이 정도의 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계속 본다고 하면 인생의 12년 6개월을 텔레비전만 보면서 보내는 셈이 된다. 그 가운데 우리가 광고를 보게 되는 시간만 따로 계산해 보면 1년 9개월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기업은 많은 광고비를 투자해서 자사의 서비스와 물건을 소리 높여 팔려고 한다. 어째서 소리가 높아지는가 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 텔레비전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불필요한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필요하다고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 광고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삶 가운데 1년 하고도 9개월에 걸쳐 그것을 들여다봐 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텔레비전에 좌우되는 것은 광고를 보고 있는 시간만이 아니다. 우리가 12년 6개월에 걸쳐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우리가 따라해야 할 겉모습,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해줄 갖가지 물건들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계속 주입시키고 있다. 텔레비전은 우리들 내부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필요를 만들고 욕망을 자극시키고 이를 계속 확대시키는 장치인 것이다. 그러한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더 바쁘게 일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가속도로 성장해야 하는 이 경제를 떠받칠 수 있다. 텔레비전과 우리의 사귐은 단지 12년 6개월에 그치지 않는다. 일생의 대부분을 텔레비전의 주술 속에서 보내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60세 이상 노인의 TV 시청 시간은 하루에 다섯 시간이 넘는다. 현재 고령화 사회의 도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문제는 고령화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노인들이 텔레비전 앞에 앉은 채 장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상징되는, 사회의 조직과 문화 양상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지난 날, 사회적인 지혜의 보고이자 문화 전승의 담당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던 노인이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오락거리의 일방적인 수용자로 전락해 버렸다. 바로 여기에 우리 문화의 쇠약함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슬로 라이프라는 말을 자주 써 가며 '여유롭고도 느긋하게 보내는 노후'를 팔려고 하는 기업과 미디어가 많다. 그러나 대형 모니터 앞에서 장시간 텔리비전을 보는 삶이 슬로 라이프라고는 생각지 말자. 진짜 슬로 라이프는 자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활기차고도 역동적인 생활 방식에 있을 것이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