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실산책

성현영의 노자의소 : 13. 총욕寵辱

작성자바랑|작성시간22.11.16|조회수19 목록 댓글 1

13. 총욕寵辱

 

 

寵辱章所以次前者, 前章, 正辯根塵等法. 擧體不眞. 故次, 此章, 明身及榮華適爲患本. 就此一章, 分爲三別. 第一, 總言寵辱貴患, 不殊. 第二, 假設疑問, 辯其所以. 第三, 格量貴愛, 顯其得失.

총욕寵辱 장이 앞 장 다음에 놓이게 된 까닭은 앞 장이 뿌리됨티끌됨모습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뿌리됨저절로 그러한) 본체(로서 참되)지만, (티끌됨일부러 일삼은 바로서) 참되지 않음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장이 앞 장) 다음에 놓이게 되었는데, (따라서) 이 장은 설명한다. “‘몸’이 ‘영화로움’에 이름은 ‘환란’을 만남이자, (그) 근원일삼음이다.” 이 한 장을 살피건대, 세 문단으로 나뉘고 갈린다. 첫 번째 문단, 결론지어 설명한다. “‘총애를 받음’과 ‘욕됨을 당함’에 대한 ‘귀하게 여김’과 ‘환란으로 여김’이 차이나면 안 된다.” 두 번째 문단, 그 까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답변한다. 세 번째 문단, “(‘몸’을) 귀하게 여김”과 “(‘몸’을) 아낌”(의 결과)에 대해 따지고 헤아리는데, (다시 말해) 그 득실에 대해 설명한다.

 

 

第一, 總言寵辱, 貴患不殊.

첫 번째 문단, 결론지어 설명한다. “‘총애를 받음’과 ‘욕됨을 당함’에 대한 ‘귀하게 여김’과 ‘환란으로 여김’이 차이나면 안 된다.”

 

寵辱若驚.

총애를 받거나 욕됨을 당하거나 똑같이 두려워하라.

寵, 爲榮愛之名. 辱, 是戮恥之稱. 若, 如也. 驚, 恐也. 言人得寵, 則逸豫喜歡, 遭辱, 則怵惕憂恚. 故得寵, 心驚喜, 遭辱, 心驚怖. 喜怖雖異, 爲驚卽同. 故言若也. 然喜怖之情, 皆非眞性者也. 是以達者, 譬窮通於寒暑. 比榮辱於儻來. 生死不撓於神, 有何貴賤之能驚也.

“총寵”은 영화롭게 되거나 아낌을 받는다는 뜻이다. “욕辱”은 형벌을 받거나 창피를 당한다는 뜻이다. “약若”은 같게 한다는 뜻이다. “경驚”은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사람들은 영화롭게 되거나 아낌을 받으면 일부러 일삼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만, 형벌을 받거나 창피를 당하면 일부러 일삼아 걱정하거나 슬퍼한다. 그러나 영화롭게 되거나 아낌을 받으면 ‘마음’이 (일부러 일삼아 즐거워하거나) ’기뻐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형벌을 받거나 창피를 당하면 ‘마음’이 (일부러 일삼아 슬퍼하거나) ‘걱정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해야 한다.” ‘기뻐하는 것’과 ‘걱정하는 것’(의 대상)은 다르지만, (‘마음’이) “두려움”을 일삼는 것은 같게 해야 한다. 따라서 일컬었다. “같게 하라.” 왜냐하면, (일부러 일삼아) ‘기뻐하거나’ ‘걱정하는’ 감정(; 마음)은 모두 (저절로 그러한) 참된 본성(;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된 본성을) 알아차리고 실천하는 사람은 (영화롭게 되거나 아낌을 받는 것에 ‘마음’을) 다하고 대하는 모습이 추위와 더위(에 ‘마음’을 다하고 대하는 모습)에 비유된다. (다시 말해, 아낌을 받거나) 영화롭게 되고 형벌을 받거나 창피를 당하는 것(에 ‘마음’을 다하고 대하는 모습)이 (추위와 더위와 같이) 저절로 그러하게 (가고) 오는 것(에 ‘마음’을 다하고 대하는 모습)에 비유된다. 삶과 죽음이 (저절로 그러한) 신령스러운 바(神; 마음)를 어지럽히지 못하는데, 어찌 (일부러 일삼은) 귀하게 여겨짐이나 천하게 여겨짐이 (그를) “두렵게 하겠는가.”

 

貴大患若身

큰 환란을 귀하게 여김이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김)과 같게 하라.

 

貴, 謂爵位也. 亦是自貴己身也. 大患, 謂煩惱老病等也. 言凡夫, 但知矜貴此身. 而惡大患. 不知大患, 卽是我身. 多求資養. 終歸滅壞. 故貴身, 卽是貴患. 惡患, 卽可惡身. 爲貴與大患, 俱以身爲本. 故言若也.

“귀하게 여기는 바貴”란 신분이나 직위를 뜻한다. 또한, 일부러 일삼아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김을 뜻한다. “큰 환란大患”이란 늙음이나 병듦 등의 근심거리를 뜻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거나 우쭐할 줄만 안다. 따라서 “큰 환란”을 미워하기만 한다. “큰 환란”이 바로 자신의 “몸”임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의 “몸”을) 일부러 일삼아 구해서 먹이고 기른다. (따라서) 마침내 늙어서 사라짐이나 병들어 무너짐으로 되돌아간다. 요컨대, (일부러 일삼아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김”은 바로 (큰) “환란”을 “귀하게 여김”이다. (큰) “환란”을 미워함은 바로 (일부러 일삼아 자신의) “몸”을 미워함이다. “큰 환란”을 “귀하게 여기거나” 일삼음이 모두 (일부러 일삼는 자신의) “몸”을 근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일컬었다. “(귀하게 여김이) 같게 하라.”

 

第二, 假設疑問, 辯其所以.

두 번째 문단, 그 까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답변한다.

 

何謂寵辱

무엇 때문에 총애를 받거나 욕됨을 당하거나 똑같이 두려워하고, 큰 환란을 귀하게 여김이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김과 같게 해야 하는가?

 

假設疑問也.

의문을 제기한다.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총애받음’은 (천한 바나) ‘아래’로 삼기에 충분하기 때문인데, (따라서) 그것을 얻더라도 두려운 듯해야 하고, 그것을 잃더라도 두려운 듯해야 하는 것이다.

 

解釋其義也. 世情顚倒, 以寵爲上. 惠心觀照, 足爲鄙下. 何者? 爲得寵, 心驚喜. 失寵, 心驚怖. 此之兩驚, 本由一寵. 故足爲下也.

그 의미를 해석한다. 세상의 마음은 뒤집혀 있는데, 따라서 “총애받음”을 (귀한 바나) ‘위’로 삼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마음으로 살피고 비추건대, (“총애받음”은) 천한 바나 ‘아래’로 삼기에 충분하다. 어째서 그런가? “총애받음”을 일삼거나 “얻게 되면”, (저절로 그러한) 마음(일부러 일삼아) “두려워하거나” 기뻐하게 된다. (반대로) “총애받음”을 “잃어버리게 되면”, 마음이 “두려워하거나” 슬퍼하게 된다. 이것이 (“총애받음”을 일삼거나 “얻음”과 “잃어버림”에 대해) 똑같이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총애받음”을 천한 바나) ‘아래’로 삼기에 충분한 것이다.

 

是謂寵辱若驚

이것이 총애를 받거나 욕됨을 당하거나 똑같이 두려워함의 의미이다.

 

結成寵辱之義.

“총욕약경寵辱若驚”의 의미에 대해 결론짓는다.

 

何謂貴大患若身

무엇 때문에 큰 환란을 귀하게 여김이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김)과 같게 해야 하는가?

 

假設問.

의문을 제기한다.

 

吾所以有大患, 爲吾有身

내가 큰 환란을 가지게 되는 까닭은 내가 가진 몸을 일부러 일삼기 때문이다.

 

此答前問也. 執著我身, 不能忘遣, 爲身愁毒, 卽是大患. 故知貴我身者, 與貴患不殊也. 故西昇經云, 身爲惱本. 痛癢寒溫. 吾拘於身, 知爲大患. 卽其事也.

이것은 앞에서 제기한 의문에 대한 답변이다. 자신의 “몸”에 집착하고, (그러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몸”에 시름과 독毒을 일삼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큰 근심거리”이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일부러 일삼아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김이 큰) “근심거리”를 (일부러 일삼아) 귀하게 여김과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서승경西昇經』은 일컬었다. “(일부러 일삼은) 몸은 (큰) 근심거리의 근원이 된다. (왜냐하면, 일부러 일삼은 몸은 큰 근심거리를) 찔러서 아프게도 하고 긁어서 간지럽게도 하며, 얼려서 차갑게도 하고 녹여서 따뜻하게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몸에 집착하기 때문에 (나에게) 큰 근심거리가 일삼아지게 됨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앞에서 제기한 의문에 대한) 답변이다.

 

及吾無身, 吾有何患!

내가 (일부러 일삼는) 몸(을 가짐)이 없음에 이르렀는데, 내가 환란(을 가짐)이 어찌 있겠는가!

 

只爲有身, 所以有患. 身旣無矣, 患豈有焉? 故我無身, 患將安託? 所言無者, 坐忘喪我. 隳體離形. 卽身無身. 非是滅壞. 而稱無也.

(일부러) “몸”을 일삼거나 가짐이 (큰) “환란”을 가짐의 원인이다. (일부러) “몸”(을 일삼거나 가짐)이 이미 없는데, (큰) “환란”(을 가짐)이 어찌 있겠는가? 다시 말해, 내가 (일부러) “몸”(을 일삼거나 가짐)이 없는데, (큰) “환란”이 장차 어찌 (나의 에 자신을) “맡기겠는가?” 덧붙여, “무無”는 (잠잠하게) 앉아서 (일부러 일삼는 자신의 ) 잊어버리고 (일부러 일삼는 을 가진) 자신을 죽인다, (일부러 일삼는 을 가진) 자신을 무너뜨리고 (일부러 일삼는 자신의) 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무無”는 (“몸”을) 죽여서 없앴다거나 (“몸”이 병들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 일삼는 데 있어서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을 일컫는다.

 

第三, 格量貴愛, 顯其得失.

세 번째 문단, “(‘몸’을) 귀하게 여김”과 “(‘몸’을) 아낌”(의 결과)에 대해 따지고 헤아리는데, (다시 말해) 그 득실에 대해 설명한다.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자신의) 몸을 천하처럼 귀하게 여기면, 천하를 잠시 맡길 수 있다.

 

不知身是大患, 矜而貴之, 自貴其身, 恒欲陵物. 如此之人, 適可暫寓於世間, 不得久視於天下.

(일부러 일삼는) “몸”이 “큰 환란”임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몸”에) 우쭐한 채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게 되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긴 채 언제나 타인(의 “몸”)을 업신여기거나 그렇게 하고자 하게 된다. (따라서) 그와 같은 사람은 세간에 ‘잠시’ 머무름에 이를 수는 있지만, “천하”에 ‘오래’ 보여짐을 얻을 수는 없다.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천하를 자신의 몸처럼 아끼면 천하를 오래 맡길 수 있다.

 

寄, 是暫時寄寓. 託, 謂永相付託. 言能保愛己身, 不輕馳騖, 謙以自收. 雌而順物者, 則可以託付於天下. 故德經云, 自愛, 不自貴也.

“기寄”는 ‘잠시’ 맡겨서 머물게 함을 뜻한다. “탁託”은 ‘오래’ 주어서 맡김을 뜻한다. 비유컨대,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몸”을 아끼는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몸”을) 가벼이 치달아 달리게 하지 않고, 겸손하게 스스로를 거두어들인다. (따라서) 암컷처럼 타인을 따르는 사람은 천하를 (‘오래’) 주어서 맡길 수 있다. 따라서 『덕경德經』은 일컬었다. “스스로를 아끼지만,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1.16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
    겨울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