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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어록

신광불매 만고휘유 입차문중 막존지해

작성자상민 시자|작성시간26.06.15|조회수20 목록 댓글 0

신광불매 神光不昧

만고휘유 萬古徽猷

입차문중 入此門中

막존지해 莫存知解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남송시대 승려로서 ,

당시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엮은

대혜보각선사서 大慧普覺禪師書약칭 서장 書狀,

지금까지도 간화선의 지침서로 읶혀지고 있다.

 

서장 書狀이 당 시대에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 1130~1200)가 과거 급제하기 이전,

주희의 젊은 학문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중국 사회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주희가 과거시험에 몇 차례 낙방하다가

장도에 대해어록 大慧語錄을 지참하고서야 과거에 합격했다고 한다.

 

이처럼 대혜의 선풍(禪風)은 당 시대 인사들에게 많은 사상적 영향을 끼쳤다.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증개(曾開)이다.

증개는 남송 시대에 시랑(侍郞)벼슬을 지냈던 인물이다.

 

이 편지는 증개(曾開)로부터 편지를 받고 두 번째 보낸 답서(答書)이다.

   대부분 사찰 출입문 좌우 주련에 있는,

   평전보안화상의 신광불매 만고휘유 입차문중 막존지해(神光不昧 萬古徽猷 入此門中 莫存知解) 구절이 있다.

 

증시랑에게 보낸 두 번째 답서(答書)

 

평전보안(平田普岸, 770~843)화상(백장회해선사의 법제자)이 말하기를 신령한 광명이 어둡지 아니하여 만고에 아름다우니, 이 문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平田和尙曰 神光不昧 萬古徽猷 入此門來 莫存知解

 

또 고덕이 이르기를 이 일은 유심으로도 구할 수 없고 무심으로도 얻을 수 없으며, 말로도 지을 수가 없으며, 말 없음으로도 통달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又古德曰 此事不可以有心求 不可以無心得 不可以語言造 不可以寂黙通

 

이것이 진흙에 들어가고 물에 들어가는 노파의 가장 최고의 가르침인데, 가끔 참선하는 사람이 다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지나치고, 특별이 이것이 무슨 도리인지를 자세히 살피지 않습니다. 此是第一等入泥入水 老婆說話 往往參禪人 只恁麽念過 殊不子細 看是甚道理

 

만약에 힘줄과 뼈가 있는 사람이 조금 거착하는 것을 듣고는 바로 금강왕의 보검을 가지고 단번에 이 네 갈래 갈등을 끊어버린다면, 생사의 길도 또한 끊어지며, 범인과 성인의 길도 또한 끊어지며, 계교하고 사량하는 것도 또한 끊어지며, 득실시비도 끊어져서 그 사람의 본분자리가 분명하고 깨끗해서 잡을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 어찌 쾌활하지 않으며, 이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若是箇有筋骨底 聊聞擧著 直下將金剛王寶劍 一截截斷此四路葛藤 則生死路頭亦斷 凡聖路頭亦斷 計較思量亦斷 得失是非亦斷 當人脚跟下 淨裸裸赤灑灑沒可把 豈不快哉 豈不暢哉

 

서장- 증시랑에게 보낸두번 째 회신

 

 

▩ 평전보안선사

     <전등록>6권

 

天台平田普岸禪師 洪州人也 於百丈門下得旨 後聞天台勝槪聖賢間出 思欲高蹈方外遠追遐躅 乃結茅薙草宴寂林下 日居月諸爲四衆所知 創建精藍號平田禪院焉 有時謂衆曰 神光不昧 萬古徽猷 入此門來 莫存知解 有僧到參 師打一拄杖 其僧近前把住拄杖 師曰 老僧適來造次 僧却打師一拄杖 師曰 作家作家 僧禮拜 師把住曰 是闍梨造次 僧大笑 師曰 遮箇師僧今日大敗也 有偈示衆曰 大道虛曠 常一眞心 善惡勿思 神淸物表 隨緣飮啄 更復何爲 終于本院 今山門有遺塔存焉 宋朝重加修飾 賜額曰壽昌 岸禪師卽壽昌開山和尙也

●方外; 世界之外 世俗之外 ▲祖庭事苑四 方外 莊子大宗師 孔子曰 彼遊方之外者也 而丘遊方之內者也 方 謂區域也

●遐躅; 遙遠的足跡 指古人的模範行爲

●日居月諸; 指光陰的流逝 居 語助詞 同乎 諸 語助詞

●徽猷; 美善之道 指玄妙的禪道 徽 美也 善也 猷 道也

●虛曠; 廣大寬闊

●常一; 始終如一

●開山; 本指開山建寺而言 因古代寺院多建於山谷幽靜處 故稱開山 且取其開闢寺基之意 又稱開基 而寺院第一代住持亦以開山尊稱之 又宗派之創始者亦稱爲開山 開祖 開山祖 開山祖師 [佛祖統紀十四 象器箋靈像類]

천태(天台) 평전보안(平田普岸) 선사. 홍주(洪州) 사람이며 백장문하(百丈門下)에서 득지(得旨)했다. 후에 천태는 뛰어난 경계(景槩)며 현성이 가끔 출현한다 함을 듣고 사유하여 방외(方外)로 고도(高蹈)하려 했고 멀리서 하촉(遐躅)을 쫓아(追) 이에 띳집을 엮고 잡초를 깎고 임하(林下)에 연적(宴寂; 安息)했다. 일거월저(日居月諸)하여 4중(衆)이 아는 바가 되었고 정람(精藍; 佛寺)을 창건하고 호를 평전선원(平田禪院)이라 했다. 어떤 때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신광이 어둡지 않아/ 만고에 휘유(徽猷)니/ 이 문에 들어 왔거든/ 지해(知解)를 두지 말아라. 어떤 중이 이르러 참(參)했다. 스님이 1주장(拄杖)을 때렸다. 그 중이 근전(近前; 앞으로 접근)하더니 주장자를 파주(把住; 움켜쥐어 머물게 함)했다. 사왈(師曰) 노승이 적래(適來)에 조차(造次; 경솔)했다. 중이 도리어 스님을 1주장(拄杖) 때렸다. 사왈(師曰) 작가(作家)로다, 작가로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파주(把住)하고 가로되 이는 사리(闍梨)의 조차(造次)다. 중이 크게 웃었다. 사왈 저개(遮箇; 이. 箇는 조사)의 사승(師僧)이 금일 대패(大敗)했다. 게가 있어 시중(示衆)해 가로되 대도(大道)는 허광(虛曠)하고/ 상일(常一)의 진심(眞心)이다/ 선악을 생각하지 말지니/ 정신이 맑아 사물의 밖이다(表)/ 인연 따라 음탁(飮啄)할지니/ 갱부(更復;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본원(本院)에서 마쳤고 지금(至今) 산문에 유탑(遺塔)이 있어 존채한다. 송조(宋朝)에 거듭 수식(修飾)을 가하고 사액(賜額)하여 가로되 수창(壽昌)이라 했다. 보안선사(普岸禪師)는 곧 수창(壽昌)의 개산화상(開山和尙)이다.

●方外;세계의 밖. 세속의 밖. ▲조정사원4. 방외(方外) 장자 대종사(大宗師) 공자가 가로되 그는 방(方)의 밖에서 노니는 자며 구(丘; 공자의 이름)는 방의 안에 노니는 자다. 방(方)은 이르자면 구역임.

●遐躅; 요원(遙遠)한 족적. 고인의 모범행위를 가리킴.

●日居月諸; 광음이 흘러감을 가리킴. 거(居)는 어조사니 호(乎)와 같음. 저(諸; 원음이 저)는 어조사.

●徽猷; 미선(美善)의 도니 현묘한 선도(禪道)를 가리킴. 휘(徽)는 미(美)며 선(善)이며 유(猷)는 도임.

●虛曠; 광대하고 관활(寬闊)함.

●常一; 시종여일(始終如一)함.

●開山; 본래 개산하여 사원을 건축함에 대해서 말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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