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此三者以爲文, 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임금이 일부러 일삼은) 지혜로움을 끊어내고, (그것을) 떠나보내면, 백성이 백배나 이롭게 되고, (임금이 일부러 일삼은) 인仁을 끊어내고, (일부러 일삼은) 의義를 떠나보내면, 백성이 효성스러움과 자애로움을 되돌이키게 되며, (임금이 일부러 일삼은) 기교를 끊어내고, (일부러 일삼은) 이로움을 떠나보내면, (백성이) 훔치고 빼앗는 바가 없어지게 된다, (요컨대, 일부러 일삼은 지혜로움, 일부러 일삼은 인仁과 의義, 일부러 일삼은 기교와 이로움) 이 3가지는 일부러 일삼은 겉치레로서, (임금이) 천하를 다스리기에 부족한 바이다. 따라서 (임금은 천하의 백성이 저절로 그러한 속바탕으로) 모여드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하는데, (따라서 임금은 천하의 백성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이) 소박한 바를 살피게 하고,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이) 투박한 바를 품게 하며,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을) 사사로이 여기는 바를 줄이게 하고,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을)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를 줄이게 해야 한다.
此, 亦猶上章之意.
이 장은 앞 장의 뜻을 (더불어) 같이 한다.
聖, 知也. 通也. 智慧出, 而詐僞興. 故欲絶聖去智. 詐息, 則害止. 害止, 則利倍.
(절성기지絶聖棄智에서) 성聖은 (일부러 일삼은) 지혜로움이다. (일부러 일삼아 알아차리는 바와 더불어) 어우러지는 바이다. (일부러 일삼은) 지혜로움이 생겨나면, (일부러 일삼아) 속이고 속이는 바가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은) 지혜로움을 끊어내고, (일부러 일삼은) 지혜로움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러 일삼아 속이고) 속이는 바가 멈춰지게 되면, 해로움이 멈춰지게 된다. 해로움이 멈춰지게 되면, 이로움이 갑절이 되게 된다.
以爲文, 不足. 故令有所屬. 兩句, 未詳. 林氏曰, 聖智, 仁義, 巧利, 三者, 以道觀之, 是, 文也. 不足以治天下. 不若屬民. 而使之, 見素抱樸, 少私寡欲. 而天下, 自無事矣.
이위문以爲文, 부족不足. 고령유소속故令有所屬. (이) 두 문장은 (일부러 일삼은 지혜로움, 일부러 일삼은 인仁과 의義, 일부러 일삼은 기교와 이로움, 이 3가지는) 상스럽지 못한 바라는 뜻이다. (따라서 송宋나라 유학자) 임희일(林希逸, 1193~1271)은 일컬었다. “(일부러 일삼은) 지혜로움, 인仁과 의義, 기교와 이로움, 이 3가지는 도(道; 自然·無爲)로써 그것을 살피건대, 그것은 (일부러 일삼은) 겉치레(文; 詐·僞)이다. (따라서 그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바로서 부족한 바이다. (따라서 천하의) 백성을 (저절로 그러한 속바탕으로) 모여들게 해야 한다. 따라서 천하의 백성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소박한 바(素; 性·道)를 살피고,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투박한 바(樸; 命·道)를 품으며,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爲을) 사사로이 여기는 바를 줄이고,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爲을)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를 줄이게 해야 한다. 따라서 천하가 저절로 그러하게 일부러 일삼는 바(事; 文)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