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권재구의발제老子鬳齋口義發題」
老子姓李氏, 名耳, 字伯陽. 以其耳漫無輪, 故號曰聃. 楚國苦縣人也. 仕周, 爲藏室史.
노자老子의 성姓은 ‘이李’이고, 이름은 ‘이耳’이며, 자字는 ‘백양伯陽’이다. 그 귀가 크고漫 넓었는데無輪, 따라서 “담聃”이라 불리고 일컬어졌다.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루이현鹿邑縣) (여향術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다. 주周나라 관리였는데, (수守)장실藏室에서 사(史; 천문天文·점성占星·성전聖典)를 담당했다.
當周景王時, 吾夫子年三十. 嘗問禮於聃. 其言婁見於禮記. 於夫子爲前一輩.
모름지기, 주나라 경(景, 재위在位 BC.545~520)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던) 때, 우리 부자(夫子; 공자孔子, BC.551~BC.479)는 서른 살이었다. 모름지기, (그 때, 우리 부자는) 노자聃에게 예禮에 대해서 물었다. 그 이야기가 『예기禮記』에 드물게 나온다. 따라서 (모름지기, 노자의 연배는 우리) 부자보다 한 세대輩가 앞선다.
語曰: 述而不作. 竊比於我老彭. 太史公謂: 夫子所嚴事. 亦非過與也.
『논어(論語; 語)』는 일컬었다. “(나는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이어지는 바, 도道·무위無爲·덕스러움德·자연自然,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기술述할 뿐, (일부러 일삼아) 창작作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았던) 노자老에 비교되고竊, (아주 먼 옛날, 요堯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던 때, 저절로 그러한 바에 따라 살았던) 팽조(彭祖; 彭)에 비교된다比(「술이述而」).” (따라서)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 BC.145경~BC. 85경)은 일컬었다. “(우리) 부자는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나) 일부러 일삼는事 바에 엄했다. 따라서 (우리 부자는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에) 치우치지過 않았고, (일부러 일삼는 바와) 더불어 하지與 않았다.”
及夫子沒後百二十九年, 有周太史儋, 嘗見秦獻公, 言離合之數. 或曰儋卽老子. 非也. 儋與聃同音, 傳者訛云.
(우리) 부자가 돌아가고, 129년이 지난 다음, 주나라 태사(太史; 고대 중국 기록 담당 관리) ‘담儋’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모름지기 진秦나라 헌공(獻公, 재위 BC.384~BC.362)에게 나아가, 패왕霸王이 되는 (변법變法·자강自强, 합종合從·연횡連橫의) 책략離合之數을 아뢰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일컫게 되었다. “(태사) ‘담’이 곧 노자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태사 담’을 부를 때의) “담儋”과 (‘노자’를 부를 때의 “담聃”이 발음이 (서로) 같았는데, (따라서 태사공에 이르기까지 ‘노자聃’가 곧 ‘태사 담儋’인 것으로) 잘못 전해지게 되었다.
周室旣衰, 老子西遊. 將出散關, 關令尹嬉, 知爲異人, 强以著書. 遂著上下篇, 五千餘言, 而去.
주나라 왕실(의 기운)이 바야흐로 사그라들자, 노자는 서쪽으로 나아갔다. 바야흐로 국경(國境; 散關)에 이르자, 국경關을 지키는 관리令였던 윤희尹嬉가 (노자의) 사람됨이 남다름을 알아차리고, (자신에게) 책書 써 주기를 일부러 일삼았다强. (노자는) 바야흐로 상편과 하편, 오천 여 자(字; 言)를 (윤희에게) 써 주고, (국경을) 떠나갔다.
其上下篇之, 中雖有章數, 亦猶繫辭上下.
(그 책) 그것은 (모름지기 도道·무위無爲를 상징하는) 상편, (덕스러움德·자연自然을 상징하는) 하편으로 나뉘고之, (그) 가운데가 모름지기 (상편이 서른 일곱, 하편이 마흔 넷의) 장수章數를 가지는데, (그것이 그러한 그것은) 또한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繫辭)」(이 모름지기 본질體·음陰·하늘天·상象을 상징하는) 상전(上傳; 上), (작용用·양陽·땅地·수數를 상징하는) 하전(下傳; 下)(으로 나뉘고, 그 가운데가 모름지기 상전이 열 둘, 하전이 열 둘의 장수를 가짐)과 비슷하다.
然河上公, 分爲八十一章. 乃曰: 上經法天, 天數奇, 其章三十七. 下經法地, 地數偶, 其章四十四.
따라서 하상공河上公은 (그 책을) 여든 한 개 장으로 나누고 풀이했다爲. 따라서 (하상공은) 일컬었다. “(그) 상경(上經; 上篇)은 ‘하늘’을 법칙으로 삼고法, (그) ‘하늘’은 ‘홀奇(의 상象 곧 노자가 마흔 두 번째 장에서 일컬은 “하나一”를 상징하고, 그 “하나一”는 태극太極)’을 이치로 삼는데數, (따라서 내가 나누고 풀이하는 상편은) 그 장이 서른 일곱 개이다. (그) 하경(下經; 下篇)은 ‘땅’을 법칙으로 삼고, (그) ‘땅’은 ‘짝偶(의 상象 곧 노자가 마흔 두 번째 장에서 일컬은 “둘二”을 상징하고, 그 “둘 二”는 음陰·양陽)’을 이치로 삼는데, (따라서 내가 나누고 풀이하는 하편은) 그 장이 마흔 네 개이다.”
嚴遵, 又分爲七十二. 曰: 陰道八, 陽道九. 以八乘九, 得七十二. 上篇四十, 下篇三十二.
(따라서) 엄준嚴遵은 또한 (그 책을) 일흔 두 개 장으로 나누고 풀이했다. (따라서 엄준은) 일컬었다. “‘음陰’(의 극점)은 (둘, 넷, 여섯, 여덟 중) ‘여덟’을 상징하고道, ‘양陽’(의 극점)은 (하나, 셋, 다섯, 일곱, 아홉 중) ‘아홉’을 상징한다. (그런데 ‘음陰’의 극점을 상징하는) ‘여덟’과 (‘양陽’의 극점을 상징하는) ‘아홉’을 곱하면(乘; 相生·相勝), 일흔 둘이 된다. (따라서 내가 나누고 풀이한 그 책의) 상편은 (그 장이) 마흔 개이고, 하편은 (그 장이) 서른 두 개이다.”
初非本旨. 乃至遂章爲之名, 皆非也.
(그러나 그 책의 상편과 하편의 장을 나누고 풀이한 하상공이나 엄준의) 위初(와 같은 취지)는 (노자의) 본래本 취지旨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하상공이나 엄준과 같이, 일부러 일삼아 상편과 하편의) 장을 나누거나(遂; 분별), 풀이해서 가름(名; 분별)에 이르는 일들은 모두 (노자의 본래 취지가) 아니다.
唐元宗改定章句, 以上篇言道, 下篇言德, 尤非也.
(또한) 당唐나라 원종(元宗; 현종玄宗, 재위 712~756)은 (그 책의 상편과 하편의) 장을 바꾸고改 (장의) 글자句를 고쳐서定, “상편은 도道에 대한 일컬음이고, 하편은 덕스러움德에 대한 일컬음”이라 적었는데, (그것은) 더욱 더 (노자의 본래 취지가) 아니다.
今傳本多. 有異同. 或因一字, 而盡失其一章之意者. 識眞愈難矣.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본本이 많(이 있)다多. (그러나 위와 같은 이유를 말미암아, 그 장의 글자의) 다름과 같음이 (또한 많이) 있다有. 따라서 (그) 한 글자字(의 다름)를 말미암아, 따라서 그 한 장의 뜻이 망가뜨려지거나失 어그러뜨려지게 된다盡. (따라서 그 책의 상편과 하편, 그리고 상편과 하편의 가운데가 가지는 장을 통해서 노자가 전하고자 하는 뜻, 다시 말하면 노자의) 종지(宗旨; 眞)를 알아차리기識가 더욱 더 어려워지게 된다.
大抵, 老子之書, 其言皆借物以明道. 或因時世習尙, 就以論之, 而讀者, 未得其所以言. 故晦翁, 以爲老子勞攘.
모름지기, 노자의 책, 그 (상편과 하편, 그리고 상편과 하편의 가운데가 가지는 장의) 일컬음은 모두 (무위無爲의 본성性을 말미암아 생기고 자라며 시들고, 감각하며 지각하고 의지하며 행위하는用) 만물(物; things·event)에 대한 상징借이자, (자연自然의 본질體을 말미암아 움직이고 일삼는用) 도道에 대한 상징明이다. 따라서 (무위의 본성이나 자연의 본질을 말미암지 않은 채, 다시 말하면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는) 시대時, 세상世, 습속習, (그리고 그러한 그것을) 높이 받듦을 말미암은 채, (노자의 책) 그것을 논하는 데 이르거나, (그것을) 읽는 (데 이르는) 사람은 그 (모든 일컬음이) 뜻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리지得 못하게 된다. 따라서 주자(朱子; 晦, 1130~1200)는 노자(의 책 읽기)를 수고로워했고, (따라서 그렇게 하기를) 물리쳤다.
西山謂: 其間有陰謀之言. 盖此書爲道家所宗. 道家者, 流過爲崇尙. 其言易, 至於誕. 旣不足以明其書.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 1178~1235)은 일컬었다. “그 (책의 상편과 하편, 그리고 그 책의 상편과 하편의 장) 가운데에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위한 의학醫學·약학藥學·화학化學·연금술鍊金術과 방술方術을 중시하는) 도교(道敎; 陰謀)에서 (주로) 일컫는 (예를 들면 7장의 “장생長生”, 6장의 “불사不死”, 50장의 “섭생攝生”, 55장의 “익생益生”, 75장의 “구생求生” 등과 같은) 글자言가 들어있다. 따라서 그 책은 도교道家에서 (주요) 경전宗으로 일삼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도교道家의 무리는 (그 글자에) 치우친 채流, 지나치게過 받들고 높이기를 일삼았다. (따라서) 그 글자는 (치우쳐진 채, 지나치게) 꾸며지고 가꾸어지게 되었으며易, (따라서 그 글자는) 실상에 어긋나고 벗어나는 데誕 이르게 되었다. 모름지기, (도교의 무리는) 그 책(의 본래 취지를) 알아차리고 실천하는 데明 부족했다.”
而吾儒又指以異端. 幸其可非而非之. 亦不復爲之參究.
또한, 우리 유가(儒家; 儒) 역시 (그것을) 실상에 어긋나고 벗어나는 책異端으로 여겼다指. (따라서 그것은) “옳지 못한 바非를 담고 있다”거나 “(따라서 그것을 읽는 일은) 옳지 못하다非”라고 말하기를 즐겼다. (따라서 그것의 본래 취지를) 또한 돌이켜서復 살펴내거나參 일삼아서爲 밝혀내지究 못했다.
前後注解雖多, 往往皆病於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것에 대한) 풀이가 모름지기 많았지만, 흔히들 모두가 이같은 흠病이 있었다.
獨穎濱起而明之. 可謂得其近似. 而文義語脉, 未能盡通. 其間室礙亦不少.
오로지 영빈(穎濱; 소철蘇轍, 1039~1112)이 (노자의 본래 취지를) 돌이켜 살펴서起 그것을 밝혀냈다. “그것에 가깝고 비슷하게 밝혀냈다” 일컬을 만하다. 그러나 글文의 뜻과 말語의 맥脉이 아직 (그것과 더불어) 어우러짐이나 아우러짐通을 (극점까지) 다하지 못했다. (노자의 글의 뜻과 말의 맥, 영빈의 글의 뜻과 말의 맥) 그 (둘) 사이의 떨어짐室과 멀어짐礙이 또한 적지 않다.
且謂其多與佛書合. 此卻不然.
그런데 (흔히들 모두가) 일컫는다. “(영빈의 글의 뜻과 말의 맥) 그것이 불교佛의 경전書과 더불어 어우러지고 아우러짐合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莊子宗老子者也. 其言實異於老子. 故其自序以生與死與爲主. 具見天下篇所以多合於佛書.
(예를 들어) 장자莊子는 노자(의 본래 취지)를 근본宗으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일컬음(言; 글의 뜻, 말의 맥)은 노자(의 그것)에 어긋나거나 벗어나지 않았지만實, (노자의 그것과)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자의 책, 『장자莊子』) 그 서문自序은 “생生은 사死와 더불어 (있고 더불어) 하며, (생生은) 일삼음爲과 움직임主과 더불어 (있고, 더불어) 한다”라고 일컫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천하편天下篇」을 살펴볼 때, (그것은 오히려 『장자』가) 불교佛의 경전書과 (더불어) 어우러지고 아우러짐合이 많은 까닭이 된다.
若老子所謂: 無爲而自化, 不爭而善勝, 皆不畔於吾書. 其所異者, 特矯世憤俗之辭. 時有大過耳. 伊川曰: 老氏谷神一章最佳!
모름지기, 노자가 일컬은 바, (예를 들어 37장의) “무위無爲”와 “자화自化”, (68장의) “부쟁不爭”과 “선승善勝” (등)은 모두 우리 (유가)의 경전(書; 일컬음)에 어긋나거나 벗어나는 바畔가 아니다. 그 차이나는 점은 (노자의 일컬음이) 보다 더 (당시의) 세상(世; 다스리는 사람, 다스리는 모습 등)을 바로 잡(기 위해 강하게 나무랐)고, (당시의) 풍속(俗; 다스림을 받는 사람, 살아가는 모습 등)을 (바로 잡기 위해 강하게) 나무랐던憤 일컬음辭이라는 점(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나무람은) 당시에 있었던 큰 흐름過일 뿐이다. (따라서) 이천(伊川, 정호程頤, 1033~1107)은 일컬었다. “노자老氏의 (6장의) ‘곡신谷神’의 일컬음一章은 참으로 아름답다!”
胡文定曰: 老氏五千言, 如我無事, 我好靜, 我有三寶, 皆之論也.
(그런데) 호문정胡文定은 일컬었다. “노자老氏의 오 천 여 마디言, 예를 들어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我 일부러 일삼는 바事가 없어야 한다無(57장)’,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我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이 마음이 텅 빈) 고요함靜을 좋아해야 한다(57장)’,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我은 (자애로움慈, 검소함儉, 감히 천하의 앞이 됨을 일삼지 않음不敢爲天下先의) 세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67장)’, (그것은) 모두 이것에 대한 이야기論이다.”
朱文公亦曰: 漢文帝曺參, 只得老子皮膚. 王導, 謝安, 何曾得老氏妙處? 又曰: 伯夷微似老子. 又曰: 晉宋人多說老莊, 未足盡莊老實處.
(또한) 주자(朱文公; 朱子)는 일컬었다. “(예를 들어) 한漢나라 문文임금(재위BC.180~BC.157) 때, (승상丞相으로 있던 3년 동안 술만 마셨지만, 고高임금 때, 승상이었던 소하蕭何가 만든 법령을 따름으로써, 정치와 행정을 안정시켰던) 조삼曺參, (그러나 그는) 단지 노자老子(가 쓴 책이 전하고자 한 본래 취지인 도道·덕스러움德·무위無爲·자연自然)의 껍질皮과 살갗膚을 알아차리고 실천했을得 뿐이다. (재상宰相으로 있었지만, 매사에 ‘좋아, 좋아’라는 말로써, 대립과 긴장을 완화하고, 이질적 요소를 포용함으로써, 동진東晉의 세련된 문화를 탄생시켰던) 왕도(王導 276~339),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정朝廷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채, 회계산會稽山 동쪽에 집을 지어, 왕희지王羲之, 지둔支遁 등과 교류하며 풍류를 즐겼던 동진東晉의) 사안(謝安, 320~385), (그러나 그들이) 또한 어찌 노자老氏(가 쓴 책이 전하고자 한 본래 취지인 도道·덕스러움德·무위無爲·자연自然)의 오묘한妙 이치(處; 속·뼈, 극점)를 알아차리고 실천했다得 하겠는가?” (주자는) 또한 일컬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 문왕文王에 대한 아들로서의 효孝와 군주 주紂임금에 대한 신하로서의 인仁을 저버린 무武임금의 상(商; 殷)나라 정벌을 부끄러워하며,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무임금이 세운 주周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은 채, 고사리를 따먹다 굶어죽은) “백이伯夷가 노자老子(가 쓴 책이 전하고자 한 본래 취지인 도道·덕스러움德·무위無爲·자연自然의 오묘한 이치를 극점까지 알아차리고 실천한 모습)에 비교적微 가깝다.” (주자는) 또한 일컬었다. “진晉나라와 송宋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노자老와 장자莊(가 쓴 책의 편篇과 장章)를 (나누고) 풀이했지만, (그들이 나누고 풀이한 것들은) 실정에 어긋나거나 벗어나지 않는實 노자老와 장자莊(가 쓴 책이 전하고자 한 본래 취지인 도道·덕스러움德·무위無爲·자연自然의 오묘한) 이치處를 극점까지 살펴내거나 밝혀냈다盡고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然則前輩諸儒, 亦未嘗不與之. 但以其借論之語, 皆爲指實言之. 所以未免有所貶議也.
이와 같이, (노자가 쓴 책의 상편과 하편, 그 가운데가 가지는 장들을 나누고 풀이했던) 앞선 사람들前輩이나 여러 유학자들諸儒은 모두亦 모름지기嘗 (노자가 쓴 책이 전하고자 한 본래 취지인 도道·덕스러움德·무위無爲·자연自然의 오묘한 이치의 극점을 살펴내거나 밝혀냄) 그것과 더불어 하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위와 같은 이야기) 그것을 빌어서 (노자가 쓴) 글語에 대해 논論했을 뿐이며, 모두가 (위와 같은 이야기) 그것이 (노자가 쓴 글의) 실정에 어긋나거나 벗어나지 않는實 이야기言로 여겼을指 뿐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노자가 쓴 책이 전하고자 한 본래 취지인 도道·덕스러움德·무위無爲·자연自然의 오묘한 이치의 극점, 그것을) 살펴내거나 밝혀내지 못한 채, (모두가 노자가 쓴 책을 실정에 어긋나거나 벗어나는 책으로) 낮추어貶 평議하는 바가 있었다.
此, 從來, 一宗, 未了款案. 若硏究推尋, 得其初意.
이와 같이, 옛날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노자가 쓴 책이 전하고자 한 본래 취지인 도道·덕스러움德·무위無爲·자연自然의) 오묘한(一; 큰) 이치(宗; 종지)는 (그 극점이) 살펴지거나款 밝혀지지案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자가 쓴 책의 상편과 하편, 그 가운데가 가지고 있는 장들을) 살펴서硏 헤아리고究 미루어推 밝힌다면尋, (노자가 전하고자 한 도道·덕스러움德·무위無爲·자연自然의) 본래初의 취지意를 알아차리고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眞所謂: 千載而下, 知其解者, 旦暮遇之也.
진실로 일컫는 바, (노자의 책은) ‘천년千’ 전에 쓰여져載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下, (따라서 ‘지금’에 살고 있지만, ‘천년’ 전에 쓰여진) 그 (책이 전하고자 한 도道·덕스러움德·무위無爲·자연自然의 본래 취지를) “알아차리고知 실천하는解 사람은 (그 ‘천년’의 시간이) 아침旦을 보내자 저녁暮을 만나듯,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知其解者,是旦暮遇之也: 『장자』 「제물론齊物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