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밀엄경 大乘密嚴經 하권
〓 의식으로 인하여 윤회함
그때에 금강장은 다시 대중에게 말씀하였다. 是時金剛藏, 復告大衆言.
아뢰야는 무시(無始)로부터 희론(戱論)에 훈습(薰習)되었고
업들에 얽매여져서 바퀴 돌기 끝이 없나니.
賴耶無始來, 爲戲論薰習, 諸業所繫縛, 輪轉無有窮
마치 큰 바닷물이 바람 때문에 물결이 일어
항상 생기고 항상 소멸하나, 단멸도 아니고 항상함도 아니듯.
亦如於大海, 因風起波浪, 恒生亦恒滅, 不斷亦不常。
자기의 마음 깨치지 못해, 식(識)을 따라 경계를 나타내네.
자기의 마음 깨닫기만 하면 불길이 마른 섶을 태움과 같이
무루(無漏)법을 통달하여서 성인〔佛〕이라 이름 하리라.
由不悟自心, 隨識境界現, 若了於自心, 如火焚薪盡, 通達於無漏, 則名爲聖人。
장식(8식)은 여러 경계를 변하여 세간에 가득하고
뜻(6식)은 나와 내 것을 집착하여 사량(思量)하며 항상 흘러 다니고
식들은 차별하여서 자기의 경계를 깨닫네.
藏識變衆境, 彌綸於世閒, 執我我所, 思量恒流轉, 諸識類差別, 各各了自境。
쌓고 모으는 것을 마음(心; 8식)이라 하고
두루 쌓아 모은 것을 뜻(意; 6식)이라 하고
깨닫는 것을 식(識이)라 하니, 5식이 현전의 경계를 취하네.
積集業爲心, 遍積集名意, 了別名爲識, 五識取現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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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8식)는 의(意; 6식) 따위와 모든 법과 습기의 의지가 되어
언제나 분별심 때문에 흔들리네.
만일에 분별을 떠나면, 즉시에 무루도(無漏道)를 이루어
항상하고 변하지 않아 허공과 같으리.
賴耶是意等, 諸法習氣依, 常爲於分別, 心之所擾濁, 若離於分別, 卽成無漏道, 常恒而不變。
만일 아뢰야(8식)에서 삼마지(사마타)를 얻으면
즉시에 무루법과 여의(如意)ㆍ정(定)ㆍ해탈과 猶若於虛空, 若於阿賴耶, 獲得三摩地, 則生無漏法, 如意定解脫。
그리고 4무외와 10력과 좋은 방편과 자재와 그리고 신통과 이러한 공덕들을 내어 及以四無畏, 十力幷善巧, 自在與神通, 如是諸功德。
열 가지의 구경원(究竟願)을 일으켜
뜻(意; 6식)으로 이룬 미묘한 몸(6근) 길이 의지를 돌려
식계(識界)에 항상 안주하여서 체(體)는 허공의 성같이
망가지지 않고 다하지 않으리. 起十究竟願, 意成微妙身, 永轉於所依, 識界常安住, 體同虛空性, 不壞亦不盡。
여래는 모두 밝게 보시니, 세간은 증감이 없고
유정은 다시 나지 않고, 열반은 없어지지 않네. 如來悉明見, 世閒無增減, 有情復不生, 涅槃者非滅。
이 세계와 다른 세계, 똑같이 한 법성이니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거나, 어쩌면 세상에 안나오셔도
법성은 본래로 있어서,
상견(常見; 사물이 항상하다는 사견)도 아니요,
단견(斷見; 죽음과 함께 육체와 자아가 함께 소멸된다는 사견)도 아니네.
此剎及餘剎, 同於一法性, 諸佛出於世, 或不出於世, 法性本常住, 不常亦不斷。
만일에 해탈을 얻으면 유정계가 소멸된다 한다면
이는 여래의 모든 지성(智性)과 3세(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 평등을 얻지 못하리. 又若解脫者, 而有情界滅, 卽壞於如來, 一切之智性, 三世諸佛境, 不得於平等。
만일에 열반에 들면 유정계가 소멸된다 한다면
뉘라서 괴로움을 떠나서 유여(有餘)와 무여(無餘)를 얻으리. 又若般涅槃, 有情界滅者, 是誰離於苦, 得有餘無餘。
마군과 사견을 항복 받는 일 또한 모두가 마땅히 허망한 말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모든 수승한 관행자(觀行者)가
만일 해탈을 증득하면 그 몸은 상주하리라. 降魔伏邪見, 皆應是妄說, 是故應當知, 諸勝觀行者, 若證於解脫, 其身則常住。
영원히 취온(取蘊; 5온)을 떠나고, 모든 습기(業)를 멸해 버리니
비유컨대 뜨거운 쇠를, 찬물에 던져 넣으면
뜨거운 김은 제거하였으나, 쇠의 본체는 망가지지 않은 것처럼, 永離於取蘊, 滅除諸習氣, 譬如以熱鐵, 投之於冷水, 熱勢雖已除, 其鐵體無壞。
여러분 마땅히 알라.
아뢰야(8식)는 바다와 같아
언제나 희론 따위의
추중(麤重; 잠재의식)한 바람을 맞아
5법<명(名), 상(相), 분별(分別), 정지(正智), 진여(眞如)>과
3자성<변계소집성 (遍計所執性; 집착), 의타기성 (依他起性; 원인), 원성실성 (圓成實性; 眞如)>과 모든 식의 물결이 상속하니 諸仁應當知, 阿賴耶如海, 常爲於戲論, 麤重風所擊, 五法三自性, 諸識浪相續。
있는 바가 모든 경계에 그 모양이 나부끼고
뜻 없는 속에서 뜻인 듯하나 실체는 없네. 所有於境界, 其相而飄動, 於無義處中, 似義實無體。
만일 깨달으면 모두 공한 것, 의(依; 의타기성)를 돌리어 항상 다함이 없어, 밀엄(깨달음)에 머물러 달무리 같이, 그림자 시방에 나타나리라.
若悟則皆空, 轉依恒無盡, 住密嚴如月, 影現於十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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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알라. 아뢰야식은,
온법(5온;색수상행식)의 조림(稠林) 속에 운행하나니.
말나(末那:7식)가 앞에서 인도가 되고, 의식은 능숙히 결단해 아니
應知賴耶識, 行於蘊稠林, 那爲先導, 意識能決了。
색 따위 일체의 모든 경계와, 그리고 다섯 가지 식신(識身)들이요
근(根)과 경(境)과 더불어 화합하여서, 현전의 경계를 분별하나니
자기의 경계로 취할 바이며, 모두가 이것이 아뢰야라오.
色等一切境, 及以五識身, 與根境和合, 了於現境界, 自境之所取, 皆是阿賴取。
장식(8식)(壽)ㆍ난(煖)ㆍ촉(觸)과 더불어 화합한 성품이고요
말나(7식)에 의지하였고, 이 식은 또 다시 의(意;6식)에 머물러
나머지 다섯 가지 알음알이(5식) 다시 자기 근[自根]에 머문다오.
藏識與壽煖, 及觸和合性, 末那依此識, 識復住於意, 所餘五種識, 亦住於自根。
심의(心意)와 모든 식(識)은 온법(5온)에 머물러서
업습(業習)에 얽매인 채로, 끝없이 흘러 도나니
心意及諸識, 而安住於蘊, 業習繫縛, 流轉無有窮。
이렇게 있는 바 업은, 모두 탐애(貪愛)를 말미암으니
이미 법으로 몸을 받고, 다시 업으로 법을 지어
如是所有業, 皆由於貪愛, 旣以業受身, 復以身造業。
이 몸을 버리고 다른 몸 받으니
앞뒤로 인(因)에 의하여 천천히 행하여 물벌레 같네.
捨於此身已, 更受於餘身, 前後以依因, 徐行如水蛭。
심(心)과 그리고 모든 심소(心所)가속하여 제취(諸趣:6도)내고
다시 더욱 적집(積集)하여서, 모든 온법(5온)의 숲 속에 머물러.
心及諸心所, 相續生諸趣, 更展轉積集, 住諸蘊稠林。
수(壽;목숨)ㆍ난(煖; 온기) 그리고 식(識)이,
만일 몸에서 떠나면
몸은 깨달음 없음이,
나무나 돌 같으리.
壽煖及與識, 若捨離於身, 身則無覺知, 猶如於木石。
장식(8식)은 심(心)이라 하고,
아(我)를 집착함이 의(意; 6식)요
능히 모든 경계를 취함이,
식(識)이라 부른다네.
藏識是爲心, 執我名爲意, 能取諸境界, 以是說爲識。
업을 채집(採集)하는 것이 심이요, 의는 두루 채집하는 것이요
의식은 능히 두루 아는 것, 5식은 현전에 분별하는 것 採集業爲心, 意爲遍採集, 意識能遍了, 五識現分別。
심(8식)은 능히 몸을 지니고,
말나(7식)는 모든 갈래에 착(着)하고
의식(6식)은 능히 두루 깨닫고,
5식은 자기의 경계를 반연해. 心能持於身, 末那著諸趣, 意識能遍了, 五識緣自境。
장식(8식)으로써 원인을 삼아, 다른 식들이 이에서 나고
의(意6식)ㆍ의식은 반연하는 바를, 간단(間斷)없이 흘러 도나니[流轉].
5식은 또다시 증상연(增上緣)들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생겨나는 것
자기 근(6근)에 딸린 일같이 섬김은, 이것이 증상(增上)인 까닭이라오. 藏識以爲因, 從是生餘識, 意意識所緣, 無閒而流轉, 五識復更待, 增上緣而生, 同時自根事, 是爲增上故。
이 몸은 기시(起屍; 이주기시, 以呪起屍; 망자를 움직이게 하는 행위)와 같고
더운 날 아지랑이 같네.
인연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니, 허망도 아니요 진실도 아니네. 是身如起屍, 亦如熱時焰, 隨行因緣轉, 非妄亦非實。
수(受; 5온)에게 끄달린 바 되어,
성품이 공하여 아(我)가 없나니
의(意;6식) 등의 모든 전식(轉識)은
심과 더불어 함께 생기고 爲受之所牽, 性空無有我, 意等諸轉識, 與心而共生。
5식은 또다시 의식을 따라,
의지하는 까닭에 일어나나니
이렇듯 일체의 시간에,
대지(大地)와 함께 움직이네. 五識復更依, 意識而因起, 如是一切時, 大地而俱轉。
아뢰야는 애(愛; 갈애渴愛)에게 훈(熏;훈습)되어 증장(增長)하니
자신이 증장하고는 다시 다른 식을 증장해, 연이어 끊이지 않음이, 물 푸는 도르래 같네. 賴耶爲於愛, 所熏而增長, 旣自增長已, 復增於餘識, 展轉不斷絕, 猶如於井輪。
모든 식이 있는 까닭에,
여러 갈래(6도)가 생기었으니,
이러한 여러 갈래에,
식은 다시 자라나서, 以有諸識故, 衆趣而生起, 於是諸趣中, 識復得增長。
식과 세간법들은, 다시 서로 인이 되어,
비유컨대 강물의 흐름, 앞뒤가 끊이지 않고, 識與世閒法, 更互以爲因, 譬如河水流, 前後而不斷。
싹과 종자도 상속하여 잇따라 나니,
각각 모습의 차별, 분명히 나타난다오. 亦如芽與種, 相續而轉生, 各各相差別, 分明而顯現。
행하는 식도 그러하여서,
세 가지(6근, 6경, 6식)가 화합하고는,
또다시 서로서로 화합하여, 차별된 모습이 생겨나나니,
이렇듯 흘러 돌아서, 항상 끊임이 없네. 行識亦如是, 旣三和合已, 而復更和合, 差別相而生, 如是而流轉, 常無有斷絕。
안팎의 모든 법, 모두 여기에서 생기니,
어리석은 이 유심(唯心)인 줄 모르나,
그대들은 부지런히 관찰하여라. 內外一切法, 皆因此而起, 愚不了唯心, 汝等勤觀察。